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공연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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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8   |  발행일 2018-10-18 제31면   |  수정 2018-10-18
[영남타워]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공연
김수영 주말섹션부장

20년 전쯤, 문화부에서 서너해 일할 때였다. 아들 둘이 대여섯살이었는데 평일에 늘 아이들을 봐주시는 시어른에게 주말에도 차마 맡길 수 없었던 터라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공연장을 찾았다(그 당시는 공연이 주로 주말에 열렸다). 예전 할머니들이 손자를 데리고 목욕탕에 갔을때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의 나이를 서너살 깎아내려 유아로 만들던 것과 비슷했다. 할머니들이 손자의 나이를 깎은 반면, 나는 초등학교 이상의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연에 유치원 아이 둘을 데리고 가면서 나이를 속이곤 했다. 그때만 해도 공연장 출입구에 지금처럼 하우스매니저들이 잘 있지도 않았고 아이의 나이를 꼼꼼히 묻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의 눈속임은 제법 효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대여섯살 아이, 그것도 남자아이가 음악을, 무용을, 연극을 어떻게 알겠는가. 칭얼대면서 울면 아무리 나이를 속여서 공연장에 들어간다한들 다시 나와야겠지만 아이들이 순했는지 공연장에 들어가면 별다른 말없이 잠을 자기 일쑤였다. 한 아이는 왼쪽에, 다른 아이는 오른쪽에 앉혀놓고 공연을 보다보면 잠이 들어 고개를 이리저리 가누지 못하는 아이들의 머리와 몸을 좀 편하게 해주려는 엄마의 마음에 공연에 집중하기 힘들었던 기억들이 많다. 그래도 아이들이 잠만 자고 다른 투정을 하지 않아서 감사하게 생각했다. 이런 그릇된(?) 방법을 통해 그나마 아이를 데리고 공연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며 이것이 문화부 기자생활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5~6세 아이를 데리고 가면서도 이렇게 고생했는데 이제 갓 태어난 젖먹이를 데리고 공연장에 간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지난달 <재>행복북구문화재단에서 연 ‘아가랑콘서트’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스쳤다.

아름다운 음악이 가득한 공연장 안에서 젖먹이 아기부터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연주를 들었다. 제법 긴 공연에서 때로는 어린 아이들의 칭얼거리는 울음소리도 들렸다. 일반 공연장 같으면 쉽게 울음보를 터트릴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모도 없고, 설혹 운좋게 공연장에 들어왔다고 해도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당황한 부모의 손에 이끌려 아이나 부모 모두 황급히 공연장을 떠나갈 것이다. 하지만 이 공연장의 부모들은 누구 하나 자리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공연은 영유아들이 들을 수 있는 공연으로 기획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기를 어깨띠에 매고 온 아줌마부대가 많았고 이들은 거리낌없이 여유롭게 아이와 함께 공연을 즐겼다. 영유아에게 문화공연은 뇌에 좋은 자극을 주며 감성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음악 등 문화공연을 즐기라 하지만, 지역에서 이런 공연을 펼치는 곳을 찾기가 힘들다. 이런 가운데 행복북구문화재단에서 아가랑콘서트를 마련한 것은 영유아를 둔 부모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일 것이다.

좋은 공연을 어린 시절부터 보여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지만 그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는데 이제야 슬슬 그 기반이 다져지고 있는 것 같아 반갑다. 올해 리모델링에 들어가 내년 하반기 재개관을 앞둔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영유아를 동반한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이벤트룸을 만들 예정이란다. 극장 2층에 있던 옛 영사실을 이용해 전면 유리창과 모니터 및 음향시설을 갖춰 영유아와 함께 온 부모 등이 편하게 아이를 돌보면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아이를 둔 부모가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줄까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고, 일반관객도 아이로 인해 공연에 방해받지 않게 된다.

과거에 비해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대부분의 공연에는 7~8세 이상이라는 연령제한이 있다. 물론 일반공연에서 연령제한은 필요하다. 다만 우리가 간과했던 어린 아이와 그들을 키우는 데 애를 먹고 있는 어머니들에 대한 작은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배려들이 모여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저출산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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