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와 함께 여생, 음식과 앙상블…캠핑맨 솜씨 뽐낸 더치오븐닭·피자라인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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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9   |  발행일 2019-04-19 제35면   |  수정 2019-04-19
[이춘호기자의 대구 LP 로드] 가창 ‘올드로드’ 천성준
LP와 함께 여생, 음식과 앙상블…캠핑맨 솜씨 뽐낸 더치오븐닭·피자라인
직장인에서 캠핑맨, 그리고 철인3종선수를 거쳐 셰프맨으로 돌아온 천성준 사장. 그의 유전자 깊숙한 곳에는 주체할 수 없는 뮤직본능이 있다. 45세 때 명퇴를 당한 그는 그 난감한 시절을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음악 들으면서 음식파는 LP레스토랑 ‘올드로드’로 극복했다.

대구에서 가창을 거쳐 팔조령 너머 청도로 가는 길. 이젠 다들 넓직한 새 길로 다닌다. 예전에는 왕복 2차로 좁다란 시골길이었다. 새 길이 나면서 구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아직 그 흔적을 유지하고 있는 데가 있다. 바로 허브힐즈에서 포레스트 스파밸리로 이어지는 1㎞ 구간. 수성못 뒤편 법이산에서 팔조령까지 이어지는 연봉과 신천의 상류, 오붓하고 구불진 도로가 절묘한 입체감을 쏟아낸다. 다들 빠른 새길을 선호하지만 느린 게 좋은 이들은 호젓하게 여길 찜해 걷기도 한다. 어둑한 도로지만 잘 보면 이곳만의 진면목이 보인다. 그래서 그 길을 ‘올드로드(OLD ROAD)’로 정하고 그 도로명을 자기 가게 상호로 정한 쉰을 눈앞에 둔 LP사내가 바로 이 거리에 추억의 건맨 ‘장고’처럼 나타났다. LP레스토랑 올드로드의 사장 천성준이다. 김천에서 태어난 그는 여생을 LP와 함께 살기 위해 여기로 거처를 옮겼다.

한때 이 거리는 앞산순환도로 백숙거리와 함께 대구 닭백숙의 마지막 명소로 불렸다. 가게는 새길이 나면서 성주식당 하나만 남고 다 사라지고 만다. 그 명맥을 잇는 데가 대림생수 근처 옻닭 전문 ‘토담집’, 그리고 궁중백숙으로 가장 성공을 거둔 가창면 삼산리 ‘큰나무집’ 정도다. 최근에는 스파밸리 바로 맞은편에 올망졸망한 커피숍과 식당가, 민속품경매장까지 뒤섞인 냉천먹거리타운이 조성돼 백숙촌의 옛 전성기를 엿보고 있다.

LP와 함께 여생, 음식과 앙상블…캠핑맨 솜씨 뽐낸 더치오븐닭·피자라인
송하 피자와 윈윈전략의 손을 잡은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LP레스토랑 ‘올드로드’의 시그니처 메뉴인 피자와 더치오븐닭. 천성준 사장이 한때 캠핑맨으로 숙지했던 아웃도어푸드를 메뉴구성에 활용한 게 특징. 맥주는 문경의 대표적 수제맥주인 가나다라브로이에서 공급하는 7종을 사용한다.


구미고교시절 스쿨밴드 베이시스트
직장인·캠핑맨·철인3종 선수 도전
마지막 버킷리스트 음악이 있는 가게
유럽 출장중 경험한 뮤직카페에 감명
직접 제작한 야외데크·테이블·의자
중학교 때부터 모은 LP·CD 5,500장
가게와 맞는 곡 선별·계절별 음악회

가창 유명 피자집‘송하’와도 손잡아
‘벨라조이피자’‘하와이안피자’ 인기
모둠샐러드·문경 대표 수제맥주 7종

LP와 함께 여생, 음식과 앙상블…캠핑맨 솜씨 뽐낸 더치오븐닭·피자라인
시금치를 베이스로 한 ‘벨라조이피자’와 베이컨을 토핑한 ‘하와이안피자’가 이 집 피자 중 인기가 가장 높다. 50㎝ 길이의 원목 트레이에 담겨진 피자는 정통 화덕피자와 달리 햄버거와 샌드위치, 그리고 유럽의 시골빵 탄력이 그대로 전달돼 인기 상승중이다.


