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4基 고분군과 유물…1천600년 前 대가야, 고령 대표 브랜드로 부활

  • 석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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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01   |  발행일 2018-12-01 제5면   |  수정 2018-12-01
[토요일&] ‘대가야의 살아있는 박물관’ 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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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의 숨결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는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 전경. 고령을 ‘전국구 관광지’로 만들고 있는 고령의 유구한 역사 현장이다. <고령군 제공>

고령이 전국구 관광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대도시 근교권에 위치한 고령은 본디 특용작물 재배 등 근교농업 역사가 깊은 곳이다. 공단·공장도 많아 농업과 공업이 균형을 이뤄왔다. 하지만 최근 인구감소와 고령화, 기후변화 등으로 농특산물 재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업단지도 소규모 자영업이 대부분이어서 공동화도 우려되고 있다. 이에 고령군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비록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이곳엔 704기의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과 주산성 등 잊힌 대가야 유산이 잘 보존돼 있다. 살아있는 박물관인 셈이다. 군은 이같은 유산을 관광산업으로 이끌어 내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대가야가 신라에 병합될 때까지
시조 이진아시왕∼16대 도설지왕
520년간 ‘大王의 나라’로 맹주국

지산동의 가야지역 최대 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순장문화 등 역사적 스토리 풍성


◆지명에서 살펴본 고령 역사

가야사를 논하면서 빼놓을 수가 없는 것 한 가지가 바로 가야산 산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다. 대가야·금관가야 시조의 어머니이며 원래는 가야산(伽倻山)의 산신이었다. 천신 이비가지(夷毗訶之)의 감응으로 대가야의 왕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가야의 왕 뇌질청예(惱窒靑裔)를 낳았다.

왜 고령지역에서 가야산 산신인 정견모주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고령(高靈)의 한자명을 살펴보면 높고 신령스러운 고장임을 알 수 있다. 즉 가야산의 높은 기상과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신령스러운 고장이라는 뜻이다.

가야산은 최고봉인 칠불봉(해발 1천430m)을 비롯해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홍류동 계곡과 해인사, 기암절벽이 자연의 신비스러움을 더하게 하는 만물상 등 지금도 여전히 그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경북 성주군과 경남 합천군이다. 하지만 삼한시대 고령군 일대엔 진한의 여담국, 소등붕국 등 여러 부족국가가 형성됐다. 이후 이진아시왕이 대가야국을 건국하면서 이 지역은 562년에 대가야군(大加耶郡)으로 편제됐다.

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에 이르러 전국에 9주를 설치하고, 군·현의 명칭을 고칠 때 이 지역을 고령군(高靈郡)으로 개칭해 강주(康州·현 진주)에 소속하게 했다. 이후 고려시대 1018년(현종 9) 고양군이 영천현(靈川縣)으로 개칭되면서 이 지역은 경산부(京山府·현 성주)에 예속됐고 야로현은 합천군으로 이속됐다.

이처럼 1018년 가야산의 행정구역이 성주군과 합천군으로 이속됐지만 반만년 역사를 되짚어 볼 때 지난 4천년은 고령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령군이 왜 가야산과 산신인 정견모주를 이끌어 내어 왔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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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시대의 갑옷. <고령군 제공>

◆가야사 복원 중심 고령군 관광정책

가야는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 합병될 때까지 거의 600년 이상 존속됐다. 조선왕조가 500년이었으니 상당히 오랜 세월 우리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아 숨쉬었다. 고령은 가야국 유적지로서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사적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에 대가야 도읍지인 고령에선 특화된 역사·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중심지로서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역사체험 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해왔다.

1천600년 전 이 지역은 대가야 도읍지로서 후기 가야연맹의 맹주였다. 시조인 이진아시왕에서 도설지왕에 이르기까지 16대 520년간 지속된 ‘대왕’의 나라였다. 하지만 562년 신라에 병합되면서 가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 여러 무덤에서 놀라운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무덤을 통해 고령 가야가 가야의 맹주국, 즉 ‘대가야’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은 704기라는 가야지역 최대 규모 고분군으로 형성돼 있다. 그 당시의 내세관과 순장 문화 등 역사적 스토리와 국내 최고의 자연친화적 이색 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이같은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됐다. 2015년 등재 우선추진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2021년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고령군은 1963년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이 사적 79호로 지정된 이후 ‘대가야’ 콘텐츠를 지역 대표 브랜드로 육성해 오고 있다. 선택과 집중이다. 이는 ‘잃어버린 왕국’의 화려한 부활을 위한 것이다.

고령=석현철기자 shc@yeongnam.com

“도시로 떠난 청년들 되돌아오게끔 관광산업으로 일자리·경제 활성화”

■ 이상용 <사>고령군관광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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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우수축제로 승격된 고령 대가야 체험축제는 고령만의 축제에서 벗어나 그 영역을 점차 넓혀 나가고 있다. 특히 올해엔 가야문화권 22개 시·군 부스를 운영해 대가야뿐만 아니라 가야 문화 자체를 알리는 데도 일조했다. 대가야 체험축제 등 고령 관광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이상용 <사>고령군관광협의회 회장을 만나 ‘관광 고령’의 비전을 들어봤다.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 협의회 출범 초 우여곡절도 많았지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대가야 체험축제의 경우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새롭게 구성해야만 했습니다. 고령 관광이 발전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관광 마케팅 체계를 만들어 나갔지요. 그 결과 지금은 미래의 희망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협의회 설립 2년차를 맞은 이 회장은 “이젠 고령 관광산업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짧은 기간에도 불구 ‘고령 관광’은 놀라운 속도로 변화했다. ‘2017 올해의 관광도시’ 선정은 물론 대가야 체험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 유망 축제에서 ‘우수 축제’로 승격됐으며, 기존엔 볼 수 없었던 고령만의 관광마케팅을 통해 ‘새로운 고령, 변화된 고령’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관광객과 함께 상인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하다. 침체된 지역 경제가 되살아나고 곳곳에서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좌식이었던 식당가는 외국인 관광객에 맞춰 입식으로 바뀐 지 오래고, 교육을 통해 주민의 친절도도 개선되고 있다.

이전에 없던 관광사업도 시작했다. 협의회는 전국의 여행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팸투어 사업을 진행했다. 수도권 중심 여행업체 임직원 및 관광 관련 기자를 초청해 고령의 우수한 관광 자원을 알렸다. 이상용 회장은 “기존 진행하던 관광사업과 함께 향후엔 고령군의 관광 시설 위탁 경영을 통해 수익을 증대시킬 것”이라며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도시로 떠난 청년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고령=석현철기자 sh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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