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5] 낯선 소설 세 편으로 돌아보는 우리의 모습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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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4   |  발행일 2019-03-14 제22면   |  수정 2019-03-14
北核·정치대립·소득불균형…국내외 난제, 어떻게 생각하세요?
20190314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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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안타깝게도 우리는 헌법 정신의 수호와 공론의 생산적인 활성화가 절실히 요청되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건드리는 극단의 언어와, 비록 소수지만 맹목에 힘입어 목소리를 키우는 자들의 고성에 공론장이 흐려져 있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이자 동시에 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키는 요인은 두 가지다. 국내적으로는 국민의 뜻에 따라 펼쳐진 실질적인 정치 지형의 변화가 제도적으로는 아직 반영되지 않은 상황을 들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북한 핵을 둘러싼 세계 정치 지형의 변화와 그에 대한 우리 인식의 미비를 들 만하다. 국내외의 이 두 가지 상황을 제대로 의식할 때에야 비로소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언동을 제어함은 물론이요,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우리나라가 바른 길을 잡아가는 데 있어서 시민사회의 공론이 생산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길 찾기, 공론장의 생산적 발전 방안 중 하나로 나는 최근에 나온 몇 편의 소설을 권하고자 한다. 거창하고도 시급한 문제에 고작 소설 읽기라니 싶기도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세상의 문제를 푸는 방법이란 크게 두 가지, 곧 제도를 갖추는 것과 구성원의 의식을 바꾸는 것인데, 후자를 가장 자연스럽고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문학인 까닭이다. 제도 개혁을 통한 문제의 해결은 신속하고 효율적이지만 사회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실효가 없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일반적으로 계몽과 교육으로 이루어지는데 효과는 길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국내외적으로 시급한 문제에 맞닥뜨린 오늘 바로 그러한 현실의 문제를 직접 다루는 소설을 만나는 일은 단순한 문학 감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급변하는 정세에 공론장 흐려져
정치적 견해와 입장만을 앞세워
복잡다단한 현실 단순하게 이해

북에서왔시다, 30-50클럽, 고발
세 작품이 성숙한 인식개선 도와



오늘 이야기할 작품은 김현식의 ‘북에서 왔시다’(달아실, 2018)와 홍상화의 ‘30-50 클럽’(한국문화사, 2019), 그리고 반디의 ‘고발’(다산책방, 2017) 세 편이다.

‘북에서 왔시다’는 1960년대 강원도 인제의 군부대 마을을 배경으로 ‘간첩 신고’ 열풍에 따른 웃지 못할 세태를 코믹하게 그려낸다. 낯선 사람이면 무조건 간첩으로 신고하다시피 하는 중국집 배달원 성길 때문에 후에 신군부를 이끌게 될 방첩대장 전 소령이 골머리를 앓는 사건이 소설의 줄기를 이룬다. ‘간첩 공장’을 운위할 만한 매카시즘의 광풍을 포상금을 바라는 소년의 맹목을 통해 풍자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가난한 서민들의 헛된 꿈들이 마음이 아플 정도로 소박하면서도 허황하게 펼쳐진다. 이들이 헛꿈을 꾸고 마는 것은 꿈 자체가 헛되어서라기보다는 아는 사이에서도 사기를 쳐야 할 만큼 사람살이가 팍팍하고 상황이 열악해서이다.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이러한 세태를 잘 묘파함으로써 ‘북에서 왔시다’는 1960년대 이래 한국 사회에 대한 의미 있는 통찰을 보여 준다. 반공주의의 그림자가 여전히 우리에게 드리워져 있다는 점까지 유효적절하게 환기시키면서 말이다.

‘30-50 클럽’은 대단히 특이한 소설이다. 독백으로 된 두 개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빼면 작품 전체가 2인 대화로 이루어져 있고, 그 내용이란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 갈등이나 한국의 발전상과 미래에 대한 진단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소설 하면 떠올리는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꾸며낸 허구도 아니다. 이러한 파격 속에서 이 작품은, 미국의 정책에서 군산복합체와 금권주의가 행하는 위력을 경계하고 중국이 내세운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와 ‘중국 제조 2025’가 갖는 의미를 밝히면서, 이들 두 나라의 갈등 속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며 우리나라가 발전해 가는 데 있어 계속 지켜야 할 덕목들을 제시한다. 평등사상에 입각한 가혹한 입시제도, 공정한 군복무 제도, 치열한 경쟁심, 일하는 윤리 등이 그것이다. 작가에 따를 때 이들은 소설의 제목이 의미하는 ‘인구 5천만명 이상이면서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인 나라’에 대한민국이 속할 수 있게 된 동력이기도 하다.

