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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백림정’ 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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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호기자
  • 2019-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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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옻물’ 우려내는 남편…정성껏 ‘옻닭’ 요리하는 아내

좋은 옻나무는 최소 20년 이상 되어야 한다. 예전에는 근처 옻골에서 나무를 확보했지만 지금은 강원도 화천에서 주문해사용하고 있다.
동구 도동. 국내 첫 천연기념물인 측백수림을 품은 절벽 탓인지 그 언저리에 들어서면 귀기(鬼氣)가 느껴질 정도로 고즈넉함이 감돈다. 바로 옆 평광동은 대구의 마지막 사과(홍옥) 마을이다. ‘대구 사과’라는 말을 만든 평광동은 팔공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평광동은 1980년대 중반까지 사과나무 수천그루가 있는 국내 최대 사과 산지였다. 1990년대 도시화로 재배 농가가 줄어들면서 현재는 사과나무 수백그루로 명맥을 잇고 있다. 평광동 971에 있는 수령 84년의 사과나무는 미국산 홍옥으로 현 소유주인 우채정씨의 부친이 1935년에 심은 100여 그루 중 현재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그런 도동골짜기에 1980년대 어느 날 약수탕옻닭 붐이 인다. 그 흐름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옻닭 전문식당 ‘백림정(百林亭)’이다.

국가대표 빙상선수의 꿈이 좌절돼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기도 했던 김지훈 백림정 사장. 그는 제대로 된 옻닭의 맛을 위해 매일 참옻나무를 가마솥에 넣고 장작불로 우려내 사용한다.
팔공산 사과마을 언저리 도동골짜기
중풍온 아들에게 할머니가 먹인 옻닭
건강회복한 부친, 도동약수터지기 삶
방문객 성화, 잔치국수·파전 등 팔아

스피드스케이트 태극마크 눈 앞 좌절
옻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8년간 외도
옻물 추출 꾀부리지 말라는 부친 당부
20년이상 자란 나무를 사용해야 제맛
40여년 된 가마솥에 4시간 정도 우려내

닭 진기 유지 위해 내장 붙은채로 주문
목둘레까지 기름 제거 후 아내에 건네
뜸들이기 따라 퍼지거나 질긴 식감 피해
곁반찬에 백김치·평광동 사과 샐러드


◆ 옻나무골과 인접한 백림정

솔직히 이 식당의 내력을 경청하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주인 김지훈씨(51)의 살가우면서도 진솔하고 도타운 정이 감도는 웃음이었다. 단연 이 집의 최고 메뉴다. 무한 긍정의 힘이 느껴지는 그의 씩씩한 보이스가 숱한 단골을 잉태한 것 같다.

기자가 찾은 날 그는 쌀쌀한 도동 계곡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작불로 가마솥에 담긴 참옻나무를 옻물로 우려내고 있었다. 그는 옻물을 낼 때는 제사장의 맘으로 임한다. 어렵사리 추출한 옻물을 주방을 지키는 아내한테 주면 아내는 본격적으로 요리를 해낸다.

한때 젊은 혈기에 취해 골프장을 누비고 사장 행세도 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이 오늘 이렇게 ‘옻물내는 아저씨’로 변신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경북고를 나온 아버지(김상길)는 참 무정하고 매정하고 우직했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중풍을 맞는다. 아버지는 하던 사업을 잠시 뒤로 물리고 산속으로 들어간다. 자연인이 되기로 맘을 먹고 도동약수터에 진을 친다. 그 약수터는 8대째 내려온 경주김씨 문중 땅이었다. 당시 가창의 황물탕과 함께 지역에선 치유효과가 좋은 약수터로 입소문이 났다.

김상길·지훈 부자가 옻물용 가마솥 앞에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아버지는 약수터지기가 되고

거기 가려면 1시간에 한번 오는 20번 버스를 타고 시내에서 들어와야만 했다. 아버지는 그 약수터 주인이 된다. 할머니는 몸이 편찮은 아버지를 위해 내림음식이었던 옻닭을 자주 약처럼 먹게 했다. 그게 훗날 백림정의 자산이 된다.

