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두산동 ‘우대감 이천면옥’ 우화식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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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05   |  발행일 2019-04-05 제41면   |  수정 2019-04-05
세 차례 걸쳐 뼈 우려내 담백한 맛 살린 50인분 한정 ‘갈비탕’, 힐링 ‘쌀 냉면’
오너 셰프를 찾아서
포장마차·가구점·찜질방·기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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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온갖 호사스러운 폼을 잡다가 무너져 내리고 자립을 위해 포장마차부터 가구점, 나중에는 찜질방, 공연기획사까지 차렸던 ‘우대감 이천면옥’ 우화식 사장. 그의 곁에는 든든한 우군인 힙합 뮤지션 장남 희진이가 있다. 매일 50인분만 고아내는 가마솥 앞에서 ‘우대감 파이팅’을 외치는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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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대감 이천면옥만의 명물 갈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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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동찜갈비에 도전장을 낸 갈비찜.

대구 수성구 두산동 심야먹거리타운 중간에 있는 ‘우대감 이천면옥’ 우화식 사장(57). 그는 요즘 갈비와 신개념 쌀냉면에 미쳐있다. 공부가 아니면 장사든 자영업을 해야 먹고산다. 그는 별별 직종을 다 돌아봤다. 그래서 예순을 앞두고 자기 얼굴에 부끄럽지 않은 먹거리에 안착하고 싶어한다.

그의 삶은 연이은 대박과 파산의 롤러코스터를 오르내렸다. 큰돈도 벌어봤고 큰돈도 날려봤다.

요즘 그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식당에서 홀서빙하는 큰아들의 노란색 머리카락을 보는 일이다. 장남 희진이는 27세. 국제예술대 가수작곡과를 졸업하고 이젠 힙합 아티스트로 삶의 반전을 꾀하고 있다. 곧 싱글앨범 ‘Me & you& I’를 출시할 모양이다. 기특해 얼마전에는 통기타도 사줬다. 희진이는 뮤직에만 올인하지 못한다. 밤이 되면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드는 아버지의 만성 피곤증을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어한다.

우 사장은 갈비탕과 갈비찜, 그리고 국내에선 선행사례가 없는 쌀냉면 홍보에 여념이 없다. 아내는 주방을 지키고 있다. 장남은 손님이 들어오면 주문을 받고 짬나면 아버지 옆에서 잔일을 도와야 한다. 하지만 아직 조리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디테일한 요리까지는 도와줄 수 없다. 주문한 음식을 제대로 세팅하고 필요할 때 바닥에 떨어진 수저를 새 것으로 바꿔놓기만 해도 부부는 더없이 고맙다.

그는 수성구 두산동 모텔이 밀집해 있는 심야먹거리타운 수석부회장이다. 이 먹거리타운이 먹고살 수 있도록 제대로 마케팅을 하는 한편 드라마 이상으로 파란만장하기만 했던 자신의 외식인생에 새로운 분기점을 만드는 데 올인 중이다. 

포장마차·가구점·찜질방·기획사…
연이는 대박과 파산 사이 오르내림

돌고돌아 만난 ‘가마솥갈비탕’
고기 장맛 살리기 위한 특제간장 소스
고기맛 이상 뼈맛 중요, 갈비 시즈닝
심플하면서도 깔끔한 육수 비결 터득
메밀 15% 쌀가루 85% 건강 냉면 개발
진주냉면 처럼 육전 올린 ‘물비빔냉면’

“두아들 위해 베스트셀러인문학 정독
괜찮은 구절 적어 어록 25권 선물 안겨”



◆아버지는 부자 서예가

아버지는 사과로 유명한 동구 평광동에선 부자로 이름난 유지급 서예가였다. 그가 장남이 노랗게 머리카락을 염색해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젊은시절 그의 일상은 누구보다 튀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잣집 6남매의 외동아들로 귀엽게만 컸다. 아버지는 한때 동구청장 선거에도 출마할 정도로 유지였다. 영남문화대전에 주기도문을 출품해 대통령상까지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19세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이후 어머니의 빈자리로 인해 그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수순의 맘고생을 한다. 그게 사춘기의 반발심과 묶여져 증폭적으로 연쇄폭발됐다.

