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박기영 시인과 옻순축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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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6   |  발행일 2019-04-26 제41면   |  수정 2019-04-26
대구서 옻문화 보급한 ‘父’ 옥천서 옻순요리 개척하는 ‘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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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냉기를 머금은 옥천군 산지의 옻나무는 순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이날 부족한 물량은 달성군 화원읍에서 공수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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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순장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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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된 옻순간장과 된장을 베이스로 해서 만든 옻순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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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순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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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시인 등 40여명의 지인을 초대해 충북 옥천군 청성면 박기영 시인 자택 마당에서 열린 제5회 옻순잔치 광경.

한때 장정일 시인의 문학적 사부로 알려져 나름 명성을 날렸던 박기영 시인. 방송작가로 전국을 순례하던 그는 15년전 작정하고 아내(정태영)와 함께 강원도 원주, 경남 함양군 마천면과 전국 3대 옻산지로 유명한 옥천군 청성면 고당리 산간마을에 정착했다. 금강IC에서 6㎞ 떨어진 옻골동산에 집을 지었다. 조금만 눈이 와도 교통편이 끊기는 곳이다. 200m를 내려가면 더없이 맑은 강물이 흘러가는 금강 줄기가 보인다. 집에는 수령 200여년의 고목형 옻나무 2그루가 있고 그 뿌리가 도사린 언저리에 옻샘이 형성돼 있다. 그곳을 제사장처럼 관리하는 박 시인. 그는 ‘옻사나이’로 살았던 아버지의 삶을 가업처럼 잇고 있었다. 유달리 허연 구레나룻으로 인해 그는 이날 ‘옻순교 교주’로 불렸다. 뒷동산에는 뒤늦은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하지만 냉랭한 골바람이 사라지지 않는 곳이라 옻순은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

올해 5회째를 맞는 ‘박기영 시인 옻순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나는 취재를 겸해 지난 20일 거기로 날아갔다. 이동순, 이문재 등 시인과 음식연구가, 경향각처 지인 40여명이 속속 모여들었다. 거실에 놓인 식탁을 끄집어 내 마당 한가운데에 시식 공간을 마련했다.

마당 한 편에 대형 가마솥 3개가 놓인 농막이 보인다. 시식할 음식이 모두 여기서 요리된다. 근처 아낙네 여럿이 일추렴을 위해 여기로 왔다. 다들 음식 장만에 여념이 없다. 옻염소탕, 옻순영양밥, 옻순장떡, 닭과 돼지고기를 이용한 옻순두루치기, 옻순바비큐, 두 종류의 옻순숙회 등이 줄줄이 나왔다. 한없이 투박한 맛이다. 특히 옻장떡은 경북 북부지역 요리방식인 가마솥에 찌는 방식이다. 이날 건배주로 채택된 건 석이버섯 전통수제 발효주 ‘석로주’였다. 대전에 살고 있는 이상권 전통주연구가가 갖고 온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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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 아버지의 피를 닮아 옻요리에 능한 박기영 시인. 그가 15년전 옻의 고장 충북 옥천으로 내려가 옻순식문화의 신지평을 열며 매년 자택에서 옻순잔치를 벌이고 있다.

80년대초 화원에 옻나무 4천주 식재
매년 봄, 부친 식당서 옻순요리 소개
원료 말려내 ‘옻순 비빔밥’ 선봬기도
전국 3대 옻산지 옥천 고당리에 정착
집마당 200여년 고목형 옻나무 2그루
날씨에 민감, 옻순 먹는 시기 단 3일뿐
봄나물 중 유일하게 단맛 가진 산채
고소한 별미, 한번 맛들이면 잊지 못해
독소제거 방법 터득…옻특산품 생산
詩人의 삶 병행 25년만에 두번째 시집


◆옻순요리 만드는 시인

날씨가 아직 일렀다. 옻순을 옥천에서는 구하기 어려워 긴급히 달성군 화원읍에서 20㎏을 공수해왔다.