‘고발’은 북한에서 나온 소설집이다. ‘반디’라는 필명에서부터 작가의 의도가 읽힌다. 캄캄한 밤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반딧불처럼, 폐쇄된 북한 체제에서도 깨어 있는 정신이 있음을 알리고자 한 것일 터이다. 전 세계 20개 국에서 출간된 ‘고발’은, 일당 독재의 인민 동원 체제를 여실하게 보여 주면서 북한 사회의 폐쇄성과 인권 유린 상황을 폭로한다. 사회 전체에 퍼져 있는 뿌리 깊은 연좌제라 할 당원과 비당원 사이의 벗어날 수 없는 차별, 국가 차원의 행사나 세습 독재를 행하는 지배자의 동정 아래 개인들의 인권이 완전히 무시되는 전체주의적인 상황, 혁명의 꿈을 배신한 공산당 독재의 심신 통제와 그 그늘에서 횡행하는 당 간부들의 협잡 등 북한 사회의 문제를 낳는 근본적인 조건들을 ‘고발’은 폭로한다. 작가의 폭로 의지가 앞서서 다소 극단적인 상황 설정이 보이기도 하지만, 인물들의 일상 행동에 대한 곡진한 형상화를 통해 21세기 유일의 전체주의 사회의 실상이 생생히 제시되고 있다.

이들 세 작품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우리 밖의 세계를 주시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직접적인 의의에 더해서, 공론장의 생산적인 활성화에 필요한 자질을 일깨워 주는 효과도 갖는다. 우리의 의식을 넓고 깊게 하는 데 있어 취해야 할 자세를 알려 주는 것이다. 이 소설들이 다루는 문제와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

‘국민소득 3만 달러’가 환율 때문에 생긴 착시이고 계층별 불균형을 생각하면 이 또한 헛된 숫자 놀음이라는 사실을 직시한다 해도, 두 세대가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우리나라가 세계의 최빈국에서 ‘30-50 클럽’에 가입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성취로서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 북한의 인권 문제 또한 남북한의 평화 공존과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중차대하고 시급한 문제 앞에서 그 해결을 방해할 만큼 크게 떠벌릴 일은 아니라 해도, 통일을 지향하는 긴 여정에서는 반드시 숙고하고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반공주의가 남긴 뿌리 깊은 상처를 지양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렇게 위의 세 작품은, 북한의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의 평화 구축이 시대적 소명이 된 현재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제기하고 갖춰야 할 자세를 환기시켜 준다. 진보와 보수 양 끝의 대립이 첨예해지면서 공론장을 흐리는 상황에서 우리가 자랑스러워 해야 할 것과 반성해야 할 것들을 분별하여 둘 모두를 온당하게 사유하는 성숙한 자세를 지향할 필요를 일깨워 주는 것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현재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필요한 비판적 안목을 잃지 않되 우리가 이룩해 온 성과에는 자부심을 갖는 태도를 취해야 하며, 이러한 태도야말로 인간의 삶과 그 누적으로서의 역사 모두 동전의 양면처럼 빛과 그림자를 함께 갖는다는 점을 의식하는 성숙한 정신의 소산이라는 점을 이 소설들의 독서가 마련해 준다.

한편 세 편의 소설이 보이는 형식적인 파격 또한 의미를 갖는다. 근래 한국소설의 동향에 비춰 이들이 보인 낯선 형식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인 현실 정치의 상황이나 ‘빨갱이’와 ‘간첩’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 내부의 의식 분열 등에 우리 모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실질적인 문제의식의 산물이다. 형식상의 파격을 무릅쓴 이들 소설의 조급함이, 정치적인 견해와 입장을 앞세워 복잡다단한 현실을 보지 않고 사태를 단순하게 이해하려는 우리들의 조급함을 경계하고 있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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