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호순 원장의 정신세계] 방어기전과 성격

  • 홍석천
  • |
  • 입력 2019-03-12 07:50  |  수정 2019-05-01 11:16  |  발행일 2019-03-12 제19면
자기합리화 모습을 띤 방어기전
개개인 독특하고 지속적인 특징
성격은 사용 방어기전 따라 결정
20190312

여우가 길을 걷고 있었다. 하늘에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갈 길은 먼데, 목마르고 지친 여우의 눈에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포도 한 송이가 보였다. ‘옳지! 저것을 따 먹자.’ 여우의 본능은 그 포도를 따먹고 싶은 마음이 요동을 쳤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여우는 다리가 짧았던 것이다. 그 포도는 탐스러웠지만 여우의 다리로는 그 높이에 닿을 수 없었다.

갈등하던 순간 여우의 마음속에는 본능이 아닌 이성이 힘쓰기 시작한다. ‘내 다리가 짧다고 여기서 포기하면 이 얼마나 난감한가. 먹고 싶기는 하지만 내 능력은 안 되고…. 그래 이렇게 생각하자. 저 포도는 아직 덜 익어서 시다. 그래서 안 먹는 것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여우는 가던 길을 계속 간다.

그렇게 생각을 해야 갈등이 없다. 여우는 그 포도를 못 먹은 것이 아니라 포도가 덜 익어서 시기 때문에 안 먹은 것이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얘기다.

이 여우처럼 갈등을 쉽게 다른 이유로 돌려 버리는 현상을 ‘합리화’라고 한다. 즉 자신도 모르는 이유로 어떤 행동을 해놓고 그럴듯하게 이치에 맞는 이유로 돌려 대는 현상을 합리화라고 한다. 이런 방법은 잘 사용하면 자신에게 보약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주변 사람에게 큰 어려움을 준다.

만약 보기 싫은 사람의 머리 위에 앉은 파리 한 마리를 잡겠다고 ‘어이 자네 머리 위에 파리가 한 마리 있어서 잡으려고 하는 거야’라고 하며 몽둥이를 든다면 이는 누가 봐도 파리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병적인 자기 합리화 현상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욕구가 생겨나는데 현실은 그 욕구를 다 처리하지 못한다. 욕구는 무의식의 힘이고 현실은 의식의 힘이다. 무의식은 충동적이고 현실은 금지의 힘이다. 이 욕구와 금지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고 마음이 평화가 깨지게 되고 불안이 생긴다.

이 심리적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내는 방법을 바로 ‘자아 방어기전’이라 한다. 이 방법들은 사람마다 독특하고 지속적이며 자기 눈에는 안 보이는 특징이 있다. 어떤 방어기전을 자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독특성이 결정이 되고 이를 우리는 성격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방어기전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안에 성숙하고 건강한 방어기전이 있는가 하면, 병적이고 미성숙한 방어기전도 있다. 예를 들면 의식에서 용납하기 힘든 생각이나 욕망·충동 같은 것들을 그냥 무의식 속으로 눌러 버리는 방법을 ‘억압’이라 하는데 아주 쉬운 방법이면서 병적인 방법이다. 억눌려 있는 충동은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신경성 신체장애·화증·우울증 같은 것이 이런 억압에서 온다.

마음속의 무의식 속에 품고 있던 계획이나 충동을 ‘남의 탓’으로 돌려 버린다면 큰 문제가 된다. 친구들이 자기를 많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라는 생각으로 발전하고 급기야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감시한다’라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한다면 이는 큰일이다. ‘좋아하지 않을 것’같은 느낌과 ‘싫어한다’는 느낌은 매우 다른 것이다.

이런 방어적 현상을 우리는 ‘투사’라고 한다. 매우 병적인 방어기전이다. 투사에 의해 망상이 생기고 환각 현상이 생긴다고 설명하기도 하며 의처증이나 조현병 환자에게서 볼 수 있는 배우자에 대한 의심, 피해망상, 환청같은 걱정스러운 정신병리 현상에는 투사라는 방어기전이 동원된다고 한다.

성격은 개인의 독특한 현상이고 긴 시간에 걸쳐서 형성되며 매우 다양하다. 사용하는 방어기전 때문이다. 그래서 성격은 자기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곽호순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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