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러브 앤 아트’( 프레드 쉐피쉬 감독·2013·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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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2   |  발행일 2019-04-12 제42면   |  수정 2019-04-12
사랑과 예술…문학과 미술의 대결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러브 앤 아트’( 프레드 쉐피쉬 감독·2013·미국)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러브 앤 아트’( 프레드 쉐피쉬 감독·2013·미국)

영화를 일컬어 ‘제7의 예술’이라 부른다. 1911년 이탈리아의 평론가 리치오토 카뉘도가 오락물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던 활동사진을 ‘움직이는 조형예술’로 선언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가 영화에 앞서 언급한 여섯 예술에는 시와 그림이 들어가 있다. 시는 ‘단어로 나타내는 그림(이미지)’이고, 그림은 ‘선과 색으로 표현하는 시’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시와 그림은 각각 다른 장르지만, 어딘가 통하는 데가 있는 것 같다.

영화 ‘러브 앤 아트’의 원제는 ‘Words and Pictures’, 즉 말(문학)과 그림(미술)이다. 시를 쓰는 남자와 그림을 그리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멜로드라마의 색을 띠고 있지만 문학과 미술, 즉 예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에 독특하고 매력적인 영화다. 고등학교 문학 교사인 잭 마커스는 시인이다. 부인과 이혼한 데다 더 이상 글은 써지지 않고, 음주 문제로 말썽을 일으켜 학교에서 파면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같은 학교에 막 부임해온 디나 델산토는 유명한 화가다. 하지만 병으로 인해 고향인 시골로 내려온 처지다. 둘 다 심한 좌절에 빠져 있는 셈인데,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는다. 둘은 사사건건 부딪힌다. 각자의 분야인 문학과 미술 중 서로가 우월하다며 싸우게 된다. 물론 로맨스 영화답게 싸우다가 정이 들고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과정이 남다르다. 매일같이 설전을 벌이던 두 사람은 전쟁을 선포한다. 어느 쪽이 더 우수한지 학생들의 투표로 결정하기로 한다. 이들의 현란하고 지적인 말싸움이 흥미진진하다. 문학과 미술의 대표로 나온 학생들의 대결이 재미있고, 각각의 우수성을 말하며, 예술의 본질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 영화의 백미다.

배우들의 매력은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클로저’의 클라이브 오웬이 문학 교사 잭 마커스를 연기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미술 교사 디나 델산토를 연기한다. 클라이브 오웬은 알코올로 인해 점점 나락에 빠져 들어가는, 그러나 문학의 열정만큼은 놓치지 않는 시인의 연기를 멋지게 해낸다. 세계 3대 영화제(베니스, 베를린, 칸) 모두에서 연기상을 받은 줄리엣 비노쉬의 연기도 아름답다. 실제 화가인 그녀의 그림 그리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한 그녀를 만나볼 수 있다.

2013년에 제작된 영화가 우리나라에는 2017년에 개봉되었는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조용히 막을 내려 버린 것이 안타깝다. 매력적이고 특별한 로맨스 영화로 문학과 미술의 갑론을박이 흥미진진한 영화임에도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하긴 이렇게 고급스럽게 예술을 논하는 영화가 관객의 호응을 받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제7의 예술’이라 불리는 영화는 어디까지나 ‘대중예술’로서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예술영화와 대중영화의 사이에 어정쩡하게 낀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늘 이런 영화를 찾게 된다. 예술과 대중의 중간에 놓인 영화. 너무 심오하게 예술적인 것도 부담스럽고, 지나치게 상업적인 대중영화도 시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렇게 재미와 교양을 갖춘 영화를 좋아하고, 추천하게 되는 것이다.

앤디 워홀은 “예술이란 일상을 벗어나는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일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모든 것이 예술’이라고 바꾸어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바로 내 곁에 늘 존재하는 것이다. 새롭게 보는 눈만 있다면 말이다. “예술은 힘이 아니라 위로”라고 한 토마스 만의 말이 맞다면, 우리를 위로하는 모든 것들을 또 다른 형태의 예술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영화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문학과 미술을 두고 학생들이 대결하는 장면이다. 학생들은 각각의 우수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 드러내 보이는 델산토의 초대형 그림, 그 그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은 결국 말이었다. 대결의 승자가 누구인지는 영화를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 “예술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고, 세계를 확장시키는 것”이라는 대사가 새삼스레 예술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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