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항거: 유관순 이야기’와 ‘1919 유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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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5   |  발행일 2019-03-15 제43면   |  수정 2019-03-15
두 개의 유관순 이야기, 그리고 알게 된 여성독립운동가들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니만큼 관련된 다양한 사업이 열리고 있다. 그 가운데 3·1절을 전후해 유관순 열사를 다룬 영화가 잇따라 개봉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에 재학 중인 1919년 3월5일 서울 남대문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고, 이어 4월1일 충남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장터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에 체포됐다. 일제의 모진 고문에 시달리다 192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했다. 우리가 아는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는 이 정도일 텐데 거기에 다른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몰랐던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 관객들이 찾는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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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거:유관순 이야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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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거:유관순 이야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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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감독

지난달 27일 개봉한 조민호 감독의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1919년 3월1일 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운동 이후 고향 충남 병천에서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 열사가 공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된 후 1년여의 이야기를 담았다. 유관순의 수인번호는 371번. 유관순 열사가 배정받은 여옥사 8호실은 9.9㎡(3평) 남짓했으나 그 안에 30여명의 수인들이 함께 생활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누울 자리가 모자라 서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퉁퉁 부운 다리를 이끌고 수인들이 원을 그리며 천천히 걸어다니는 모습은 처음 스크린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유관순 열사가 이곳에서 만난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만세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역사의 인물들이었다는 것도 마찬가지. 수원 지역 기생들의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김향화, 개성 지역의 시위를 이끌었던 권애라(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그리고 허구의 인물이지만 평안도 사투리를 구사하면서 분단 이전의 민족 정체성을 상기시키는 이옥이. 전기물의 통상적인 제작방식을 선택하지 않은 건 적은 제작비 같은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보다 유관순의 신념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려 한 제작진의 의도로 읽힌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
3평 남짓한 감옥에 30명의 수인들 생활
누울 자리도 모자라 서서 잠 청하는 모습
수원 기생 만세주도 김향화 등 여성열사
열일곱 유관순의 신념 보여주는 데 집중



조민호 감독은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한국영화아카데미 8기생이다. ‘비상구가 없다’(김영빈 감독)와 ‘개 같은 날의 오후’(이민용 감독)의 조연출을 거쳐 2002년 배우 장혁과 이범수를 주연으로 세운 ‘정글 쥬스’로 장편영화 데뷔를 했다. 데뷔작인 만큼 젊은 시절 자신이 겪었던 삶을 정치하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는 이후 2006년엔 배우 박중훈·천정명과 ‘강적’을, 2009년엔 배우 박해일·박희순·신민아와 ‘10억’을 내놓고 10년 만에 ‘항거: 유관순 이야기’로 복귀했다. 역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던 조 감독은 7년여 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걸려있던 유관순 열사의 사진 속 눈빛을 보게 되면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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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유관순’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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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유관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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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학렬 총감독

14일에 개봉한 ‘1919 유관순’은 유관순 열사와 함께 독립을 외쳤던 소녀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 낸 영화로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극영화 형식만을 취한 것에 반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형식을 함께 취했다. 영화는 당시 일본에 맞서 싸운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에게 당한 고문과 고초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그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데 공을 들인다. 100년 전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을 재연 방식으로 살펴보다가 필요할 때 당시 역사적 사실이나 기록, 수많은 인사들의 인터뷰를 함께 보여준다. ‘그녀들의 조국’이라는 부제처럼 유관순 열사뿐 아니라 열정과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음을 관객들에게 새롭게 각인시킨다.


‘1919 유관순’
독립 외친 여성들…극영화와 다큐 형식
日에 당한 고문·고초 사실적으로 묘사
역사적 기록·수많은 인터뷰 중간 삽입
특별한 인물 아닌 우리주변 이웃의 모습



총감독을 맡은 윤학렬 총감독은 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라의 독립을 위해 최선을 다한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기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준비해 작품으로 만들었다”며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서훈을 받고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는 남성 독립운동가 못지않았다. 영화는 이분들을 알리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하희라가 마지막에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 “17세 소녀의 마지막 기도. 그녀들이 지키려 했던 조국, 그 하늘과 그 땅. 여러분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입니까”는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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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지난 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이는 지난달 26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유관순 열사에게 국가 유공자 1등급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유관순 열사에 대해 “3·1 독립운동의 상징”이라며 “우리는 16세의 나이로 당시 시위를 주도하고 꺾이지 않는 의지로 나라의 독립에 자신을 바친 유관순 열사를 보며 나라를 위한 희생의 고귀함을 깨우치게 됐다”고 말했다. 유관순 열사에게는 1962년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독립장’이 추서된 바 있으나 훈격이 3등급에 불과해 유관순의 공적과 상징성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그간 많았다. 지난해 5월 유관순 열사의 서훈 등급 상향을 요청하는 국민청원이 청와대에 올랐고, 국회에서는 상훈법 개정안 및 유관순 열사 특별법 제정 결의안이 제출됐다.

하지만 ‘항거: 유관순 이야기’와 ‘1919 유관순’을 본 관객들은 유관순 열사만을 보고 돌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항거’에서 유관순이 옥사 안에 갇힌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듣다 보면 그들이 대단히 특별한 인물들이어서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뭔가 대단한 이유보다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일본 사람들이 괴롭혀서, 단순히 일본이 싫어서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가 더 크게 다가온다. 그 덕에 유관순 열사를 보러 갔다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함께 알게 된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건 시인 윤동주를 보러 영화 ‘동주’를 보러 갔다 윤동주의 친구이자 독립운동가 송몽규를 더 깊이 각인하고 돌아왔던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그 경험들은 새로운 100년을 상상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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