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문재인 대통령이 구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

  • 박진관
  • |
  • 입력 2018-11-15   |  발행일 2018-11-15 제23면   |  수정 2019-03-21
20181115

경부고속도로 남구미IC 초입은 구미 오태동이다. 이곳엔 고려말 충신 야은 길재와 대유학자 여헌 장현광의 묘소가 있다. 여헌의 후손인 장택상 전 총리의 생가도 있다. 오태동 옆은 임은동. 이곳엔 구한말 13도창의군 의병연합 총대장 왕산 허위의 묘소와 선생의 기념관이 있다. 임은동 옆 상모동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다. 모두 반경 10리 내외다. 장택상, 허위, 박정희는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인물들이다. 가까운 거리만큼 인연도 깊다.

왕산은 평리원서리재판장(현 대법원장서리 격)을 역임하다 거병했다. 서울진공작전을 펼치며 저항했으나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1호로 순국했다. 그의 수제자는 판사 출신 박상진 열사. 그는 대구 앞산 안일사에서 조선국권회복단을 결성한 뒤 의형제 김좌진 등과 대한광복회를 조직,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왕산이 순국한 뒤 독립군자금 지원 약속을 어겼던 친일부호 장승원(장택상의 父)을 사살했으나 피체돼 대구형무소에서 복역 중 순국했다.

왕산을 비롯해 허훈, 허겸, 허형, 허종, 허필, 허학 등 왕산가(旺山家)는 독립운동 수훈 14위를 배출했다. 올해 서훈을 받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부 허은 여사를 포함해서다. 왕산과 안동 임청각 주인 석주는 겹사돈간으로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이끌었다. 왕산가는 우당 이회영, 백하 김대락, 석주 이상룡 가문과 더불어 독립운동 4대 가문 중 가장 돋보인다. 왕산가 중 특히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은 통일시대를 대비해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그는 허위의 종질로 구미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북만주로 망명해 김일성, 김책, 최용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중국 선양 9·18역사박물관과 하얼빈 동북항일열사관에 가면 그의 행적이 전시돼 있다. 그는 저항시인 이육사의 외삼촌 허규와 사촌간이다. 육사의 시‘광야’에 나오는 ‘백마 탄 초인’의 실존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33세에 일본 만주군 파르티잔 토벌대와 싸우다 전사했다. 그해 박정희는 위만주국 창춘의 신경군관학교에 입학했다.

왕산가의 독립운동 투쟁 전력은 화려하지만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 후손들은 러시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미국, 북한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왕산의 생가터도 남의 땅이 됐다.

종손인 허경성옹(92)이 지난 10월21일 허위 선생 순국 110주기 추모식에 참석, 할아버지의 묘소에 무릎 꿇고 회한의 잔을 올렸다. 허옹은 독립운동가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청년이 돼 한국으로 와 중국집을 운영했다. 동생과 함께 힘겹게 6억원을 모아 할아버지 땅을 사 조건없이 구미시에 넘겨 그 땅을 보존해 달라고 했다.

구미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이날 추모식은 놀랍게도 제1회였다. 5일 뒤 열린 박정희 대통령의 화려한 추모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촐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생전 가정의례준칙까지 만들어 허례허식을 배격한 실용주의자였다. 구미시는 박정희 생가와 민족중흥관, 새마을운동테마공원 건립 등에 지금까지 1천억원을 투입했지만, 왕산에게 헌사한 건 기념관과 공원이 전부다. 공원 부지도 후손이 기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념관 내 전시품은 엉성하기 짝이 없다. 왕산가 14위 한 분 한 분의 기념관을 세워도 성이 차지 않을 텐데, 가계도와 유품이 전부다. 구미시내 박정희 생가를 알리는 도로 간판은 논에 모종한 듯 많지만 왕산 기념관은 임은동에 들어서야 겨우 몇 개 보일 뿐이다. 그러니 구미를 찾는 사람은 박정희 생가만 줄서서 방문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전후 안동 임청각을 두차례 방문했다. 280억원을 들여 생가를 복원한다니 만시지탄이다. 덧붙여 장세용 구미시장이 추진한다고 하는 왕산 생가 복원과 허형식 장군 동상 건립에도 관심을 갖길 바란다. 내년 왕산 허위 선생 순국 111주기엔 직접 구미를 방문해 묘소에 참배하면 금상첨화겠다. 왕산이 없으면 석주도 없고 안중근도 없다. 대구 달성공원에 왕산과 석주의 기념비가 왜 나란히 서 있겠는가.

박진관 뉴미디어 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