◆한때 캠핑맨이었다

그는 구미전자공고를 다녔고 1학년부터 ‘TNT’라는 5인조 스쿨밴드 베이시스트로 폼잡고 다녔다. 로버트 팔머의 ‘배드 케이스 오브 러빙 유’, 그리고 샌드패블스의 ‘나 어떡해’ 등을 연주하며 구미 전역을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거기까지만 놀았다. 졸업한 뒤 막바로 서울의 한 중소기업 무선통신기기 업체에 취직한다. 1991년까지 거기에서 근무했는데 회사가 바로 KBS 별관 옆에 있었다. 툭하면 인기 가수 등이 보였다. 스쿨밴드 시절과 오버랩됐다. 어느 날엔 덜컥 성우시험까지 봤다.

95년 제대 후 017의 신화를 창출한 신세기통신 멤버가 된다. 벽돌 휴대폰과 삐삐가 공존하던 시절인데 그의 근무처는 대구 MBC 근처 SK 고객센터. 몸이 근질거려 ‘017과 좋은사람들’이란 사내 록밴드를 결성한다. 1년에 두번 정기공연을 했다.

그의 직장생활의 주중과 주말은 완전히 달랐다. 2005년부터 ‘캠핑맨’으로 돌변한다. 그걸 위해 아마추어 무선사 자격증도 딴다. 주말이면 그는 회사원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원시맨이 되었다. 거금을 주고 4,700㏄ 미국산 도지(Dodge)를 샀다. 괴물 같은 그 차는 일반인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걸 람보처럼 몰면서 팔공산 가산산성, 영천 임고강변, 전남 장수 방화동, 지리산달궁, 영동 송호리, 설악산 C지구 등 캠핑하기 괜찮은 곳을 찾아 주유천하했다. 직장에서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이 캠핑용으로 소진됐다.

캠핑용품을 하나씩 섭렵해 나간다. 확 펼치면 농막 정도의 기능을 할 수 있는 멀티텐트도 구입했다. 캠핑푸드의 상징이 된 바비큐에도 도전. 평소 삼겹살이나 굽던 그에게 바비큐는 하나의 벽이었다. 낮은 온도에서 고기를 서서히 익히며 스모키한 향이 배도록 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단시간에 고기를 익히는 그릴링(Grilling)과는 차원이 달랐다. 불만 알아선 안 되었다. 바비큐용 연료공학은 물론 관련 목재의 특징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다. 허브와 향신료의 종류, 돼지고기·닭·소시지·어패류·채소와 과일의 재료 특성에 따라 바비큐 레벨을 정하는 것 등. 모든 게 초보자인 그에겐 큰 난관이었다. 그래서 대전의 모 바비큐 고수를 찾아 신의 한 수를 구했다. 틈만 나면 그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는 그 과정에 ‘맛있는 고기를 더 맛있게 만드는 게 바비큐의 요체가 아니라 후지와 같이 저급한 식재료를 더욱 맛있게 반죽해내는 게 바비큐의 매력’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해서 그는 한국 캠핑 동호회 1호로 불리는 캠핑하는사람들 원년 멤버가 된다. 이 동호회는 캠핑문화가 전혀 형성되지 않았던 2000년대초에 한국 캠핑문화의 신지평을 열어갔다. 회원들의 편익을 위해 자체 텐트를 제작했고 한국형 바비큐 그릴도 수제로 만들었다.

◆다시 철인3종경기에 도전

아이들도 공부 때문에 캠핑을 즐길 수가 없었다. 동시에 그의 캠핑 열기도 조금씩 식어갔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게 익스트림스포츠. 수영 3.8㎞, 사이클 180.2㎞, 그리고 마지막에 마라톤 42.195㎞를 동시에 소화해야만 하는 철인3종경기다. 입문 후 3년 만에 14시간35분을 주파했다. 2013년 100㎞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했지만 아쉽게 실패를 했다. 그 와중에 대한적십자 인명구조원 자격증도 취득하게 된다. 모든 일은 다 연결돼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도 뭔가 하나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만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 가족여행, 극한의 스포츠, 음악이 있는 공간에서 일을 하는 것, 미국 대륙을 자전거로 횡단. 가족여행과 극한스포츠는 이미 소원을 풀었다. 다음은 음악이 있는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대기업 시절 이탈리아 등 유럽에 3번 정도 출장을 다녀왔다. 맥주와 와인, 그리고 느긋한 식사, 인문학적이면서도 여유로운 대화, 그걸 잘 감싸주는 음악카페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관광지의 시각적 이미지보다 식당에서 피어오르는 음악과 음식의 청각과 후각이 뒤섞이는 앙상블을 지금껏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신선한 충격이 결국 그를 올드로드로 끌고 온 건지도 모른다.

