[이미애의 문화 담론] '축제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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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2   |  발행일 2018-10-12 제39면   |  수정 2018-10-12
전통과 첨단사이…축제로 물드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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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안동 하회마을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관에서 개최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영남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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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 국제 미래자동차 엑스포’ <영남일보DB>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전국 300여 광역자치단체 및 기초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가을 축제가 한창이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경쟁적으로 개최하는 축제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데 국민정서나 지역정서와 동떨어진 분야로 변질되어가는 축제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축제의 붐을 타고 조촐한 동네 행사까지도 축제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다. 그야말로 축제 풍년이다.

300여 자치단체 주관하는 축제 풍년
쌀·과일·마늘 등 수확기 특산물 판매
관광객 유치…지역경제 활성화 기여
오감만족 이벤트·전시행사 문제점도

올 관심 끄는 대구국제미래차엑스포
신라문화제·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문화유산 전승발전 매년 찬사 이어져
삼척, 이사부 신화 홍보 ‘독도 축제’
울릉도에서는 열리지 않아 아쉬움


올해도 가을 들머리부터 전국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다. 애초 지자체가 주관해온 축제는 각 지역의 전통적인 민속이나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고 전승과 보존을 위한 문화예술 재현 행사가 대종을 이루었다. 하지만 지금은 뿌리 없는 오감만족형 이벤트 축제가 난무하면서 지역 특성의 순수성을 상실한 행사들이 많고 상당수는 적자투성이라고 한다. 표를 의식한 선출직 지자체단체장들이 빚어낸 전시행정이 결국 국민세금만 낭비하는 꼴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이 든다.

한때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강원도 평창의 메밀꽃 축제가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후 메밀산지마다 경쟁적으로 메밀꽃 축제를 여는 바람에 빛이 바랜 원조 평창에서는 축제 이름을 ‘효석문화제’로 바꿔 메밀꽃의 순수성을 재현하고 있다. 메밀꽃 축제뿐만 아니라 국화를 비롯한 상사화·천일홍·백일홍·코스모스·억새꽃 등 가을꽃을 테마로 하는 축제도 만발하고 있다.

가을 수확기를 맞아 농·축산물 판촉을 위한 지역 특산물과 음식 축제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젓갈 축제와 한우·한돈·오리고기 축제 등은 춘하추동 사시사절 기본으로 열리고 인삼·버섯·사과·배·감·더덕·고구마 축제와 전복·미역·멸치 축제 등 지역 특산물 축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심지어 입맛을 돋운다는 밥상머리 축제며 혐오식 문화인 보신탕 축제까지 열리고 있다.

올해는 개띠 해 무술년(戊戌年). 식육견 종사자 모임인 대구육견협회는 10월29일 칠성시장에서 개고기 축제를 열고 당일 참여하는 시민에게 보신탕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보신탕 축제의 원조는 충남 서천군의 판교 백중장(百中場). 음력 칠월 보름 백중날을 맞아 장이 서자 한여름 세 벌 김매기에 지친 농민들의 몸보신을 위해 개장국을 끓여 판 데서 비롯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서천군은 그런 전통을 잇기 위해 국내 최초로 보신탕 축제를 열다 동물보호단체의 반발로 1회 축제에 그치고 말았다.

비싼 출연료를 주고 대중가수와 걸그룹을 초청해 음악과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축하공연에 청춘콘서트까지 열고 있다. 여기에다 재즈 페스티벌, 다이내믹 댄싱 카니발 등 다분히 젊은 세대의 흥취를 겨냥한 이벤트성 축제도 많아지고 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 같은 축제를 두고 재선, 삼선에 대비하는 지자체장들이 국민세금으로 표를 노리는 일종의 놀이문화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10~11월 사이 대구시 전역에서 열리는 국제미래자동차엑스포(DIFA)는 국제규모의 미래지향형 첨단과학 축제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메인 행사에 벤츠, 닛산 등 유럽과 일본의 첨단자동차가 선보이고 자율주행차 시승행사도 열린다. 이런 가운데 전통문화유산을 전승·보존하는 축제도 꾸준히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어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진다. 신라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재현하는 신라문화제는 올해 46회를 맞아 대표적 테마행사로 국보 31호인 첨성대 축조가 재현돼 많은 찬사를 받았다. 낙동강 상류 하회마을 일원에서 펼쳐지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고대 그리스의 신 ‘야누스’를 테마로 탈과 민낯의 해학 넘치는 탈놀이문화를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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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의 개천예술제는 올해로 68회를 맞아 전통적인 역사의 맥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고 전북 전주에서는 대한민국 무형문화재대전이 열리고 있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각종 무형문화재와 인간문화재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체험문화뿐만 아니라 전통예능까지 아우르는 종합문화 축제로 발전하고 있다. 직지(直指)의 고장 충북 청주에선 기록유산을 세계에 알리는 직지코리아국제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찍어낸 야금술(冶金術)을 체험하는 국제행사다.

칠곡에서는 ‘평화를 품다’라는 테마의 이색적인 호국 축제를 열었다. 국운이 백척간두에 서 있던 1950년 6·25전쟁의 참상을 되새긴 낙동강지구전투를 재현하고 국가안보의식을 고취시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강원도 삼척에선 ‘독도 축제’가 열려 우산국(울릉도·독도)을 정벌한 신라장수 이사부의 신화를 되새겼다. 하지만 정작 독도 영유권 문제가 가장 첨예한 울릉도는 특산물 오징어 축제가 열렸을 뿐 경북도가 주관하는 독도수호 축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독도의 이름을 다케시마로 명명하고 끈질기게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은 ‘다케시마의 날’까지 제정, 독도에서 가장 가깝다는 시마네현 마쓰에시(市)에서 해마다 정부가 주관하는 국가적 마츠리(축제)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그곳은 독도에서 160㎞나 떨어져 있다. 이에 비해 울릉도에서 독도는 90㎞의 가까운 거리다. 터무니없는 억지주장이 아닐 수 없다. “독도가 있어 울릉도가 외롭지 않고 울릉도가 있어 동해가 쓸쓸하지 않다”는 말이 새삼 실감나는 계절이다.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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