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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지역 3·1운동의 특징은 기독교인과 학생.청년들이 주도하고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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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주기자
  • 201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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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김천교육너머' '100년 전 그날 김천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세미나 개최

김천지역 3·1만세운동 조명한 세미나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을 김천지역 차원에서 조명한 세미나(100년 전 그날 김천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가 시민단체 '김천교육너머'가 주최하고 대한법률구조공단 노조가 후원한 가운데  지난 26일 오후 김천혁신도시 대한법률구조공단 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김천지역 3·1만세운동 ▲(김천)개령 출신 독립운동가 김단야 ▲독립군가 부르기 ▲독립운동가 후손과의 만남의 순으로 진행됐다.
 

김천교육너머는 "김천지역 3·1운동의 특징은 기독교인과 학생 및 청년들이 주도하고, 참여했다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세운동을)주도한 인사들의 직업은 곡물상· 봉제업· 양화점· 이발업· 미곡상 등 각종 직군에 걸쳐 다양하게 분포돼 있고, 머슴들까지 참여했다"며 "이 같은 현상은 3·1운동이 그해 3월 하순 이래로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민족운동이 되었음을 알 수 있게한다"고 해석했다.
 

김천교육너머는 "(김천의 3·1운동은) 추진 및 전개 과정에서 혈연·지연·학연·종교 등이 연결고리가 됐으며, 일부 면 단위 지역에서는 행정 조직과 면서기들이 나서기도 했다. 특히 증산면에서 승려들이 활동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며 "그러나 (이로 인해)일제의 탄압이 지역 기독교계에 미친 영향은 매우 심각했다. 당시 신도 가운데 70% 정도가 교회를 떠났을 정도"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엘리트 사회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 김단야(본명 태연)를 소개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김단야는 김천 개령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민족해방을 위해 사회주의자의 길을 걷게 됐다. 동아·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했으며, 1926년 순종 사망을 계기로 권오설 등과 함께 '6·10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앞서 고려공산청년단 대표로 가졌던 레닌과의 만남을 조선일보에 연재(레닌회견인상기)했다.
 

소련에 망명한 상태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가던 김단야는 스탈린 대숙청기에 조선공산당원이었던 사람(일본 밀정)의 모함으로 1938년 소련에 의해 처형됐다. 2001년 러시아로부터 복권됐고,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김천교육너머는 이날 행사를 통해 김천지역 독립유공자 59명의 공적을 소개했다.

김천=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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