자연 집과는 멀어져가기만 했다. 제대한 후 자립을 위해 동구 새마을오거리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열었다. 포차도 직접 제작했고 재료도 일일이 칠성시장에 가서 사갖고 왔다. 오후 4시부터 영업을 준비하고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서서 손님도 받고 요리도 하고 만취된 손님의 귀가까지 도와주어야만 했다. 닭발, 참새구이, 고등어구이, 돼지두루치기를 열심히 만들었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았지만 한 번도 자식의 포차에 나타나지 않았다. 장사는 예상보다 더 잘됐다. 저금보다 탕진에 더 치중했다. 고급 오토바이를 타며 폼도 내봤다. 하지만 2년 고생하고나니 몸은 천근만근. 다시 작전상 후퇴, 집으로 갔다. 한 해 2천상자가 넘는 사과 과수원 농사를 도와주기로 했다.

27세에 자신만의 가게를 오픈한다. 대구공고 네거리 대광회관 옆에 레스토랑을 오픈한다. 2년 정도 해보니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렇게 3년 나름 크게 돈을 벌었다. 첫 아이가 태어났다. 이제 직업에 변화를 주기 위해 술집에서 가구점으로 몸을 틀었다.

포항시 북구 죽도동으로 건너가서 꽤 유명한 브랜드의 가구점을 오픈하고 침대를 팔았다. 매장은 날로 커져갔다. 한때 포항에서 가장 큰 가구점이 된다. 6년 정도 상승커버를 그렸다. 많이 벌 때는 하루 5천만원도 벌어봤다. 수십억원을 벌게 됐다. 그는 점점 간이 커졌고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다녔다. 대규모 빌라 건설붐에 뛰어들었다. 주문제작 가구를 대량납품할 수 있었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가 덮쳤다. 그는 무려 35억원에 달하는 부도를 맞는다. 생애 첫 위기였다. 그는 반년 이상 매일 술에 찌들어 살았다. 골프도 끊고 사람 만나는 것도 다 거절했다. 아이는 세 살 남짓. 다시 빈손으로 대구로 왔다.

중앙파출소 옆에서 ‘만남의광장’이란 레스토랑을 다시 열었다. 스파게티, 돈가스, 스테이크 등을 팔던 곳이다. 직원은 2명, 월급 주방장을 앞세웠다. 6개월 만에 그 주방장의 솜씨를 벤치마킹했다. 직접 요리를 하기 시작한다. 손님이 원하면 해물탕도 끓여주었다. 낮에는 아이를 돌봐야 하고 밤에는 장사를 했다. 하지만 영업은 부진해 다시 접고 앞산순환도로변에서 노래방을 열었다. 신개념 주점비즈니스를 시도, 나름 적중해 다시 영업을 정상궤도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두 번째 부도를 맞는다. 세상이 무상했다. 그래서 자꾸 불교에 귀의하고 싶은 맘이 들었다. 툭하면 절에 갔다. 덕분에 파계사 근처 사리사 신도회장이 되기도 했다.

◆한때 유퉁국밥 유통

인연은 참 묘했다. 그가 팔공산 파계사 언저리와 친해질 무렵 한 명의 기인급 연예인과 손을 잡게 된다. 바로 연예인 중에서 외식사업 마인드가 남다른 유퉁이었다. 유퉁은 자신이 개발한 국밥을 사업적으로 이용해 전국 체인화사업을 추진 중이었다. 하지만 그가 유퉁을 만났을 때 유퉁국밥은 바닥권이었다. 하루에 몇 만원도 못 팔기도 했다. 그가 나서서 국밥 띄우기를 시도한다. 성서, 수성못, 앞산고산골,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 구미 등 전국에 33개 가맹점을 갖게 된다. 하지만 11년전 유퉁은 국밥보다 다른 사업에 더 관심을 둔다. 결국 유퉁국밥은 공중분해된다. 유퉁도 고배를 마시면서 팔공산을 떠난다.

국밥사업에서 멀어진 그의 맘은 냉골이었다. 정말 그에게 맞는 일이 뭔지 궁금했다. 그런 와중에 만난 게 인도네시아 에너지사업 프로젝트였다. 미생물배양기술을 토대로 한 연로첨가제 유통사업이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투자사업을 이끌어냈고 사업을 위해 자카르타 현지로 날아갔다. 하지만 현지에선 기름을 조직적으로 도둑질해가는 조직들이 그가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는 걸 방해하기 시작한다. 한 두목이 그에게 한국으로 출국 안 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모든 비즈니스가 올스톱되는 상황에 처해진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하식, 도대체 넌 앞으로 뭘 할 거냐?’ 아무래도 사업은 아닌 것 같았다. 식당이 그의 천직인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가든호텔 1층에 저렴한 ‘포천 삼구갈비’를 오픈한다. 칠갑산으로 유명한 가수 주병선을 모델로 앞세워 북구 산격동 축협 1층에 ‘칠갑산 돼지명가’를 오픈한다. 주병선도 그 식당에 무척 애착을 가졌다. 사흘이 멀다 하고 대구로 내려와 그를 도와주었다.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갈빗집에서 생라이브를 돌렸다. 정두천, 김용철 등 대구의 실력파 통기타가수도 불러왔다. 하지만 흑자도산을 맞고 만다. 세 번째 부도 위기에 봉착한다.

