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밥상머리교육 우수사례 공모전] 금상 노해은씨 가족 수기

  •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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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11 07:57  |  수정 2019-02-11 07:57  |  발행일 2019-02-11 제18면
“할아버지 조언 덕 인내하고 학생 장점 찾으려 애써”
20190211
노해은씨가 자신의 멘토인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손동욱 기자 dingdong@yeongnam.com

중학교 교사인 노해은씨는 교사였던 할아버지가 인생의 멘토다. 학생을 지도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할아버지를 찾아 고백하고 조언을 새겨듣는다.

교사였던 할아버지 영향 代이어 교사
교칙 어기고 책상 엎는 학생 만나기도
억지로라도 예쁜점 찾으란 조언 따르자
학생에게 죄송함과 감사의 편지 받아


#1. 내 인생의 멘토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우리 할아버지라고 대답할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살아가는 데 늘 바른 방향을 안내해주셨다. 내가 교사가 된 것 또한 중학교 교사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할아버지의 정년퇴임식에 참석했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매년 겨울이 되면 학창시절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귤 한 박스와 함께 감사한 마음을 전해오는 할아버지의 제자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존경받는 교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나도 할아버지를 이어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교사가 되고 보니 교사라는 직업은 내 상상과 너무 달랐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교사의 역할 중 아주 작은 부분이었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생활지도였다.

#2. 몇 년 전 우리 반에는 악명 높은 아이가 하나 있었다. 지각, 복장 불량 등 교칙을 안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수업 중에 기분이 나쁘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상스러운 욕을 퍼붓거나 책상을 엎고 나가버리는 일도 대수롭지 않은 녀석이었다. 그러다보니 그 아이와 언성을 높이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날도 그 아이와 신경전을 한 판 벌이느라 기진맥진해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을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다. “나중에 생활기록부 적을 때 걔 행실을 적나라하게 적으려고요. 아주 나쁜 놈이에요 그놈!” “어이구, 그 녀석이 여간 속을 썩이는 게 아니구나. 그런데 해은아, 할아버지가 시골 중학교에 근무할 때 얘기해줬던가. 우리 반에 굉장히 산만하고 어수룩한 학생이 있었거든. 어쩌다 그 학생 생활기록부를 보게 되었는데 말이지. 이전 담임 선생님이 이렇게 적어놨더구나. ‘시골 촌닭이 장에 나온 듯이 어리바리함’” “하하, 그 선생님은 뭐 그런 표현을 적었을까요. 애가 아무리 어리바리하기로서니 너무 했네요!” “그렇지? 나중에 걔가 그걸 본다고 생각해보렴. 선생님이 자기를 이렇게 평가했다는 걸 알면 그 아이는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말이다. 지금은 죄다 미운 점뿐인 아이겠지만 억지로라도 예쁜 점을 찾아보렴. 티끌만 한 장점이라도 자꾸 찾다 보면 그 아이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잖니. 미우나 고우나 네가 1년 동안 맡아 기르는 아이잖니.”

#3.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눈 후 머리가 복잡했다. 며칠이 흐른 후 아침 조례 시간이었다. 엄마에게 한소리 듣고 우울해하는 친구를 달래려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 아이의 모습을 발견했다. ‘쟤가 애들한테 너스레는 잘 떨지.’ 억지로 찾아낸 그 아이의 첫 번째 장점이었다.

이후로도 그 아이와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다만 달라진 것이라면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미운 짓을 하더라도 덜 미워하고, 예쁜 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졸업한 지 2년이 지나고 그 아이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때는 너무 죄송했다고, 지금은 마음잡고 학교 잘 다니고 있다고 말이다. “그때 걔 기억나세요? 고등학교 잘 다니고 있다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쳇, 저랑 있을 때 마음잡고 잘했어야죠! 이제 와서 잘한다고 하면 뭐 하나요”라고 투덜댔지만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미우나 고우나 1년 동안 맡아 기른 아이’라서 그런지 잘하고 있단 말에 마음이 놓였다.

#4.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 반에 아무 이유 없이 학교를 안 나오고 방에만 박혀있는 학생이 있었다.

고등학교 원서를 쓰는 날이었다. 그날도 학생은 학교를 오지 않았고 내 전화도 받지 않았다. 애타는 마음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는 내 전화를 받자마자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내뱉으며 다시는 전화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그날도 저녁식사를 하며 이 이야기를 꺼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원서 안 쓰면 제가 손핸가요? 자기 아들이 학교 못 가는 거지. 안 쓰고 말죠 뭐!” 할아버지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계시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엄마도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애는 방에 박혀서 안 나오지, 고등학교 원서는 써야 하지…. 저런 아들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화가 날 것 같지 않니?”

#5. 기분은 나빴지만 어머니께 다시 전화를 드렸다. 전화가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얼른 전화를 받으셨다. 그리고는 아이를 어떻게든 달래서 학교 보내겠으니 고등학교 원서를 써달라고 하셨다.

그 아이의 졸업식이 있었던 날, 아이의 부모님은 보질 못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아이 때문에 고생하셨다,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 죄송하다, 그리고 앞으로 좋은일만 가득하길 빈다는 내용이었다.

할아버지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앞으로는 연락하지 말고, 고등학교도 안 보내겠다고 한 그 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면. 그 아이와 어머니는 나에게 원망을 했을 테고 나는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그 어머니의 가시 돋친 말이 너무나 아프고 속상했지만 지금은 그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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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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