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돌고 돌면 발견하는 숨은 보물들…추억과 치유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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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에 작품이 설치돼 있는 우물갤러리. <스트리트뮤지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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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근 작가의 작품, 오픈 뮤지엄을 통해 골목길에서 작품을 만날 수있다. <스트리트뮤지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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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 작가의 해우소. 지붕 위 변기에 앉은 코끼리 작품이다. <스트리트뮤지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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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길 벽돌건물 앞 자투리땅에 자리한 사변삼각갤러리. <스트리트뮤지엄 제공> |
도심 속을 걸을 때 나는 종종 샛길을 이용한다. 샛길은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나의 발걸음과 신발소리를 들을 수 있고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재미를 느낀다. 샛길에는 걷는 맛이 있다. 빠른 발걸음으로 골목길을 돌아 대로를 만났을 때 내 발소리와 머릿속 생각들이 차 소리에 사람 소리에 묻혀버리는 것들에 몸서리를 칠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나는 걷는 맛이 있는 골목길을 좋아한다. 도심 속 골목길을 걷는 맛은 일상의 행복이고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기쁨이기도 했다.
삶의 정서가 묻어 있는 골목길은 서민의 문화를 가깝게 느낄 수 있다.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도심의 골목길 담벼락에서 우리는 옛 추억에 행복감을 느끼고 오랫동안 걷고 싶고 머물고 싶어한다. 최근 도시재생에서 골목길 활성화를 이야기한다. 구도심에 있는 골목길의 상권을 살리고 사람들이 찾도록 해서 경기를 살리자는 이야기다. 골목길은 담장 너머 이웃을 알고 소통하며 상부상조하는 서민들의 정서가 묻어 있어 걷는 사람마저 그 정서에 행복을 느낀다.
고인이 된 강병기 한양대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걷고 싶은 도시라야 살고 싶은 도시다.” 골목길은 걸을 수밖에 없다. 차보다 사람이 우선인 골목길. 이웃과의 공감대가 있고 다채로운 이야기가 있어 우리는 골목길을 걷고 싶어하고 향수를 느끼고 싶어 한다.
예술로 새로운 골목문화를 만든 곳을 소개할까 한다. 서울 중구 필동의 새로운 골목길 문화로 자리잡은 ‘스트리트뮤지엄’이다. 대부분의 골목길 활성화 사업은 관에서 주도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경제적인 측면과 역사적인 부분을 강조해 나의 상식에서는 뻔한 사업들이다. 하지만 이곳 스트리트뮤지엄은 비영리 전시공간으로 필동과 남산골한옥마을 일대를 문화공간으로 조성한 곳이다. 소개에 앞서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먼저 할까 한다.
이웃과 소통·이야기가 있는 골목길
‘걷고 싶은 도시라야 살고 싶은 도시’
서울 필동 ‘스트리트 뮤지엄’
자신을 성장하게 해준 골목길에 보답
골목 모퉁이 갤러리 만든 박동현 대표
어린시절 뛰어놀던 곳에서 예술 감상
과거 회상…바쁜 일상속 작은 행복감
골목 활성화에 등장한 상술 최대의 적
주민들과 마을 지키기 함께 협력해야
바로 이곳을 거리 갤러리로 만든 박동현 대표다. 이 분은 경남 산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해 막노동과 중국집 배달 등 밥벌이를 위해 온갖 궂은 일을 했다. 폐지를 줍는 과정에서 폐지더미 속에서 발견한 만화가 계기가 돼 애니메이터 일을 시작, 충무로에서 광고 일을 했다. 눈썰미와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그곳에서 보고 배우며 드디어 자기 사업을 시작해 승승장구했다. 20년 만에 필동에 사옥을 마련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필동에서 일을 익히고 지금의 자기를 만든 후미진 한 골목길에 문화예술로 채워서 보답을 하고자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골목길에서 누구나 문턱 없이 예술작품을 일상적으로 만나면 좋겠다는 의도였다. 우리 동네 문화예술 놀이터인 스트리트뮤지엄은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기 때문에 공간 확보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동네 주민과 방문객에게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스트리트뮤지엄은 문화타운 확산에 꼭 필요한 콘텐츠라고 본다. 한 사람의 의지와 지역에 대한 애착심으로 새로운 골목문화를 만든 것이다.