그렇게 해서 다시 죽기살기로 크리스탈호텔에 오락실을 만들고 효소찜질방을 가동했다. 고전만 했다. 주병선과 유퉁과의 인연 탓에 그도 공연기획사를 만들고 싶었다. 황금호텔 근처에 엔터테인먼트사를 차린다. 그 옆에는 북성로우동과 콩국 등을 파는 심야 스낵바 같은 걸 열었다. 주병선·김근모·박상민의 공연은 박살나고 말았다. ‘더 원’ 하나만 겨우 건졌다.

어느 날 그는 신용불량자 신세였다. 빚잔치까지 했다. 그리고 동구 불로동의 모 식당에서 기술을 전수해 우대감 뒷고기를 특허신청한 뒤 바로 현재 자리에서 오픈했다. 고급 숯불갈비는 물론 곱창전골까지 냈다. 하지만 고기가 너무 질겨 손님을 유지하지 못했다. 다시 ‘우대감집’이란 모듬한우집을 열었다. 본점에 이어 봉덕점, 아내가 커버한 범물점 등 세 곳을 굴렸다. 본점은 침체였고 아내가 하던 집만 그런대로 선방했다. 천신만고 끝에 만난 게 바로 지금의 하루 50그릇만 파는 가마솥갈비탕, 그리고 쌀냉면이다.

◆갈비탕과 쌀냉면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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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 15%, 쌀 85%를 가미해 만든 ‘쌀냉면’. 육전을 고명으로 올리는 물냉면, 그리고 코다리를 고명으로 올리는 물비빔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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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우대감이 대성할 자식을 위해 무려 400여권의 인문학 명저를 정독해 추려낸 명문을 직접 볼펜으로 적어 25권의 비망록을 만들어 자식에게 나눠줬다.


갈비탕. 인터넷을 뒤지니 별별 레시피가 쏟아져나왔다. 궁리 끝에 자기만의 갈비 장만법을 알게 된다. 일단 핏물을 제거한 뒤 10분간 그 갈비를 뜨거운 물로 튀겨 낸다. 마구리뼈와 일반 갈비뼈를 함께 1시간 이상 우려내고 뼈는 건져낸다. 특제 간장소스로 다른 솥에서 고기에 장맛이 스며들게 갈무리를 한다. 여기에 소금 간을 하고 대파, 무, 다시마 등을 넣고 40분간 국물을 우려낸다. 모두 3번에 걸쳐 분산해서 뼈를 우려내는 게 이 집만의 특징. 이 과정에 20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너무 구수해도 안 되고 너무 심플해도 안 된다. 심플하면서 구수하고 구수하면서도 깜끔한 육수를 그려내고 싶었다. 육수가 추려지면 찬물에 통을 담가 표면에 하얀 굳은 기름이 형성되도록 한 뒤 그걸 얼음장처럼 걷어낸다. 그는 좋은 갈비탕은 고기의 맛 이상으로 뼈맛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닭을 염지하듯 갈비도 특제 간장 소스로 시즈닝을 했다.

밀가루와 전분에 알르레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당뇨 염려증 손님도 많다. 그래서 힐링 냉면을 개발했다. 메밀 15%에 쌀가루 85%를 가미한 쌀냉면이다.

우대감은 비빔냉면과 물냉면 사이에 또 다른 별미 냉면을 설정했다. ‘물비빔냉면’이다. 진주냉면처럼 육전도 올린다. 양념도 갈비탕과 냉면용 두 가지를 따로 낸다. 냉면 소스에는 다시마 육수가 들어가는데 그 간이 세면 맛을 망치기 때문에 일주일 한 번 빼고 2일 숙성시킨다. 갈비탕은 하루 딱 50그릇만 판다.

그는 요즘도 하루 14시간 일한다. 그러면서도 두 아들을 위해 무려 400여권의 각종 인문학 베스트셀러북을 정독한 뒤 괜찮은 구절을 선별해 볼펜으로 직접 적어 아버지가 자식에게 주는 맘의 어록을 25권으로 만들어 선물로 안겼다. 노랑머리도 그 고마움을 아는지 툭하면 아버지의 허리를 감싸주면서 애교를 떤다. 수성구 무학로 23길 85. (053)213-3646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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