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동이 트기 무섭게 물통 든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물을 한번 받으려면 40분 이상이 걸렸다. 아버지는 약닭 덕분인지 건강을 곧 회복한다. 하지만 가업도 포기하고 약수터 옆에 진을 쳤다. 약수터 방문객이 자꾸 “요기 될 만한 걸 팔아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몇 동의 가건물을 지었다. 옻닭은 물론 잔치국수, 파전 등도 팔았다. ‘도동약수탕옻닭집’은 이내 핫플레이스가 된다. 당시 근처에 옻나무가 많이 나는 옻골이 있었다. 거기 옻나무를 채취해 필요한 만큼 잘라 사용했다. 지금은 강원도 화천에서 주문해 일정한 굵기의 참옻나무를 받아서 사용한다.

김 사장은 고교시절 스피드스케이트 국가대표를 넘겨다 볼 정도의 스포츠맨이었다. 산악부에 들어가 60㎞ 1박2일 팔공산 종주에도 참가해 두각을 드러낸다. 그 인연으로 지역 산악인과 깊은 인연을 맺는다. 그때 인연이 다수 단골로 이어졌다. 하지만 하절기 손님이 몰려들면 그도 식당으로 가서 일손을 거들어야만 했다.

꿈에도 그리던 태극마크는 달지 못했다. 앞길이 막막했다. 경북고 출신이었던 아버지가 더 상심한다. 장남이 공부 대신 운동으로 간 것도 실망인데 원하던 메이저급 빙상선수자리까지 좌절되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 착잡했겠는가. 보다못한 아버지가 당시 팔공산에서 가장 번듯하게 영업을 잘하고 있던 산채비빔밥 전문 ‘산중’의 김태락 사장한테 자식을 부탁한다. 처음엔 솔직히 손님이 앉았을 때 수저를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더 혹독한 시절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대한 날 약속시간보다 딱 2시간 늦게 귀가했는데 아버지는 다음날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아직 정신 못차렸으니 다시 산중으로 가라”고 호통을 쳤다. 아버지의 지시는 지엄했다.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

이후 옻으로 돌아오기까지 8년쯤 외도를 했다. 북구 침산동의 모 인쇄소에서 기술을 배웠다. 한때 카센터도 경영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가 그가 약간 일궈놓은 터전을 일시에 쓸어가버렸다. 딱 270만원이 남았다. 중고 짐차에 가족을 태우고 잡화를 팔기 위해 보부상처럼 이 장터 저 장터를 전전했다. 당시 아내는 요리를 배우고 있었다. 주말에는 옻닭집으로 가서 시아버지를 도와줘야만 했다.

◆ 철거된 약수터옻닭

절체절명의 순간은 2007년이었다. 사실 옻닭집은 무허가였다. 동구청에서 시한부 철거명령을 내렸다. 20년 역사의 도동약수터 시대를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해 8월4일 현재 자리로 옮겨와 백림정 시대를 연다. ‘백림’은 바로 옆에 있는 측백수림을 의미한다. 서예가 석천 이인환씨가 그를 위해 상호를 휘호로 선사했다.

백림정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고 믿었다. 도동은 보통 계곡이 아니다. 최고의 숲과 최고의 사과나무를 가진 동네가 아닌가. 그리고 어영부영 보낸 지난 세월을 말끔히 극복하기 위해 품은 백림정이니 자세부터 남달라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몇 가지를 당부했다. 다른 비법은 없다. 꾀를 부리지말고 정해진 방식대로 옻물을 추출하라는 것이었다. 요리는 단순해야 된다고 말했다. 옻나무는 최소 20년 이상 자란 것을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제맛이 드러난다. 1~2년생 옻나무는 진물이 잘 형성되지 않아서 사용할 수 없다.

강원도에서 한 차 분량이 오면 반년 정도 사용한다. 괜찮은 옻나무는 가장자리에 검은 진물 테두리가 형성된다. 예전에는 도끼를 갖고 알맞게 잘랐지만 지금은 강원도 현지에서 알아서 잘라 보내준다. 나무가 오면 일단 바람 잘 통하는 그늘에 쌓아 6~7개월 숙성시켜 사용한다. 너무 오래 묵히면 벌레가 파먹어 사용할 수가 없다.

