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3>] “北은 미국과 전쟁 원하지 않아…평화협정 체결해서 경제발전 하고 싶어한다”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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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2   |  발행일 2019-03-12 제8면   |  수정 2019-03-20
20190312

▷북한 사람을 마냥 착하고 순진하게만 볼 수 있는 건가.

“이 설명을 하려면 우선 최소한 세 가지를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북측은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른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경제제도로서 우리는 자본주의이고 그들은 사회주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경제는 작동 논리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자본, 즉 돈 중심적 사고가 일반화돼 있고 모든 것이 돈으로 설명된다. 사회주의는 돈으로 설명이 안 된다. 예를 들면 우리는 개인적 노동을 하고, 노동은 돈과 가치교환되는 임금으로 나타난다. 노동이 곧 돈인 것이다. 반면 사회주의에서는 노동을 돈으로 환산하지 않는다. 그래서 임금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 고용·피고용 개념 자체가 없다. 이런 다름이 존재한다. 경제제도로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작동양식이 매우 다르다.”

▷경제제도가 인간을 규정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두 번째 차이점은 뭔가.

“두번째 차이점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다. 우리는 개인주의가 당연한 사회문화이지만 그들은 개인주의와는 많이 다른 고도의 집단주의를 갖고 있다. 우리는 공동체와 개인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 반면 북측의 집단주의는 집단이 추구하는 가치와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동일시한다. 우리는 개인적 이해관계와 집단적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측 사람들은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집단 속에서의 개인이면 집단적 가치와 나의 가치를 동일시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그들한테는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집단주의를 잘 모른다. 이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많이 다르게 만든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 일한다고 한다. 북측 사람들은 공동체를 위해서 일한다고 한다. ”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고, 알면 더 불편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렇다. 우리는 ‘내 일’과 ‘네 일’이 구분돼 있다. 북측은 ‘내 일’과 ‘네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모두 ‘우리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 남의 일에 간섭하거나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옆집 일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옆집 아이의 일탈된 행동을 보더라도 옆집 일이기에 모른 척한다. 반면 북은 공동체성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그 아이에게 충고한다. 한마을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면 된다. 이렇게 사회 작동·운영의 원리가 서로 다르다. 개성공단에서 (남북이)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배우는 과정이 있었다.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서로 다른 경제체제가 서로 다른 삶의 양식과 인식체계를 갖게 한 것 같다. 마지막 차이점이 궁금하다.

“북측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가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사회주의, 고도의 집단주의체제를 압도하는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군사국가라는 점이다. 우리는 국방비를 많이 지출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군사국가는 아니다. 그럼 북측은 왜 군사국가인가. 북측은 상황적으로 66년간 미국과 전쟁을 못 끝내고 있다. 휴전협정, 즉 전쟁을 쉬고 있다. 휴전협정은 전쟁의 일시적 중단상태로 쉬고 있는 것이다. 휴전협정의 서명 주체가 북한, 미국, 중국인데 실질적으로는 북한과 미국이다. 미국과 북한은 제도적으로 엄연히 전쟁을 못 끝내고 있다는 말이다.”

▷말은 맞지만 지난 66년간 그렇게 전쟁 위험이 높았다고만 할 수 없지 않은가.

“우리는 그렇게 인식할 수 있지만 북한 입장에서 미국은 어떤 존재일까. 미국은 전 세계 최고의 군사적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최고 군사대국이다. 북한은 그런 미국과 전쟁을 못 끝내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휴전협정 때문에 미국과의 전쟁을 못 끝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여러 협상장에서 북측 인사들에게 늘 이런 질문을 해왔다. ‘귀측(북측)이 미국과의 전쟁을 못 끝내고 있다고 주장을 하는데 못 끝내고 있는 것인가, 안 끝내고 있는 것인가’. 본질적인 질문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북측은 ‘그것을 진짜 질문이라고 하는가. 우리는 전쟁을 못 끝내고 있다. 종전선언·평화협정 체결을 일관되게 우리가 요구했다’고 말한다. 참 간단치 않은 문제다. 북한은 미국에 전쟁을 원할까, 평화를 원할까. 한번 곰곰이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분단체제는 적잖은 불편한 진실을 갖고 있다. 일정 부분 거짓, 왜곡, 허구가 있다. 여하한 간에 결론적으로 북한은 아직도 휴전체제, 분단체제 속에서 군사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전쟁을 못 끝내고 있기 때문에 비정상 국가인 것이다. 휴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비로소 정상국가가 되는 것이다.”

▷북한이 전쟁을 원하느냐, 평화를 원하느냐 하는 문제는 상당히 본질적이면서도 논쟁적 요인이다.

“사실 70년 분단체제 속에서 이미 굳어져 버린 우리의 보편적인 상식으로는 이 문제가 상식 밖의 이야기일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북에 대한 보편적 이미지로는 수용하기 힘든 이야기일 수 있지만, 북측은 미국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즉 평화를 원한다. 미국과의 전쟁을 원하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북측은 미국과 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경제발전을 하고 싶어한다. 분단체제는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용납하지 않았다. 불편한 진실이다. 미국의 네오콘이나 군수산업가들, 즉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로 보면 북측과 평화협정을 체결할 필요가 없다. 일상적인 적대관계, 휴전체제를 유지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대만, 필리핀 등 주변국가들 전체에 천문학적 규모의 무기를 안정적으로 팔고, 더불어 이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정치·경제·군사적 패권을 유지하면 되니까. 사실 이게 본질이고 팩트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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