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반값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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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9   |  발행일 2018-11-19 제30면   |  수정 2018-11-19
반값 아파트와 등록금 이어
광주선 반값임금으로 이슈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이 풍진 세상 살아남기위한
몸부림은 어떻게 전개될까
[아침을 열며] 반값의 경제학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반값 임금으로 현대차 공장을 유치하여 1만1천명을 채용하겠다는 ‘광주형 일자리’가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현대차와 노조, 그리고 광주시의 장기간 줄다리기가 막바지에 와 있는데 최종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광주 공장에서 생산할 품목은 기존 현대차 공장에서 생산하지 않은 소형 SUV 차량으로 한정해서 다른 데 일감을 뺏어오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 계획의 초임 연봉 4천만원은 현대차 노동자 평균 연봉 9천만원의 절반이 안 된다. 임금 부족분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주택 공급, 고용보조금에 2천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민노총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광주의 저임금이 다른 현대차 공장의 임금에 하향 압박을 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소형 SUV 차량만 제작하지만 나중에는 전기차, 수소차 생산으로 전환해서 결국 일감을 빼앗아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이 일이 성사되면 광주에서는 상당한 일자리가 생기지만 다른 지자체에서는 왜 광주만 2천억원을 주고 우리는 주지 않느냐는 불만을 제기할 게 뻔하다. 또한 노동자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광주에 반값 일자리가 생기면 울산형, 창원형, 군산형 일자리가 생기지 말란 보장이 없고 전국적으로 자기 지역에 공장 유치를 위한 노동 투매 현상도 걱정이 될 것이다. 국제적으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각국이 임금·복지·세금·환경 등에서 경쟁적으로 양보하는 소위 ‘내려가기 경쟁(race to the bottom)’의 국내판이라 할 만하다.

약 20년 전 독일 경제가 어렵고, 실업률이 10%를 넘었을 때 폴크스바겐 자동차에서는 노사협상을 통해 기존 임금의 80%를 지급하는 독립자회사 아우토 5000을 신설했다. 금속노조는 불황 속 대량해고 위협에 직면하여 상당한 양보와 타협이 불가피했다. 광주형 일자리는 말하자면 폴크스바겐 모델의 한국판인데, 노사간 신뢰가 높은 독일과 노사 간 불신이 심한 한국에서 그 진행과정은 아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 반값의 역사는 10년전으로 거슬러 간다. 아파트값이 폭등했던 2007년 대선에서 반값 아파트가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다. 아파트의 토지는 국가·지자체·공공기관이 소유하고, 입주자는 건물만 소유하는 토지임대부 아파트가 등장했다. 입주자가 토지는 소유하지 않으니 토지임대료를 내고, 건물만 소유하는 토지임대부 아파트는 전국의 여러 군데서 시도되었는데, 그 결과는 지역별로 크게 다르다. 강남은 완전 분양되었고 가격도 크게 올랐는데, 군포에서는 미분양 사태가 일어났고 최근 거제시의 실험도 미분양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파트 수요가 크고 가격도 비싼 지역에서는 분양이 잘 되는데 반해 비인기지역에서는 미분양이 속출하여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 학부모 등골이 휜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반값 등록금 운동이 일어났다. 한국의 등록금은 미국 다음 갈 정도로 비싼 게 사실이고, 이것은 교육기회의 불평등, 경제적 불평등의 세대간 이전이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운동의 결과 지난 10년간 등록금은 동결되었고, 필자가 일하는 한국장학재단이 전국 대학생들에게 국가장학금을 매년 4조원 가까이 지급하고 있어 그 수혜자가 대학생의 과반수다. 그 결과 등록금 총액 대비 실제 대학생들이 납부하는 등록금을 비교해보면 사실상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대학은 10년간의 등록금 동결과 입학생의 추세적 감소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반값 등록금 정책도 이제는 재고를 요하는 단계가 아닌가 판단된다.

부동산, 대학교육은 한국인들의 허리를 휘게 하는 양대 요인이고, 임금은 수출·고용·성장에 직결되는 핵심 변수다. 반값 아파트, 반값 등록금, 반값 임금은 우리가 이 풍진세상에 살아남기 위한 한국 특유의 독창적 몸부림인데 하나하나가 장차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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