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리포트] 직권남용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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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4 07:38  |  수정 2018-12-14 07:38  |  발행일 2018-12-14 제10면
[변호인 리포트] 직권남용죄 (2)

지난 7일 전 기무사령관 이재수 장군이 서울 송파 한 건물에서 투신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 전 사령관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불법 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수사는 이미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12월3일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됐고 법원은 구속사유,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 전 사령관의 변호인인 석동현 변호사의 인터뷰를 보면 검찰이 이 사건과 별도로 다른 사건도 수사할 것 같은 분위기를 보인 점, 거주하고 있던 오피스텔의 취득 경위(빌린 경위)와 관련 참고인 전화수사를 벌이기도 한 점이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한다. 황교안 전 총리는 이 전 사령관의 장례식에서 “표적수사, 과잉수사, 별건수사 등의 수사 형태는 다들 잘못된 것이라 한다”며 걱정했고,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검찰에 대해 원색적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전 사령관이 받고 있던 혐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다. 전 정권에서 세월호 유족 동향을 사찰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으로, 만약 실제로 유족의 동향을 사찰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이러한 불법 명령에 따를 법적 의무가 없는 부하들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강요한 것이라면 본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전 사령관은 생전에 기무사령부의 정당한 직무수행이었다고 항변하면서 억울해 했다고 한다. 동향·동정·사찰은 상황·분위기와 어감에서도 차이가 있어 이 전 사령관은 당시에도 용어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고 한다(고인은 ‘상황’ ‘분위기’로 고치라고까지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타인을 강요하거나 타인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 성립하는 진정신분범(眞正身分犯)이다. 공무원 신분이어야 하고, 그의 직권을 행사하면서 실질적으론 권한을 남용한 경우여야 한다. 따라서 문제된 행위 자체가 피의자 직권의 범위 내에 속하지 않은 경우에는 애초부터 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또 아무리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지인관계 부탁에 의해 이뤄진 일에 불과하다면 강요나 권리행사방해로 볼 수 없어 무죄가 나오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한편 이 사건 투신은 적폐청산 수사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약 검사가 수사과정에서 별건수사를 시사했다면 수사권 남용으로 위법한 수사가 될 뿐만 아니라 피의자로부터 임의의 자백을 받아야 했던 증거법칙을 위배한 불법수사가 될 수도 있다. 망인이 수사기관을 원망하는 유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투신의 원인은 앞으로도 알기가 쉽지 않겠지만, 의욕이 앞서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는 앞으로 없어져야 한다. 압수·수색을 하더라도 피의자와 동거 가족의 인권을 배려하도록 그 과정을 세밀히 감독하는 체계가 갖춰져야 하고, 피의자신문조서 대신 전(全) 수사에 영상녹화를 의무적으로 실시해 조서 대신 영상물과 녹취서를 법원에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상녹화가 감시자가 돼 별건수사와 자백강요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대한변협신문 ‘(형사법) 전문분야 이야기’ 칼럼에서, 또 저서 ‘시민과 형법’ ‘수사와 변호’에서 강조해 온 적법수사의 필요성은 수사기관과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누구나 피의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투신의 고통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천주현 형사전문변호사(법학박사) www.brother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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