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파리폴리’ (마크 피투시 감독·2014·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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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5   |  발행일 2018-11-15 제42면   |  수정 2018-11-15
결혼 후 사랑은 어떻게 되는가?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파리폴리’ (마크 피투시 감독·2014·프랑스)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파리폴리’ (마크 피투시 감독·2014·프랑스)

부부관계를 위한 탁월한 저서 ‘5가지 사랑의 언어’를 쓴 게리 채프먼은 집필 동기를 이렇게 밝힌다. 우연히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중년남성이 물었다는 것이다. “대체 결혼 후, 사랑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과학이 밝혀낸, 사랑에 빠지게 하는 호르몬의 기간은 길어야 2~3년이라고 한다. 호르몬의 유효기간이 끝난 후 사랑은 정말 어떻게 되는 걸까? 종류가 다른 사랑이어야 한다는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깊이 결합된 부부에게는 젊음의 상실도 이미 불행이 아니다. 함께 늙어가는 즐거움이 노인이 되는 괴로움을 망각시키기 때문이다.” 모노이라는 사람의 말이다. 이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노르망디에 사는 브리짓은 소녀감성을 간직한 아줌마다. 목장을 경영하는 남편 자비에는 일밖에 모르는 무뚝뚝한 사람이다. 당연히 둘 사이는 삐걱댄다. 이웃에 놀러왔던 젊은 남자에게 호기심을 느낀 브리짓은 그를 찾으러 파리로 향한다. 남편에게는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서라고 둘러댄다. 브리짓의 수상한 행동에 뒤쫓아간 남편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 발길을 돌린다. 파리에서의 짧은 일탈 후, 뭔가를 깨달은 브리짓은 서둘러 남편에게로 돌아간다. 과연 둘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잘 지낼 수 있을까?

칸, 베를린, 베니스 3대 영화제 모두에서 연기상을 탄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브리짓을 연기한다. 소녀 감성을 간직하고 있는 중년 여성을 사랑스럽게 그려낸다. 중견배우 장 피에르 다루생도 무뚝뚝하지만 부인을 깊이 사랑하고 있는 남편 역할을 진솔하게 그려낸다. 영화 ‘코파카바나’로 알려진,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감독 마크 피투시가 메가폰을 잡았다. 노르망디의 목장 풍경과 파리의 명소를 배경으로 중년부부의 갈등과 화해를 알콩달콩 재미있게 그려냈다.

“결혼 전에는 눈을 크게 뜨고, 결혼 후에는 눈을 반쯤 감아라”라는 말이 있다. 결혼 생활에 관한, 꽤 쓸 만한 충고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반대로 행동한다. 결혼 전에는 눈을 아예 감고, 결혼 후에 비로소 눈을 크게 뜨는 것이다. 그래서 연애 기간 중에는 보이지 않던 상대의 단점이 결혼 후에는 너무나 뚜렷하게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며, 내가 결혼한 사람이, 연애했던 사람이 맞는지를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레너드 코헨의 노래 ‘Take This Waltz’를 제목으로 한 캐나다 영화가 있다. 사라 폴리 연출로 국내에서는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남편의 품을 떠나 다른 남자에게 가지만, 사랑이 이루어지고 나자 다시 권태감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사랑의 과정과 소멸을 섬세하게 다룬 작품인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새 것도 언젠가는 헌 것이 된다”는 말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아름답게 반짝이던 사람이, 시간이 흘러 사랑이 시들해지면 낡은 가구처럼 무덤덤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본다. 부부는 낡은 가구가 아니라 포도주와 같을 수도 있다고. 오래될수록 더 깊고 오묘한 맛이 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래된 부부는 슬프고 아팠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숙성된 포도주와 같은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쳐다만 봐도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상대방이 기쁜지 슬픈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오래된 부부다. 정지용의 시 ‘향수’의 한 구절처럼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이지만, 상대방을 사랑과 연민으로 바라보게 되는 그런 관계다.

‘파리폴리’의 브리짓과 자비에는 때로는 낡은 가구처럼 무덤덤하지만, 때로는 묵은 포도주처럼 숙성된, 상대방의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리는 중년부부다. 짧은 일탈 끝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오는 브리짓, 그리고 그런 브리짓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자비에를 보며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결국 사람 사는 모양은 다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여곡절 끝에 부부가 함께 여행간 사해에서 서로의 몸에 진흙을 발라주는 장면과 나란히 바다에 떠있는 마지막 장면이 보는 이에게 행복감을 안긴다. 결혼 후에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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