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부상 이겨내고 수도산 안착…지역주민엔 ‘공존 대상’

  •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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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5 07:30  |  수정 2018-12-25 07:35  |  발행일 2018-12-25 제10면
동면 준비 들어간 반달가슴곰 KM-53
20181225
반달가슴곰 KM-53이 지난 8월 김천 수도산에 방사돼 숲으로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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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7일 김천 증산면 수도리(수도산)에 방사된 이후 4개월 가까이 서식지 개척에 나선 반달가슴곰 KM-53이 김천·거창·성주·합천을 종횡무진하던 행동 영역을 성주 가야산 자락(가천면 일대)으로 좁혔다. 겨울을 맞은 곰이 행동 반경을 좁히는 것은 겨울잠을 준비한다는 신호다. 이는 KM-53이 가야산에서 동면에 든다는 뜻이자 향후 이 일대에 안착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야지맥이 곰 생존에 적절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산에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가야지맥이 반달가슴곰의 서식지로서 건강한 자연 환경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배경엔 세 살짜리 수컷 반달가슴곰 KM-53의 유별난 고집이 있었다. KM-53의 수도산 방사는 두 차례에 걸친 지리산 강제 회수와 대형 교통사고 등 수도산에서 비롯된 여러 고난을 극복한 결과물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KM-53의 가야지맥 안착 여부에 가슴을 졸여 왔다. 김천을 비롯한 가야지맥 구간 지자체 주민들에게 KM-53은 공존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작년 수도산자연휴양림서 첫발견
지리산 서식하던 개체로 밝혀져
지리산∼수도산 90㎞ 이상 이동
포획 후 지리산으로 다시 옮겨져

사람기피 훈련 뒤 재방사됐지만
일주일 만에 또다시 수도산으로
이동 중 도로서 고속버스와 충돌
앞다리 부러지는 등 큰부상 입어
환경부, 인위적개입 않기로 결정

현재 겨울잠 위해 활동량 줄여
김천시, 캐릭터 개발 사업 추진

◆수도산을 고집한 KM-53

1급 멸종위기 동물인 반달가슴곰 KM-53은 지난해 6월14일 이른 아침, 김천 대덕면 수도산자연휴양림 뒷산에서 등산로를 닦던 사람들에게 발견됐다. 이들이 전날 작업 현장에 남겨둔 빵 등 음식물을 먹고 있던 중 발견된 KM-53은 농가에서 사육하던 곰으로 오인되기도 했다. 당시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관계자조차 “지리산 야생 곰이 수도산까지 이동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사실상 우리에서 탈출한 사육 곰으로 단정했다. 그러나 포획된 곰은 유전자 검사 결과 2015년 지리산에서 태어나 방사되고, 지리산 불무장등 능선 일대에서 서식하다 어느 날 종적을 감춘 반달가슴곰 KM-53이었다.

KM-53의 수도산 출현은 야생 곰에 대한 기존의 상식을 무색하게 했다. 우선 지리산에서 김천 수도산까지 직선거리로 90㎞가 넘게 이동하는 등 지리산 곰 복원사업이 시작된 이후 개체 스스로 이동한 최장거리 기록(15㎞)을 가볍게 갈아 치웠기 때문이다. 평균 15~20㎢ 정도로 알려진 야생 곰 행동 반경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여기에다 공단의 체계적 관리를 벗어나 약 9개월간 야생에서 생존하는 가운데 지리산에서 백두대간을 타고 광주~대구고속도로와 대전~통영고속도로를 건너 덕유산국립공원을 거치는 등 난코스를 경유해 수도산에 이른 것으로 밝혀졌다. 전국을 대상으로 야생 곰 서식지 확장을 꿈꾸던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한 행태를 보인 것이다.

배설물 분석 결과 이동 경로에 널려 있는 산벚나무열매·산딸기·산뽕나무 오디 등 좋아하는 먹이를 따라 수도산까지 이동한 것으로 밝혀진 KM-53은 포획되자마자 지리산으로 옮겨졌다. 이후 KM-53은 반달가슴곰 자연 적응 훈련장에서 ‘사람기피’ 훈련 등을 거쳐 재방사됐으나 풀려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지리산을 떠나 수도산을 향했다. 이를 계기로 수도산 일대를 반달가슴곰 서식지로 인정하는 문제가 대두됐으나 KM-53은 지리산으로 잡혀가야 했다.