필동은 조선시대 금속활자를 만들었던 주자소 터가 있고 인쇄산업의 역사를 가진 출판거리다. 이곳은 국내 최고 인쇄 광고산업의 메카로 광고사진의 집합지였다. 또한 남산골 선비 필묵방 붓골이 있고 필동의 명칭 유래가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스트리트뮤지엄에는 중견작가의 유명작품은 물론 신진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작품에 다가갈 수 있는 미술관으로 회화, 설치미술, 미디어아트뿐만 아니라 디자인어워드 수상작까지 전시돼 아름답고 즐거운 생각을 전달하는 골목길이 됐다.
스트리트뮤지엄에 있는 여러 개의 미술관은 골목길의 모퉁이 틈새공간을 활용해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 중 하나는 남산골 한옥마을에 있는 전통우물 형태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우물 뮤지엄이다. 작품을 감상할 때 우물 안에 있는 작품을 보기 위해 아래로 내려다보아야 하는데 공간에 맞춰진 작품들이 색다른 느낌으로 와닿았다. 또 골목길이라는 전시관은 어린 시절 뛰어다니던 골목에서 보물찾기 놀이를 하듯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흥미로운 동선으로 구성돼 있다. 육교 및 자투리 땅에 수백 개의 나뭇가지를 장식해 남산 자락 아래 예술을 품은 아늑한 둥지라는 콘셉트로 공간을 재탄생시켰다. 예전 중등교육기관 사부학당 중 남부학당 터의 서까래와 대들보를 살려 지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된 남학당에서는 인문학 클래스, 문학토크쇼, 작가와의 만남 등 문화예술 담론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매우 바쁘게 자리가 메워지고 있었다. 잠시도 쉬지 않는 활발한 공간으로 변해버린 예술마당이 된 골목길이다. 걷기 쉬운 도시, 걷고 싶은 도시, 함께 걷는 도시를 만들고자 한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이 한 개인으로 인해 모두 충족된 곳이었다.
이제 걸어보자. 걷다보면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것들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바쁜 일상에 작은 행복감을 줄 것이다. 대구의 근대골목길과 김광석거리, 광주 송정역, 서울 북촌·삼청동 일대 등은 성공한 골목길 사례로 꼽힌다. 골목길의 불량주택과 담장을 정비하고 골목을 미관지구로 지정해 무분별한 개발을 막아서 성공한 사례들이다. 골목길을 찾는 사람들은 옛 정서를 느끼고 싶어한다. 구불구불하고 좁은 길이 쭉쭉 뻗은 길로 변하기를 바라지 않고 담장 너머 피는 장미꽃이 보고 싶고 골목길의 작은 가게에서 무엇인가 건질 것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가진다. 골목길은 현대인의 향수가 되고 피곤한 일상을 치유하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도시의 새로운 문화가 정립이 되어간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골목길의 정서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에는 장사가 잘돼 상권이 활발해짐에 따라 집값이 오르고 세들어 살아가는 지역 주민이 쫓겨나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는 도시재생에서 말하는 골목상권 활성화의 최대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문제다. 분야별 여러 해결방법이 나오곤 있지만 공간을 디자인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당초 상권 활성화를 시작하면서부터 주민과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을 한다. 경관을 잘 지켜나가자는 취지에서 시작하는 주민과의 협정이지만 작게나마 느리게 우리 마을을 지켜나가자는 약속을 주민과 하는 것이다. 담장을 돌아돌아 숨어 있는 보물을 찾듯이 골목문화의 정서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달성군 디자인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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