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문의 행복한 독서] 입 구(口)가 세 개 모여 품(品)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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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02   |  발행일 2018-11-02 제38면   |  수정 2018-11-02
‘말의 품격’ (이기주 지음·황소북스·2017·1만4천500원)
[전진문의 행복한 독서] 입 구(口)가 세 개 모여 품(品) 자가 된다
[전진문의 행복한 독서] 입 구(口)가 세 개 모여 품(品) 자가 된다

이 책의 저자 이기주는 참으로 깔끔하고 맛있는 수필을 쓰는 작가다. 요즘 젊은 세대의 구미에도 맞게 그는 짧은 글로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어 잔잔한 감동을 일으킨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 이렇게 쓴다.

“말은 마음의 소리다. 수준이나 등급을 위미하는 품(品)의 구조가 흥미롭다. 입 구(口)가 세 개 모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우리들이 무심코 내던지는 말 한마디에서 품격이 드러나고, 아무리 현란한 어휘와 화술로 꾸며봤자 소용없다는 것이다. “나만의 체취, 내가 지닌 고유한 인향(人香)은 분명 내가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고 그는 말한다.

저자는 먼저 말을 잘 하기 위해서는 남의 말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경청(傾聽)이라는 한자어에서의 ‘경(傾)’은 사람(人)을 향해 머리(頁)가 기울어지는 것을 나타내는 형상이고, ‘청(聽)’자는 귀 이(耳), 임금 왕(王), 열 십(十), 눈 목(目),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져, ‘임금처럼 진득하게 귀를 기울이면서 눈을 크게 뜨고 사람을 바라보면 상대의 마음마저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상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상대가 느끼는 아픔을 느끼고, 또 상대의 입장과 시선으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자세야말로 소통의 정수라고 말하고 있다.

좋은 대화를 위해서는 상대의 말을 받아들이고 맞장구를 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판소리에서 장단을 짚는 고수(鼓手)가 창(唱) 사이사이에 흥을 돋우기 위해 ‘얼씨구’ ‘좋다’ 같은 추임새를 삽입하는 것처럼, 적절한 지점에서 “아하!” “그랬구나!” “그다음은요?” 등의 감탄사와 질문을 가미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영리하고 기억력이 좋다는 의미로 쓰이는 ‘총명(聰明)’이라는 말도 남의 말을 잘 듣고 눈여겨보는 데서 얻어질 수 있는 덕목임을 지적하고 있다. 사마천이 쓴 ‘사기’의 한 문장에서 “들은 것을 거듭해 되새기면 가히 귀가 밝다고 할 수 있고, 마음의 눈으로 보면 가히 눈이 밝다고 할 만하다(反聽之謂聰 內視之謂明)”는 가르침이다. 이것이 사람을 대할 때 우리가 응당 지켜야 할 예의와 자세를 일러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또 ‘겸상’이라는 수필에서 석사와 박사 위에 ‘밥사’라는 학위가 존재한다는 우스개가 있다고 쓴다. 조직이나 단체에서 동료를 위해 기꺼이 밥 한 끼 사는 사람은 마음 씀씀이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과 급하게 만나고 헤어지면서 “언제 같이 밥 한 번 먹자”고 헛약속을 남발할 때가 많다. 더 늦기 전에 오늘 당장 전화를 해서 그리운 사람들과 식사 약속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품격을 나타내는 말은 상대방을 감동시키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칼에 베인 상처는 바로 아물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는다’는 말은 진리에 가깝다”고 말한다. 남을 감동시키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남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지만 어렵다.

저자는 ‘명심보감’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솜처럼 따뜻하지만,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다. 한마디 말의 무게는 천금과 같으며 한마디 말이 사람을 다치게 하면 그 아픔은 칼로 베이는 것과 같다(利人之言 煖如綿絮 傷人之語 利如荊棘, 一言半句 重値千金 一語傷人 痛如刀割).”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지만, 저자는 보다 실감나는 예를 한 토막 들고 있다. 유럽의 어느 카페에서는 예의 없는 고객에게 돈을 더 받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카페에 있는 메뉴판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커피”→7유로 / “커피주세요”→4.25유로 /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세요”→1.40유로.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하면 손님의 말씨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의 수필은 짧으면서도 탁 쏘는 유머와 달콤한 맛과 향이 있어 읽고 나면 입안이 향긋해진다. 그의 또 다른 저서 ‘언어의 온도’도 좋다.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 <사>대구독서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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