박 시인은 ‘옻전도사’. 옻에 대한 이런저런 지식이 해박하다. 현재는 옻순을 이용한 특산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 그는 근처 삼남리 농업회사 법인(예비적사회기업) ‘참옻들’에서 생산된 15년된 옻된장과 간장을 이날 무척 자랑했다. 현재 그는 6t의 옻된장, 5t의 옻간장을 갖고 있다. “일반 양념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세월의 기운이 스며들어가 있는 옻간장과 된장, 약간의 옻고추장만으로 기본 맛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이 옻순잔치의 시발은 대구 앞산순환도로변 안지랑이계곡 맞은편 ‘대덕식당’. 그의 아버지는 현재 대덕식당 자리에서 ‘맹산식당’이란 옻닭 전문 식당을 운영했다. 아버지는 평남 맹산 출신의 포수. 6·25전쟁 때 남으로 피란을 왔다. 맹산옻닭은 대구의 첫 옻닭인 셈. 부자는 옻문화를 보급하기 위해 1980년대 초 달성군 화원읍에 4천주의 옻나무를 심었다. 매년 초봄이면 맹산식당에서 옻순을 갖고 전과 무침, 그리고 두루치기를 요리해 선보였다. 그 옻순요리가 박 시인에 의해 충북 옥천군에서 재현되었고 그로 인해 국내 최초의 옻순축제가 12년전 옥천에서 시작되는 계기가 된다.

옻순은 날씨에 매우 민감하다. 예전에는 4월 중하순 옥천, 4월 하순에는 지리산, 그리고 5월초 원주산이 시장에 나왔다. 국내 첫 옻특구가 된 옥천군에만 50만여주가 심겨 있다. 전에는 1천여만주가 산재해 있었다. 최근에는 전남 장흥·곡성군도 산지로 가세했고 4월 초에 서둘러 옻순을 생산한다. 한때는 귀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중국산 옻나무까지 가세하면서 전국은 옻순으로 흘러넘친다. 가격이 폭락할 수밖에. 예전에는 옻나무에서 추출된 진액이 공산품으로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그게 채산성이 없어지면서 옻순쪽으로 세인의 이목이 쏠렸다. 그렇게 만든 주인공이 박 시인이다.

◆특수로 번지는 팔도 옻순

단 3일이라고 한다, 옻순을 먹을 수 있는 시기는. 매년 4월이 되면 박 시인의 마을 사람들은 그 3일간의 별미를 위해 산을 누빈다. 어떤 사람은 옻순을 ‘지독한 맛’이라 규정한다. 옻 오르는 괴로움을 뻔히 알면서도, 입안에 남아 있는 그 맛의 유혹을 넘어서지 못하고, 항히스타민제를 챙기며 매년 찾게 된다.

그 옻순이 일반인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져 상품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초. 대구 앞산 안지랑이 일대에 모여 있던 옻닭집들이 봄철 계절 메뉴로 옻순을 등장시킨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옻순은 상품이 아니라 생산지 주위에서 잠깐 즐기는 특이한 음식이었다. 지리산 마천에 옻밭을 확보한 그의 아버지는 현지에서 옻순을 말려 대량으로 원료를 확보한 뒤 ‘옻순비빔밥’을 탄생시켰다.

옻순은 옻닭 색깔을 바꾸었다. 말린 옻순을 이용하다 보니 노란 옻닭 국물이 시커멓게 변한 것이다. 옻순 삶은 물로 닭을 삶고 그 육수를 내어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런 속 내용을 모르는 옻닭집에서는 국물을 시커멓게 만들기 위해 커피를 타서 내는 일까지 생겼다.

옻순은 봄나물 중에서 유일하게 단맛을 가진 산채다. 옻이 가진 다당류로 인하여 옻순 특유의 단맛과 고소함을 간직하여 한번 맛을 들이면 쉽사리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옻순을 먹는 이치는 단순하다. 채 성장이 완성되지 못한 식물의 싹은 그 독마저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여 부작용이 적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옻순 역시 마찬가지. 옻나무의 독성 물질인 우루시올을 생산하는 세포가 채 성장하지 못하는 시점을 이용해 섭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식품위생법상 옻순은 가공해서는 상품으로 판매할 수 없는 농산물이다. 그는 옥천에 와서 옻순을 되살리는 방법을 찾아냈다. 옻순의 특징을 이용해 단 이틀간의 게릴라 축제를 시도한 것이다. 옻순을 딸 수 있는 시기가 매년 기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착안해서 언제 시작할지 모르는 축제를 마련했다. 음식으로 판매할 수 없다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농산물로 옻순을 사게 해서 현장에서는 조리용역비를 받는 이상한 축제를 만들어냈다. 이 축제는 이내 언론에 부각되어 옥천을 단숨에 전국 유명 옻 주산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했다.

