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청림원’ 이승향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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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09   |  발행일 2018-11-09 제41면   |  수정 2018-11-09
“남도 미감 보리굴비 뜯어줄 때 보람” 대장금 포스 대표의 ‘힐링 한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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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에서 조리사로 변신한 이승향 대표
◆수성구 숯불구이한정식 청림원

그 식당을 생각하면 대뜸 가수 김태곤이 부른 ‘송학사’가 생각난다. 대구KBS방송총국을 조금 지나면 관심이 없는 행인에겐 좀처럼 보이지 않는 간판이 하나 보인다. 숯불구이와 한정식 전문 ‘청림원(淸林園)’. 도로에서 급우회전,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이 식당이 그런 풍광을 갖고 있었다는 걸 가늠할 수 없다. 진입이 참 불편한 곳이지만 자리에 앉으면 늦가을 정취를 호젓하게 만끽할 수 있는 풍광이 나타난다. 대나무숲과 핑크뮬리, 그리고 참나무와 소나무 군락이 통유리창을 통해 보인다.

솔직히 난 요즘 한정식의 앞날이 걱정이다. 유명 호텔 한식당은 이미 철수한 지 오래다. 시내 고만고만한 한정식도 자신만의 메뉴라인을 갖기 위해 별별 몸짓을 다 하지만 갈수록 한식 본연의 깊은 맛은 만나기 어렵다. 그냥 벤치마킹해서 올린 마네킹 같은 음식이 겉만 화려한 자태를 보여준다. 외화내빈. 맞다. 사장들은 밀리는 음식을 커버하기 위해 각종 눈높이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그게 ‘옥에 티’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서남해권 남도한정식은 나름 자기 색을 그래도 유지하려고 한다. 그것에 반해 경상도, 아니 대구의 한정식은 ‘정체불명’이란 말을 듣는다. 대구의 한정식은 요정 주방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초·중반 유흥업소 특소세 때문에 많은 요정이 한식당으로 전향했다. 특이하게 한식이 중식·일식·양식과 한데 뭉쳐진 스타일이다.

한식당 셰프는 ‘도깨비방망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만들어 대령한다. 다들 한 고집한다. 실험적인 메뉴개발에 뒤져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정답이고 길이라 여긴다. 그런데 경영 마인드는 영 아니다. 다들 독립하지만 상당수 말아먹고 다시 주방으로 온다. 경영도 알고 음식도 아는 강호의 고수는 식당을 차리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미식가로 활동하는 게 더 낫다고 여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청림원의 살림을 진두지휘하는 대장금 포스의 이승향 대표를 만났다. 연극인 손숙을 닮았다. 한눈에 음식 갖고 장난칠 사람이 아니란 직감이 들었다.

한때 청림원은 단골과 공감을 잘 못해 경영이 힘들었다. 이 대표가 새롭게 살리기 위해 칼을 뽑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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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향 대표는 발품을 팔며 현장에서 육가공 지식을 쌓아나갔다. 덕분에 육부장 없이 최고급 한우를 숯불석쇠 위에 올릴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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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항아리에서 숙성돼 염도가 덜한 법성포 보리굴비. 찻물에 밥을 말아 한점씩 곁들여 먹으면 별미다.

보리굴비정식과 한우숯불구이를 함께 먹어봤다. 갑자기 대구 한정식의 한 가능성을 보여줄 것 같아 이 대표와 식재료와 관련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

난 이집만의 비법이 감춰진 냉면에 오랜 시선이 머물렀다. 내년 하절기를 겨냥해 나름 칼날을 다듬고 있는 이 냉면은 대구에선 쉽게 만날 수 없는 스타일이다. 뭐랄까, 북한식 평양냉면, 강원도 봉평막국수, 그리고 경상도 반가 동치미 육수의 기운이 고루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가당을 하지 않았는데도 상당한 단맛이 형성됐고 식초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상당한 신맛이 터져나왔다. 옆에서 언니를 돕고 있는 동생이 직접 고수한테 배우고 이를 토대로 자신이 작품처럼 만들어가고 있는 냉면이다. 내가 “당도와 산도를 조금씩 낮춰주면 이 냉면이 효자메뉴가 될 것 같은 직감이 든다”고 하니 자매가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상당한 미식가였고 자매는 부모 덕분에 어릴 때부터 요리감각을 익힐 수 있었던 것 같다.

