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영의 시중세론]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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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01   |  발행일 2019-02-01 제22면   |  수정 2019-02-01
시장지향적 국가균형발전
단순 이념아닌 현실적 목표
지방분권과 관련성 있지만
논의의 본질적인 틀은 달라
한쪽만 선택해서는 안될말
[최철영의 시중세론]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충격적이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시작부터 의심스러웠다. 이어진 내용은 지방분권이 말은 좋지만 지방을 망하게 한다는 논리였다. 물론 지방분권의 명분에 대하여는 반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지만 면피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지방의 내재적 역량에 대한 회의와 부정, 그리고 지방분권이 경쟁심화와 가난한 지방의 파산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있었다. 결국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방분권을 늦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회자되고 있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냉정하게 보면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지역이 강한 나라, 균형 잡힌 대한민국’이라는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비전은 허위적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지역은 이미 발전이 아닌 소멸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2018년 국내 합계출산율은 집계 이후 처음으로 1.0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이민 같은 유입인구 없이 현재의 인구를 그대로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2.1명 수준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약 10년 뒤인 2030년에는 전국 3천482개 읍·면·동 중 40%인 1천383개가 소멸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대부분 소멸위기 읍·면·동은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기초자치단체다. 이러한 절박한 지역의 위기 상황에서 지역중심 균형발전은 허망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균형발전은 대한민국이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국가적 명제다. 단지 이념이나 추상적 대의명분 때문이 아니다. 현실 사회와 시장을 외면하고 철지난 이념만으로 나라를 운영하려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오히려 국가균형발전은 시장을 키우기 위한 매우 시장지향적이며 현실적인 목표다. 우리 경제는 성장포화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성장점을 모색하고 신시장개척에 애를 쓰고 있다. 그렇다면 우선 가까운 곳에 있는 이웃 지역을 활성화시켜 생산과 소비의 주도적 중심이 되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세계 시장에서 우리의 경쟁력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또한 국가균형발전은 국가의 미래성장을 위한 경제적 전제조건일 뿐만 아니라 현행 헌법이 규정한 헌법상의 가치다. 우리 헌법은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엄숙하게 선언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역의 특성에 맞는 자립적 발전을 통하여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과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자못 비장한 결심을 보이고 있다. 과거와 구별되는 지역발전에 대한 전향적 자세전환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국가균형이라는 거시적 측면이 아니라 지역발전이라는 개별적 과제로 축소하여 추진하였다. 현 정부에서는 이를 국가균형발전으로 복원하고 지역발전위원회도 국가균형발전위원회로 명칭을 회복하였다. 지역 거버넌스 조직도 이명박정부에서는 광역경제권발전위원회를 통해 광역경제권 사업의 추진과 지역 간 연계사업 발굴 등을 처리하도록 하였으나 전문성 약화와 칸막이로 인해 실질적 성과가 미흡했다. 박근혜정부에서는 생활권발전협의회를 설치하여 시도의 특성 있는 발전과 지역생활권에 관한 중요사항의 협의조정 등을 처리하고자 했지만 협의조정 기구의 권한축소로 실질적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현 정부는 자립형 지역발전 추진의 중심축으로 지역혁신협의회를 설치하였다. 경북 지역혁신협의회도 최근 도내 9개 시·군에서 제출한 지역발전계획의 심의를 위한 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문제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마구잡이로 묶어서 양자택일적으로 몰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둘은 상호 관련성이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 논의의 틀이 다르다. 지역주민의 의지와 지역의 요구를 반영하여 독자적으로 법규를 만들고, 지역발전에 가장 효율적인 조직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지방 정부가 없는 현실에서 지방분권은 풀뿌리 민주주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방분권을 미루어야 한다는 주장은 깊이 있는 통찰의 부족이거나 지방분권을 해줘봐야 이를 소화할 능력이 지방에는 없다는 편향된 인식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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