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영의 시중세론] 일본인이 일깨운 3·1운동의 진정한 의미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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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01   |  발행일 2019-03-01 제22면   |  수정 2019-05-01
민주공화국으로 자리매김
민족적 합의 이끌어낸 각성
평등 기초의 자기지배 요구
우리 민족의 진정한 독립은
한반도 평화 달성돼야 가능
20190301

석달 전, 그러니까 작년 11월 말에 대구에서 개최된 창조도시 글로벌포럼에서였다. 당시 포럼의 주제 연설을 했던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대구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계기로 미래지향적 도시로 나아갈 것을 당부했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3·1운동을 포함하는 한국근대사 연구의 거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시아 인민의 양심회복을 주장한 3·1운동의 정신을 고려하면, 외국의 양심적 학자가 3·1운동 100주년과 함께하는 사업을 우리 정부가 마련하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와다 하루키 교수가 자발적으로 3·1운동 100주년을 일깨우는 ‘사건’을 벌였다. 그는 지난달 초, 일본 도쿄의 중의원 회관에서 일본이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통해 한일관계와 북일관계를 발전시킬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는 다나카 히로시 히토츠바시대학 교수, 우츠미 아이코 게센여학원대 명예교수 등 일본의 쟁쟁한 학자와 전문가 226명이 동참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올해는 3·1 독립선언이 발표된 지 100년이 되는 기념비적 해로서 100년 전 한민족이 일본인들에게 일본을 위해서라도 조선은 독립해야 한다고 설득하려고 했음을 강조했다. 더 나아가 이제라도 일본인들이 이 위대한 설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동북아 평화를 위한 상호이해와 협력의 길로 갈 것을 촉구하였다.

이는 우리민족이 선도한 민족해방운동으로서 3·1 운동의 본질을 꿰뚫고 동북아를 포함한 세계가 민족자결과 비폭력의 평화를 현대적으로 실천할 것을 요구하는 고담준론(高談峻論)이다. 이에 비교하면 3·1운동 100주년을 화려하게 기획한 행사와 만세운동의 퍼포먼스 재현으로 채우려는 우리 정부의 표피적이고 경박한 태도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사실 3·1운동은 우리가 편하게 생각하는 만세운동 사건을 넘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속되고 존중되는 가치를 포함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왜냐하면 3·1운동은 우선 정치사적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민족적 합의를 이끌어낸 민족의 각성이었기 때문이다. 일제의 강점 하에서 우리민족의 독립운동은 각계 각층에서 전개되었지만 의병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세력은 군주국가의 부활을 꿈꾸었다. 이와 달리 계몽운동세력은 공화제를 목표로 하는 독립운동을 펼치면서 양 세력 간의 갈등은 상호 간에 살상에까지 이르는 심각한 반목과 분열의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3·1운동 이후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세력은 모두 민주공화제를 천명하였다. 결국 3·1운동을 통해 우리 민족이 달성하려 했던 독립은 한반도를 강점하고 있었던 타민족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신분제도를 부정하고 평등에 기초한 자기지배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3·1운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정의와 인도를 인류사회에 확산하기 위한 비폭력주의를 선도했다는 세계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를 증명하는 사례인 중국의 5·4운동, 인도, 베트남 등 식민지배를 받던 약소민족의 민족해방운동이 우리 민족의 3·1운동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 민족이 3·1운동을 통해 직접적으로 독립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성공한 운동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3·1운동은 세계 제1차대전을 끝낸 국제사회가 강대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제법질서를 구축하려는 오만함에 일격을 가하여 당시의 야만적 국제법질서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비록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개최되었던 북미간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상회담은 실패로 귀결되었지만 100년 전 3·1운동이 준 교훈은 우리 민족의 진정한 독립은 한반도에서 평화가 달성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오늘, 도쿄에서의 사건과 하노이에서의 사건은 우리가 그동안 경험한 3·1운동이 정치적 해프닝이 아닌 민족의 주체적 삶 속에서 생활의 원리로 자리 잡아야 함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 대구경북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주도적 위치를 잃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희망이 살아 있는 미래도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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