은행원 출신 이승향 대표
불교공부 심취하다 사찰음식에 감동
부처님께 공양하는 마음 음식업 시작

발품 팔아 찾은 고기…써는법 등 수련
본갈비·늑간·안창·부드러운 안심 선택
사탕수수·커피숯에 최고급 한우 구이

곰취 장아찌·5년근 토종 도라지 튀김
안동반가 제사음식 향기 우엉부침개
가지구이무침·쪽파 김치·연근 강정
찻물에 만 밥과 먹는 보리굴비는 별미

대구에서 쉽게 못 만나는 특미 냉면
북한·봉평·경상도 동치미 섞인 풍미



◆기대주 은행원 출신

이 대표는 경산에서 태어났다. 지금까지 부모는 경산시 남천면에 살고 있다. 거기서 지은 과일·채소류를 받아 사용한다. 그녀는 학창 시절 나름 공부를 좀 했다. 그래서 1979년 제일은행 대구점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18년 근무를 하다가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돼 은행을 나온다. 여직원회 회장을 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허사였다.

목표를 크게 두고 달려왔기에 좌절되는 일상을 견딜 수 없었다.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불교공부에 심취한다. 매일 집에서 1천배 100일 기도를 했다. 금강경 사경도 100번 이상했다. 충남 금산에 있는 ‘덕분입니다’란 법문으로 유명한 성담스님과 인연을 맺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즉문즉설’로 유명한 법륜스님이 운영하는 문경에 있는 모 사찰의 ‘깨달음의 장’이란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거기서 나오는 사찰음식의 간단명료함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그때까지 먹었던 음식 중 최고였다.

당시 그녀는 세상만사 모든 게 다 연결돼 있다는 걸 깨닫는다. 불교철학의 핵심이랄 수 있는 12연기적 삶을 살고 싶었다. 친환경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사찰음식 레시피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몸에 좋은 음식을 생각하게 된다. 더 늙기 전에 가장 쉽게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단이 음식 같았다. 그 즈음에 청림원과 인연을 맺게 된다.

“입맛은 다 다릅니다. 그렇지만 옳고 착하고 좋은 음식에 대한 여망은 모두 같은 바입니다. 맛 이전에 좋은 식재료를 갖고 슬로푸드를 만들고 싶어서 식당업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청림원 이전에 잠깐 식당업을 체험하게 된다. 법원 앞에 있는 한 곰탕집을 1년쯤 운영했다. 점심 시간 장사다 보니 현상 유지가 힘들었다. 보는 것과 실제 식당을 경영하는 것의 차이를 절감하게 된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다는 정신으로 식당을 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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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의 포스를 지닌 백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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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면서도 깊은 풍미가 나는 청림원 특미 냉면.
◆청림원 식재료 이야기

영천, 고령, 경산 자인 등을 다니면서 좋은 고기를 찾았다. 누구한테 맡겨놓으면 안된다 싶어 배우면서 고기를 찾기로 했다. 고기 부위별 써는 법도 배우고 때마다 달라지는 가격의 패턴도 공부했다. 13대 갈비 중에도 4~5번(본갈비)이 가장 선호도가 높고 제일 비싸다. 그녀는 본갈비살과 좀 구수한 늑간살만 선호한다. 그리고 안창살과 부드러운 안심을 선택했다. 세 군데 믿을 만한 사람한테 공급받는다. 진공포장돼 오후 4~5시 배송된 고기를 0℃에서 사나흘 냉장숙성을 한다. 별도 숙성냉장고도 있다. 육부장을 두면 나름 장점도 있지만 그게 좋은 것만도 아니다. 양심적인 거래처를 만났기 때문에 육부장 없이 식당을 돌렸다.

하향식 닥터를 설치했다. 화구는 모두 26개. 수천만원이 들었다. 가스는 아니다 싶어서 사탕수수나무와 커피나무숯을 사용했다.

한정식 반찬도 좀 혁신하고 싶었다. 어디가나 볼 수 있는 메뉴는 밀어냈다.