직장생활도 어느덧 20년을 넘겼다. 온갖 경험을 했지만 역시 나만의 일과 직장에서의 일은 달랐다. 둘이 갈등하고 있었다. 그 틈은 점점 넓어져가고 있었다. 45세 때 명퇴를 강요당했다. 회사에선 한 달간 명퇴 고지문을 붙였다. 마지막날 사표를 썼다. 그날 스스로를 ‘비닐하우스에서 야생으로 나온 애숭이’로 해석하고 싶었다. 회사를 나오자 전에 안 보이던 불안이 덤벼들기 시작됐다. 잊기 위해 신천 조깅로를 정신없이 걸었다. 무용지물이었다. 아는 형님을 찾아가서 2개월간 목공기술을 배웠다. 기본 의자와 테이블 정도를 만들 수 있었다.

일을 저지를 때가 도래했다. 대구 외곽지를 둘러보며 ‘여기다’ 싶은 적지를 찾아다녔다. 2015년 어느 날 죽어있지만 자신이 들어가면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가창면 용계리 백숙집인 ‘높은집’을 찜했다. 여기는 냉천리와 용계리의 경계다.

공사비를 아껴야만 했다. 6개월간 야외데크, 테이블, 의자 등을 직접 만들었다. 중학교 때부터 사모았던 LP 5천장, 그리고 500장의 CD를 새로짠 진열장에 하나씩 꽂아넣었다. 자작 진공관앰프, 그리고 JBL 스피커를 세웠다. 음식학원에 굳이 다닐 필요도 없었다. 캠핑시절 요리솜씨를 앞세웠다. 바비큐와 더치오븐 요리를 메인메뉴로 깔았다. 맥주는 점촌 IPA, 오미자에일, 흑맥주인 은하수스타우트 등 문경의 대표 맥주로 불리는 가나다라 브로이의 수제맥주 7종을 장착했다.

2016년 6월 소리소문 없이 오픈했다. 첫날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기죽지 않고 게으른 포즈를 취하며 혼자 음악 들으며 신천 산과 강과 대화를 했다. 2층은 자택이다. 오전 6시가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가게로 출근한다. 겨울에는 장작불 피우고 커피부터 한잔 마시며 매일 달라진 풍광의 안부를 묻는다. 좋은 음악을 선별해놓기 위해 LP를 일일이 감상하면서 이 가게에 맞는 1천곡을 파일로 만들었다.

라이브도 필수. 매년 계절별로 음악회를 연다. 4인조 크로스오버 연주단체 SP아르떼, 통기타가수, 성악가 등이 지나갔다. 분위기가 괜찮다 싶었던지 색소폰, 우쿠렐레, 통기타, 가요교실, 시낭송 동호인들이 파티 공간으로 애용하기 시작했다.

돈을 위해 이 공간을 열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꿈이기 때문이다. 유지만 되어도 그게 성공이라 여길 것이다. 개업 후 2년을 지나면서 확실한 인프라를 다지고 싶었다. 그러던 중 가창면에서 꽤 유명한 피자가게 ‘송하’와 손을 잡았다. 송하 피자도 가창을 떠날 심산이었다. 내가 새로운 피자라인을 가동하는 것보다 손을 잡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지난 3월 송하 피자가 우리 가게에 숍인숍 스타일로 정착을 했다. 홍보하지 않아도 이 피자의 내공을 알고 많이들 찾아주기 시작했다. 현재 피자는 10년 구력의 이세복 셰프가 담당하고 있다.

시금치를 베이스로 한 ‘벨라조이피자’, 그리고 베이컨이 토핑된 ‘하와이안피자’가 가장 인기를 끈다. 12조각이 원목 트레이에 담겨져 나온다. 채소피자로 불리는 베조, 콤비네이션피자 스타일인 슈프림피자, 고구마피자, 새우가 올라가는 톱슈림프 등 모두 6종의 피자가 항시 대기 중이다.

‘더치오븐닭’은 그만의 노하우가 담겨 있다. 바질과 로즈마리, 후추, 그리고 강황가루를 발라 180℃ 무쇠오븐에서 2시간 익혀낸 것이다. 손님들이 가장 흐뭇해 하는 메뉴는 아웃도어방식으로 익혀낸 모둠샐러드. 먹기 아까울 정도로 푸짐하다. 고구마, 감자, 샐러리, 단호박, 양파, 옥수수, 브로콜리, 프렌치빈, 껍질콩, 연근, 가지, 당근, 주키니, 피망, 표고버섯, 파프리카 등이 기세등등하게 등장한다.

그가 이 거리에서 김윤동 DJ 등과 벌이고 싶은 ‘작당’이 있다. 보니엠, 스모키, 닐 영 등과 같은 옛 팝스타를 불러 모아 69년 미국 베델평원의 우드스톡 페스티벌 같은 ‘가창발 올드뮤직페스티벌’을 열고 싶단다. 꼭 성사되길!

매주 2·4째 월요일 휴무.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562-4. (053)765-8998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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