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출신 허형식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 재신청

  • 백종현,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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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05  |  수정 2019-04-05 11:44  |  발행일 2019-04-05 제21면
민족문제硏 구미지회 서류 제출
저항시인 이육사의 詩 ‘광야’ 중
‘백마 타고 오는 초인’ 실존 인물
2006년 사회주의 계열 이유 반려
“시대 변해 이번엔 희망갖고 있어”
구미출신 허형식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 재신청
지난 2일 장기태 ‘허형식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추진위원장’(오른쪽)이 대구지방보훈청에 허 장군과 관련한 서훈 서류를 제출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회장 전병택) ‘허형식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추진위원회’(위원장 장기태)는 지난 2일 국가보훈처 대구지방보훈청에 허 장군(1909~1942)과 관련한 서훈 서류를 제출했다. 서류는 장세윤 성균관대 연구교수의 논문을 비롯해 중국 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 및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박도 지음) 등 총115장으로 돼 있다.

“지난해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를 창립한 후 허형식 장군 서훈추진위원장을 자청해 맡았습니다. 지금까지 서훈을 신청할 직계 후손이 없는 데다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평가가 미진했다고 봐요. 2006년 도서출판 ‘고구려’에서 서훈을 추진한 적이 있으나 사회주의 계열이란 이유 등으로 독립유공자가 되지 못했지요. 하지만 시대가 변해 사회주의계열에서도 독립유공자가 많이 나와 희망을 갖고 이번에 다시 서훈신청을 했습니다.”

장기태 위원장은 두달 여간 각종 사료를 수집하고 언론자료 등을 모았다. 허 장군의 친조카인 허창수씨를 비롯해 박도 소설가, 장세윤 교수 등도 만나 도움을 청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좌익이나 공산당에 있었더라도 북한정부 수립에 직접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으면 서훈이 가능하다고 봐요. 허 장군은 1942년에 전사했기 때문에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한편 허형식은 저항시인 이육사 시 ‘광야’에 나오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의 실존인물로 알려져 있다.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난 그는 13세 때 부친 허필을 따라 만주로 이주해 평생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한·중 통합 군사조직인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으로 북만주 일대에서 조상지, 김일성, 김책 등과 함께 항일 무장투쟁을 이끈 ‘만주 최후의 항일 파르티잔’으로 평가받고 있다.

구한말 의병 총대장 왕산 허위 선생의 5촌조카인 그는 항일유격대를 이끌며 중국 하얼빈 등 27개 도시를 점령하고 일제 군인과 경찰 1천557명을 사살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1941년 일본이 동북항일연군과 대대적으로 전투를 벌이면서 항일연군지도자들은 대부분 러시아로 피신했다. 그도 러시아로 가자는 권유를 받았으나 거부하고 마지막까지 만주에 남아 전투를 벌이다 경안현 청봉령 계곡에서 전사했다.

그는 2014년 중국이 국가급 항일전쟁 유적지와 함께 발표한 ‘항일영웅 열사 300명’ 명단에도 이름이 올려져 있다. 랴오닝성 선양 9·18기념관과 헤이룽장성 하얼빈 동북역사박물관에도 그의 행적이 자세히 전시돼 있다.

구미=백종현기자 baekjh@yeongnam.com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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