고추부각은 씻고 쌀가루를 묻혀 찐 뒤에 말려서 튀겨서 양념을 바르는 것인데 일손이 많이 간다. 봄에 소백산권 곰취와 어수리를 3자루 받아 그걸로 장아찌로 만든다. 설탕·식초·소금을 같은 비율로 넣고 30분 정도 끓인 뒤 뜨거운 상태에서 나물에 붓는다. 며칠 있다가 그 채즙을 덜어내 다시 끓인 뒤 나물에 붓고 숙성에 들어간다. 클레오파트라가 즐겨 먹었다고 하는 사각고추 같은 ‘오크라’로 만든 장아찌도 있다. 국내에선 잘 재배되지 않는데 경산 진량에 있는 한 분그걸 재배하고 있어 그걸 갖고와 사용한다. 연근처럼 먹을 때 뮤신 같은 진이 형성된다.

보통 인삼튀김을 내는데 그건 너무 평범한 것 같아 봉화에서 캐낸 5년근 토종 도라지를 튀겨낸다. 도토리묵에 치자물 들인 밀가루를 발라 전 부친 것과 배추전, 그리고 우엉부침개에서는 안동 반가 제사음식의 향기가 감돈다. 시금치무침에서 벗어나 쇠비름과 가지구이무침을 세팅했다. 가지구이무침은 가지를 잘라서 그릴에 구워낸 뒤 들기름과 소금 간만으로 무쳐낸 것.

강원도에서 온 더덕구이도 한몫한다. 가을 걸 상자째 구입한다. 더덕구이에 고기를 곁들이면 맛이 더 난다.

마블링 좋은 한우는 많이 먹으면 느끼함을 준다. 그걸 완화시키기 위해 삭힌고추와 믹서로 간 가는 멸치를 함께 섞어 장으로 낸다. 일반 식당에서는 보기 힘든 반찬이다.

전복내장과 달걀을 섞어 된장의 염도도 낮췄다. 샐러드를 만들 때도 일반 집과 달리 했다. 과일을 많이 사용한다. 바나나와 파인애플로 소스를 만들고 견과류를 섞어서 수제 드레싱처럼 만든 것이다. 황금버섯과 팽이버섯을 이용한 새콤한 버섯 샐러드도 함께 낸다.

인상적인 반찬이 하나 있다. 지금이 제철인 ‘쪽파(자청파)김치’다. 반야월 연근을 이용한 강정도 낸다. 석이버섯과 홍고추, 청고추를 섞어 약간 달콤하면서 매콤하다. 연근은 핑크빛 비트물에 담가 피클로 만들기도 한다. 영주에서 올라온 송이는 몇 상자 냉동으로 남겨뒀다가 칠순잔치 등에 송이등심구이로 낸다.

◆보리굴비와 찻물

보리굴비는 이 집만의 특별한 메뉴. 전남 영광 법성포에서 올라온다. 보리에 파묻어 숙성시킨 건데 주문할 때 120마리씩 온다. 6시간 쌀뜨물에 담가 짠기를 뺀다. 그 다음 솥에 20분간 찐다. 이어 그릴에 3~5분 구워낸다. 이 대표가 직접 뜯어준다. 밥을 찬 찻물(둥글레차)에 말아 먹을 때 한 점씩 올려 먹으면 별미다. 아직 원가가 6천원 정도인 보리굴비의 진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구에도 꽤 많다. 그래서 청림원은 더 존재감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디저트 커피도 궁중풍 잔에 담겨져 나온다. 단감 등 제철과일도 맛볼 수 있다.

지금 동절기를 겨냥한 시래기를 부모님이 갈무리 해주고 있다. 이걸 갖고 겨울철에는 시래기된장, 국, 찜 등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기성복 같은 조리사의 음식은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이런 음식은 대다수 화학조미료에 의존한 메뉴이다.

이 대표는 자기가 고생이 되어도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주방혁신에 나섰다. 물론 주방장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젠 단골도 좋은 음식이 뭔지 안다. 그래서 청림원은 자기 역할을 할 기회를 잡은 것 같다.

제대로 된 한식당이 무너지면 사실 힐링푸드를 먹을 가능성이 점점 없어진다. 제대로 된 음식에 대해선 제대로 된 가격을 지불해야 된다. 그래야 천사표 식당이 더 좋은 재료를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엄마표 집밥’을 대신한다는 자세로 매일 출근한다. 수성구 달구벌대로 496길 40-2. (053)742-9500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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