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숙의 전통음식이야기] 무청 시래기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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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06   |  발행일 2019-03-06 제30면   |  수정 2019-05-01
[권현숙의 전통음식이야기] 무청 시래기
시래기

겨울철 농촌의 처마 밑에 매달려 있는 시래기는 소박한 고향의 정겨운 풍경을 생각나게 하고 가난하고 힘들었던 옛날에 대한 아련한 향수에 젖게도 하고, 푸근하고 따뜻한 엄마의 손길을 느끼게 한다. 김장철에 버려진 무잎이나 남은 배춧잎이 처마 밑에서 추운 겨울의 세찬 바람과 눈발을 맞으며 건조된 시래기는 겨울철 우리 몸에 부족한 영양을 보충해주는 훌륭한 식재료로 탄생한다. 김장 담그고 남은 무잎과 배춧잎을 알뜰하게 모아 영양만점의 식재료로 만든 조상들의 지혜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따뜻한 시래기 된장국의 시원하고 담백한 맛은 겨울철 우리 조상들의 부족한 비타민과 무기질 섭취에 도움을 준 식품이다. 따뜻한 시래깃국의 시원하고 담백한 맛은 추운 겨울 날씨에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여주고, 시래기 나물·시래기 된장무침 등은 겨울철 밑반찬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 “무청(蕪菁)은 흉년을 구제하는데 가장 긴요하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무청 시래기’는 조선시대 흉년을 대비한 구황에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겨울철 먹을 것이 없을 때 쌀을 조금 넣고 시래기죽을 쑤어 먹었다. 쌀마저도 없을 때는 보리를 넣어 시래기죽을 쑤었다. 옛날에 기운이 없어 보이는 애들한테 어른들은 “시래죽도 한 그릇 못 얻어 먹는 놈 같다”고 하기도 했다. 시래기는 배고픈 시절 우리 조상들의 밥상을 지켜준 구황식품 중 하나다.

[권현숙의 전통음식이야기] 무청 시래기
<전통음식전문가>

조선시대 철종은 한양에서 태어났으나 집안이 역모에연류되어 왕족의 예우를 박탈당하고 강화도 산골에서 천민으로 살게 되었다. 평민 이원범은 어릴 때부터 산에서 나무를 해다 시장에 내다 팔고 농사를 지으며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살았다. 19세 때 갑자기 왕이 된 철종은 궁의 산해진미도 입에 맞지 않고 세도가들에게 휘둘리는 왕의 자리가 힘겨울수록 가난했지만 자유롭게 살던 산골생활을 그리워하게 된다. 오직 산골에서 먹던 시래기죽과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여 구해오라 하니 한양에는 막걸리는 구할 수 있는데 입에 맞는 시래깃국은 구할 수 없어 강화도 외가댁에서 구해다 먹었다고 한다. 왕은 되었지만 세도정치의 허수아비 왕이 돼 오로지 술과 여자에 빠져 세월을 보내다 15년의 궁중생활을 끝으로 33세에 승하한 비운의 왕이었다. 시래기에는 칼슘과 철분, 식이섬유 등이 농축되어 있어 포도당 흡수율과 칼로리가 낮아 당뇨, 골다공증, 혈관 건강에 도움을 주고 풍부한 섬유질이 변비 및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 하여 젊은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특히 메타카로틴 성분이 있어 항산화 작용을 하여 노화방지와 피부미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강원도 양구에서는 ‘DMZ, 펀치볼 시래기 축제’가 열려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시래기 판매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요즘은 시래기를 냉동포장하여 가정에서 쉽게 요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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