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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노숙 끝 정착인데 이 추위에 비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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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경석기자 정석규 수습기자
  • 2019-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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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서도 내몰리는 대구 신암4동 사람들

철거 앞둔 여관 1∼2평 달셋방엔

거동불편 등 갈 곳 없는 40여명

대부분 홀몸에 고령 기초수급자

저소득 주거 대책은 딴 세상 얘기

“복잡한데다 서류 뗄 짬이 어딨나”

①② 지난 24일 오후 대구 동구 신암4동 쪽방촌 내 여관의 폐쇄된 모습. ③ 쪽방촌 내 한 여관 복도의 모습.정석규 수습기자 jskhiso@yeongnam.com
“이 겨울에 어디로 거처를 옮겨야 할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지난 24일 오후 대구 동구 신암4동 한 쪽방촌. 이곳에서 만난 주민 허모씨(76)는 “이곳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재건축 사업으로 또 이사를 가야 할 판”이라며 “최근에는 관절이 안 좋아져 밖에 나가기도 힘든 데 휠체어도 없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인근에 ‘달셋방 있습니다’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한 여관으로 들어서자 1~2평 남짓한 좁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건물 내부는 한낮임에도 썰렁한 기운과 함께 오랫동안 쌓인 먼지가 날려 시야를 가렸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들리는 ‘삐걱 삐걱’ 소리는 분위기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세입자들이 이용하는 공용화장실에서는 오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복도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술병과 가재도구도 눈에 띄었다. 한 노인은 “(아파트)공사하는 놈들 때문에 쫓겨나야 한다”고 욕을 하기도 했다.

이곳 주민들은 모두 홀로 살고 있으며 대부분 60대 이상의 기초생활 수급자다. 쪽방촌 주민들은 짧으면 2~3년 길면 10년 가량 노숙생활을 하다 거처를 마련한 이들이다. 쪽방 세입자들은 계약서도 제대로 작성하지 않고 보증금 없이 20만원 가량의 월세만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다음달 20일까지는 다른 거처를 구해야 한다.

IMF 외환위기 당시 사업 실패 후 20년간 노숙과 쪽방촌을 옮겨 다니며 지내고 있다는 임모씨(63)는 “이웃들이 지난해부터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면서 “그래선지 다른 지역에 있는 여관들이 이미 꽉차 주머니 사정이 시원찮은 내 형편에 맞는 방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부터 이 일대 여관 등 쪽방에서 살고 있던 주민 105명 중 60여 명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났다. 일부 쪽방집은 출입문이 자물쇠로 잠긴 채 붉은색 래커로 ‘출입금지’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저소득층 주거 안정을 위한 LH매입임대주택과 버팀목 전세대출 등 다양한 정책이 있지만 실상 이곳 주민에게는 다른세계 이야기였다. 인근 쪽방촌 주민 채모씨(52)는 “우린 복잡한 거 모른다”고 손사래를 치며 “서류 떼러 돌아다닐 짬이 어딨나. 그럴 시간 있으면 일이라도 더 나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모씨(71)는 “그런 제도에 대해 안내해 준 사람도 없고 대출한도마저 낮아서 돈을 빌려 방을 얻는다는 것은 딴 나라 이야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다른지역 쪽방촌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쪽방상담소에 따르면 대구 지역에서 여인숙과 여관 간판을 달고 운영하는 쪽방촌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718명의 거주민이 살고 있다. 쪽방촌은 동대구역 뒤편 신암4동과 중구 경상감영공원 인근, 서구 비산동 등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면 그대로 길거리에 나앉게 돼 노숙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대구 쪽방상담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장민철 쪽방상담소장은 “쪽방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대부분 고령이다 보니 방을 얻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리게 되면 한랭질환 등 건강마저 위협받게 된다”며 “이들을 위해서라도 최저주거기준 이하 거주자 중 고령자 등에 대한 안전장치 등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대구시는 오는 2월까지 쪽방 주민 등 취약계층을 위해 통합무료진료소를 운영하는 등 겨울철 생활안정 특별 보호대책을 추진한다.

민경석기자 mean@yeongnam.com
정석규 수습기자 jskhis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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