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미투’ 외침이 ‘위드유’ 메아리 만들다

  • 유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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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06 07:48  |  수정 2018-12-06 09:17  |  발행일 2018-12-06 제25면
■ 대구의 미투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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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의 올 한 해 미투 운동 모습.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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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30일 열린 ‘#미투운동, 대구를 직시하다’ 포럼.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폭로가 나왔다. 올 한 해 여성계의 화두는 단연 ‘미투’(#MeToo·성폭력 피해 폭로)였다. 지난해 미국에서 불붙은 미투가 국내로 번진 것이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가 내부통신망을 통해 검찰 내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면서 시작된 미투는 이윤택, 조재현 등 연극·연예계로 번지더니 정치권을 넘어 최근에는 ‘대학 내 미투’ ‘스쿨미투’로 확산됐다. 유명인이나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여성들이 성추행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다른 여성들도 용기를 낸 것이다. 대구지역에서도 한 해 동안 미투 운동이 활발히 진행됐다.

지난 11월30일 대구 YMCA청소년회관 백심홀에서 ‘#미투운동, 대구를 직시하다’ 포럼이 열렸다. 올 한 해 대구에서 있었던 미투 운동을 돌아보고, 2019년 대구 미투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자리였다. 강혜숙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2018년 대구 미투 운동은 다양한 영역에서 성차별, 성폭력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해였다. 2019년에는 법과 제도에 존재하는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개선운동을 펼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지현 검사 폭로 계기로 전방위 확산
정치·교육계서도 성차별·성폭력 확인

지역 ‘스쿨미투 프로젝트’로 큰 반향
미투운동 연대 창작모임 ‘페이브’ 눈길

◆대구 미투 활동

올 한 해 대구 미투 운동은 ‘조직 구성’ ‘기자회견’ ‘토론회’ ‘강연’ ‘집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조직의 경우 미투 폭로의 답답함과 미투 상담을 위해 만들어졌다. ‘#미투운동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특별위원회’를 시작으로 ‘#미투대구시민행동’이 출범했다. ‘#미투대구시민행동’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고 상담창구를 개설했다. 또 상담창구를 통해 접수된 사건 지원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대구여성의전화, 대구여성회, 대구여성노동자회가 참여하는 TF도 구성했다. 기자회견은 지난 2월1일 검찰 내 성폭력사건 규탄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문화예술계 성폭력 규탄, 양승태사법농단 규탄 등 총 18차례 진행됐다. 토론회와 강연 역시 활발히 진행됐다. 지난 3월 ‘미투긴급집담회’를 시작으로 ‘미투운동과 대구경북지역언론보도 토론회’ ‘대학 내 성폭력 문제 해결 간담회’ 등 9차례 진행됐다. 집회는 ‘페이미투’ ‘스쿨미투’ 등을 주제로 총 6차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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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대구시민행동이 연 ‘미투 이후…’특강(위)과 ‘미투운동과 대구경북지역언론보도 토론회’.
◆스쿨 미투 운동

지난 7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대구·구미지부가 진행한 ‘스쿨미투 프로젝트’가 시작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스쿨미투 제보를 공론화하고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20여건의 제보가 페이스북을 통해 접수됐다. ‘OO중(고등)학교 △△과목 선생님’과 같은 방식으로 비교적 자세히 소개되면서 일부 학교에서는 제보자 색출, 제보 글 게시중단 요청 등 2차 가해가 이뤄지기도 했다. 교내에서 겪은 성폭력에 대한 제보가 이어지자 청소년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수많은 공감(좋아요·싫어요 등), 댓글, 공유 등이 이어졌으며 제보 수도 이에 비례해 증가했다. 제보자 대부분은 여학생이었다. 이들은 “(교사가) ‘성적이 안 좋으면 대충하다가 돈 잘 버는 남자 만나서 시집이나 가라’는 말을 자주했다” “(치마를 입은 여학생들에게 교사가) ‘다리를 내려라 선생님 마음이 흔들리잖아’라고 했다” 등의 제보를 이어갔다.

스쿨미투 운동은 ‘스쿨미투 대구대책위’ ‘스쿨미투 청소년연대 in 대구’ 등의 조직으로 확산됐고, 지난 11월18일 ‘페미니즘 학교를 만들자’는 주제로 스쿨미투 행진 집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스쿨미투 청소년연대 in 대구 현유림 활동가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페미니즘 교육’이 아니라 ‘페미니즘 학교’”라고 강조했다.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

지역 문화계에서는 다른 분야와 달리 미투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진 않았다. 페미니즘 창작모임 ‘페이브’에서 활동 중인 김현진씨는 “예술계는 작은 동일 직종 공동체여서 참는 경우가 많고, 프리랜서라 제재할 방법이 없고, 정년퇴직이 없어 가해자들이 계속 권력을 누리며 성폭력을 가하기 때문에 문화계에서 미투 운동이 쉽게 전개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 속에 지역에서도 미투 고발 사례가 몇 차례 있었다. 지난 3월 ‘미술대학 내 교수 성폭력 대나무 숲’에서 모 대학교 미대교수의 성추행 사실이 폭로됐고, 4월에는 한 중견 화가의 성추행 사실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미투 운동이 잠잠한 지역 문화계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미투 운동에 연대하는 창작 모임 ‘페이브’가 등장했다. 페이브는 페미니즘 시각을 기르기 위한 정기 독서, 영화모임 등을 진행하고, 여성과 소수자의 이야기를 시각예술 영역에서 풀어내는 ‘프로젝트 페이브’도 진행한다.

◆대학 내 미투 운동

지난 4월 경북대 교수에 대한 미투 고발이 있었다. 해당 교수가 최근까지 보직을 맡고 있었다는 점, 피해자가 수 차례 이야기했지만 대학 내에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이 쟁점이었다. 경북대 교수 미투를 시작으로 지역에서도 대학 내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대학 내 미투 운동은 온라인에서 활발히 진행됐다. ‘ME_TOO’ 해시태그를 통해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온라인 공간에 연일 업데이트가 됐으며, 교수에 대한 고발을 넘어 남학생들에 대한 미투, 학내 여성 혐오에 대한 고발 등도 있었다. 하지만 대학 내 미투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윤채령 대구풀뿌리여성연대 활동가는 “교육부가 지난 4월 성희롱·성폭력 근절 향후 계획’을 발표했지만 번지르르한 절차와 동일하게 권고 수준에 그쳐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한 학기에 수십 건이 넘는 성폭력 피해가 발생하는데, 수만 명의 학생 당 한두 명의 전문 인력이 배치돼 제대로 된 고발과 처벌의 창구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고, 둘째는 대학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여성과 남성이 대결 구도 안에 갇혀 있어 남성 공동체의 관성에서 이탈할 남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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