옻순 축제를 통해서 옻을 이용한 다양한 조리법과 음식이 개발되었다. 생선회와 더불어 옻순을 먹는 방법이 방송에 소개되고 옻순으로 김치를 담그고 옻순장아찌와 효소가 사람들에게 판매되기도 했다. 물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옻과 상극인 음식을 일반인에게 조리해주어 옻오름의 부작용을 경험시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옻순축제의 빛과 그림자

옻의 이런 부작용을 알기에 그는 옻 오르는 음식과 안 오르는 음식을 구분했다. 공간을 만들고 위험지역과 안심지역을 구분하는 공간 기획을 처음부터 시도했다. 하지만 농민들은 이것을 무시하고 행사를 치렀다. 옻이 가진 이중성이 행사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사실 옻순축제는 옥천에 잘못 심어진 옻나무를 활용하기 위하여 고육지책으로 만든 축제다. 실적 중심의 행정기관은 옻나무 보급을 늘리기 위하여 적정 재배면적을 확보하지 못한다. 옻나무 묘목을 밀식 보급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적정 면적보다 3~4배 넘는 밀식재배는 나무의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농민들의 입장을 배려했다. 첫 번째 옻순축제는 사비를 투입해 진행했다. 언론의 각광을 받고 전국 각지에서 옻순 마니아가 옥천으로 몰려들자 군은 지원을 결정했다. 군비가 지원되면서부터 옻순 관련 농민간 이권다툼이 일어났다. 그는 축제에서 손을 떼고 사태를 관망했다.

옻순은 먹을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나물이다. 특정 형태 이상으로 성장하면 옻나무 독성이 강해져 못 먹는다. 그걸 무시하고 채취해 판매하는 일이 생겼다. 옻순 보관방법을 무시한 저장관리는 상품의 질 저하를 초래했다. 더욱이 옻나무가 전국적으로 보급되면서 옥천이 가지고 있던 이점도 갈수록 상실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아무튼 옥천의 옻나무는 상종가를 치고 있다. 타 지역 옻나무와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전통적인 칠 생산 중심에서 산채를 생산하는 나무로 변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옥천의 옻나무 재배방식의 변화를 가져 왔다. 정상적인 나무는 수직 성장을 하는데 나무의 키가 너무 커지면 옻순 채취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일정한 높이가 되면 전지를 해 수직 성장을 막는 재배방법이 등장한 것이다. 그는 생산극대화를 위해 다양한 실험을 했다. 조기 수확을 위해 하우스 재배방법도 모색했다. 옻순은 그 생산시점이 언제인가에 따라 가격이 천지차이인 생물이다. 실제로 옻나무 가지 끝에 페트병을 씌워 보름 정도 채취 시기를 앞당기는 실험도 했다. 그렇게 앞당기면 옻순은 평소보다 다섯 배 이상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단자균으로 처리한 옻나무, 그리고 우루시올 독소를 제거한 옻나무를 만들 줄 안다. 그래서 옻특산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옻의 비밀을 그만큼 현장지식적으로 아는 농부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는 요즘 시인으로 적극 나서고 있다. 2016년 25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맹산식당 옻순비빔밥(모악)’을 출간하고 자택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그 시집은 오소리술, 어육계장, 곰순대, 꿩냉면, 청국장반대기 등 음식을 주제로 한 시집이라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시집 ‘무향민의 노래’(한티재)를 출간했다. 이북에 고향을 둔 탓에 그리움이 사무쳤던 아버지와 시인의 삶을 그린 것이다.

내년에 열릴 그의 마당에 핀 옻순은 어떤 맛을 낼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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