이때부터 김천시는 수도산을 반달가슴곰 서식지로 지정받기 위해서 환경부와 접촉하는 한편 수도산 일대에 설치된 불법 엽구 수거에 나서는 등 KM-53을 데려오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연구소 관계자도 “반달가슴곰 서식지를 태백산까지 연결하는 과정에서 수도산은 중간 지점으로 활용될 것”이라며 김천시 노력에 힘을 보탰다. 시민단체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게 바람직스럽다”며 반달가슴곰 서식지 확대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지리산은 KM-53이 오랫동안 서식한 곳이며, 다른 지역에 비해 올무 등 위해 요소가 잘 제거된 상태”라며 ‘지리산 방사’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김천시와 영남일보는 ‘수도산 반달가슴곰 서식지 확대’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갖는 등 KM-53이 또 다시 수도산을 찾을 때를 대비했다.

되돌아간 KM-53의 지리산 생활은 오래지 않아 끝이 난다. 지난 5월13일 새벽녘 지리산에서 수도산으로 이동하는 길목인 대전~통영고속도로 함양분기점 인근에서 도로를 횡단하려던 KM-53이 시속 100㎞ 속도로 달리던 고속버스와 충돌했다. 사고로 앞다리가 부러지는 등 부상을 입은 KM-53의 목적지는 수도산이었을 것이다. 이후 환경부는 KM-53 이동을 반달가슴곰 야생 개체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분산 과정으로 보고 지리산 회수와 같은 인위적 개입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반달가슴곰 복원사업 패러다임을 ‘개체’ 중심에서 인간과 공존을 위한 ‘서식지 관리 체계’ 중심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로부터 약 3개월 후 완치된 KM-53은 수도산(가야지맥) 자연의 일원이 됐다.

◆KM-53 동면 준비

방사되자마자 수도산 숲속을 내쳐 달려 30분 만에 거창 가북면에 이르는 등 행동반경을 넓히며 왕성한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인 KM-53은 현재 겨울잠에 들기 위해 특정 장소에 머무르며 활동량을 점점 줄이고 있다. 현재 KM-53이 머무는 곳은 도토리 등 먹이가 풍부하고 상대적으로 따뜻한 곳이다. 종복원기술원과 성주군은 KM-53 안전을 위해 올무 등 엽구를 수거한 상태다.

종복원기술원 남부지원센터는 “추위가 빨리 온 지난해 겨울엔 곰들이 12월 중순부터 동면에 들었으나 올겨울은 크게 춥지 않아 12월 말쯤 될 듯하다”며 “곰들의 동면은 가수면 상태다. 인기척을 느끼면 동면 장소를 옮길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에너지 소모로 탈진할 수도 있다. 겨울 산행객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최적의 서식 환경 조성

김천시는 지금까지 수차례에 걸쳐 수도산 일대에 놓인 엽구를 수거하는 등 KM-53 안전 확보에 힘을 쏟아왔다. 그러나 KM-53을 위협하는 요소는 곳곳에 숨어 있다. 문광선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남부지원센터장은 “KM-53이 수도산에서 가야산·독용산 등으로 무난히 활동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불법 엽구 수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여전히 올무 등 야생동물을 위협하는 엽구가 발견되고 있다”며 “KM-53이 동면하는 동안 이 같은 위해 요소들을 원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센터장은 “남부지원센터 직원들(5명)과 특정 지역을 살펴본 결과 불법 엽구가 무더기로 나왔고, 다른 특정 구간은 아직 엽구 제거작업을 시작하지도 않은 상태”라며 “내년 봄엔 동면에서 깨어난 KM-53이 먹이활동을 위해 산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겨울에 안전장치를 확보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종복원기술원 남부지원센터는 수도산자연휴양림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직원들은 상시 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8월 말 KM-53이 수도산에 방사돼 적응기를 거치는 9월 말까지 전원 24시간 근무체제를 유지했다. 실시간 개체 위치를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요즘도 하루에 두 번씩 육안으로 KM-53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험준한 산을 몇 차례씩 오르내리는 일이 잦다. 문 센터장은 “KM-53이 10월까진 하루 평균 2~5㎞ 정도를 이동하며 활동했으나 현재는 반경 1㎞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동면을 준비한다는 시그널”이라며 “지난 가을 먹이활동을 하면서 동면 장소도 정해 뒀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KM-53이 동면하는 동안 내년 봄 실행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수도산 일대 생태 환경이 반달가슴곰 서식에 어느 정도 적합한지 등을 세밀히 검토해야 하고, 적절하다면 반달가슴곰을 추가로 방사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며 “수도산 일대를 살펴본 결과 먹이는 문제가 없다. 서식지 안정 여부는 지자체와 주민의 관심 정도에 따라 결정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KM-53이 김천 수도산에 오게 된 배경엔 김천시와 주민의 노력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천시는 KM-53의 안전한 서식환경을 만들기 위해 1억5천만원(국·도비 제외)을 확보하는 한편 캐릭터 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천=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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