아버지는 굵게 잘랐지만 그는 잘게 잘라 사용한다. 그 시절보다 손님이 많이 늘었고 수요를 감당하려면 옻나무가 가늘어야 옻물이 더 잘 우러난다는 걸 알았다.

물도 많이 변했다. 도동약수터도 수명을 다해 폐쇄됐다. 이젠 지하수를 사용한다. 수돗물이 편리할 것 같지만 그걸 사용하면 화학성분 때문에 옻물이 밍밍해져버린다. 초창기엔 약수터에 가서 약수를 받아 사용했다. 가끔 잡물을 사용해 옻물을 내면 아버지는 귀신처럼 그걸 알고는 화를 버럭내면서 옻물을 다 버렸다.

가게 밖에는 40년 된 가마솥이 있다. 금세 옻물이 나오는 게 아니다. 2시간30분쯤 장작불을 때면 포도주색이 되고 4시간쯤 되면 비로소 진갈색으로 변한다. 솥 안에 있는 옻나무는 다 건져내 말린 뒤 다시 장작으로 활용한다.

◆ 옻닭의 최대 승부처 뜸 들이기

토종닭은 <주>하림에서 생산한 것이다. 가게 벽에 도축검사증명서가 부착돼 있다. 공장에서 미리 내장을 다 제거하고 온 걸 사용하지 않는다. 내장 붙은 채로 보내달라고 주문한다. 닭의 진기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는 닭기름이 인체에 그렇게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목둘레 기름까지 말끔히 제거한다.

옻물과 장만된 닭을 주방에 기다리고 있는 아내한테 건넨다. 아내는 그걸 압력솥에 넣고 생강 한 쪽, 천일염을 조금 넣어 45분 가열한다. 옻닭의 최대승부처는 뜸을 얼마 동안 들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1분 남짓한 시간을 잘 갈무리하면 졸깃해지지만 시간을 놓치면 푹 퍼져버리거나 너무 질겨 식감을 잃어버린다. 늘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피드백을 강조한다. 식당주의 생각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음식을 먹는 단골의 입맛을 꼭 기억한다. 그게 단골과 오래 공감하는 법이다. 아무리 요리를 잘해도 자기 식성에 맞지 않으면 그 음식은 단번에 낙제가 된다.

잘된 옻닭의 육수에는 기름이 과도하게 형성되지 않는다. 백숙의 경우 예전에는 13가지 한약재를 넣었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한약재가 되레 식감을 감소시킨다는 생각에 연잎, 황기, 구기목, 엄나무, 은행, 마늘 정도만 넣는다. 옻닭을 할 때는 옻밥을 죽처럼 만들지 않고 약밥처럼 직접 지어서 낸다.

곁반찬 중에는 종가버전의 백김치가 인상적인 맛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8월 이외에는 평광동 사과로 만든 샐러드를 반드시 낸다. 5월에 채취한 의성마늘쫑도 반찬으로 낸다. 창고엔 16년 묵은 신안소금이 숙성되고 있다. 손님이 오면 맨 먼저 속을 덥혀주기 위해 연잎차를 낸다. 그도 요리를 하고 싶어 매일 20그릇의 칼국수를 직접 반죽을 밀어 만든다.

백림정은 가족애가 남다르다. 한때 4대가 한 집에 살았다. 조부모가 작고하고 나선 3대가 함께 산다. 그는 도동지킴이다. 2007년부터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면서 도동측백나무보존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겨울에 절벽 아래 떨어진 씨앗을 잘 갈무리해 100여그루를 증식하는 데 성공했다.

백림정은 현재 이웃한 오리전문 향나무와 달맞이식당, 옻닭 전문 다리골식당, 삼겹살을 하는 삼육구식당 등과 머릴 맞대고 살아간다. 매주 1·3째 화요일 휴무. 동구 도평로 249. (053)986-0032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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