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학의 문화읽기] 행동 없는 인문학은 인문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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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17


인문학 열풍은 몰아치지만

삶은 비인문학적 환경 놓여

강의 듣고도 생각은 안바꿔

다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문학 지식 삶속에 실천을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쉬 식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이렇게 인문학 열풍이 몰아치고 있는데, 우리 삶은 곧장 비(非)인문학적 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인터넷과 정치권에서 글과 말은 끝없이 거칠어지고, 칭찬할 줄 모르고 무조건 나무라고 빈정대고 무시하기까지 하는 사회 분위기가 인문학적 열풍이 부는 가운데 있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진다.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분위기가 아니라면 차라리 참고 넘어갈 만한 데 말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문화의 시대가 와서 문화가 아니면 아무 것도 될 것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온갖 천지에 문화가 붙지 않는 곳이 없더니, 지금은 또 인문학이 세상의 그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는 그 무엇인 것처럼 모든 것이 인문학으로 포장되고 있다. 원래 인문학은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정작 인문학이 활성화되어야 할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은 무엇으로 설명이 가능해질는지 모르겠다.

오늘날 지구촌에 불고 있는 인문학은 전통적인 인문학의 의미와는 조금의 차이가 있다. 소외 계층을 위한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 교육과정인 클레멘트 코스의 설립자 얼 쇼리스(Earl Shorris)가 클레멘트 코스를 설립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 그 차이가 인정될 것이다. 그 동기는 매우 드라마틱하다. 미국의 베드포드힐스 교도소는 중범죄자 수용 교도소로 가정 폭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8년 이상을 보내고 있던 비니스 워커라는 재소자가 “사람들이 왜 가난한 것 같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클레멘트 코스에 대한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고 그의 ‘희망의 인문학’에 쓰고 있다. 그의 대답은 “그 문제는 아이들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 애들을 연극이나 박물관, 음악회, 강연회 등에 데리고 다녀 주세요. 그러면 그 애들은 그런 곳에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애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얼 쇼리스의 인문학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용어에 혼란이 와서 인문학과 문화의 차이가 없고 인문학이 곧 예술인양 치부되기도 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인문학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홍규 교수는 ‘인문학의 거짓말’을 통해 타락한 인문학, 빈곤한 인문학을 지적하면서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민주주의를 위해서고, 자유-자치-자연이라는 입장에서 바라보기도 했다. 현재 사회 전반에 일고 있는 인문학의 유행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긴 한 셈이다.

얼 쇼리스의 ‘인문학은 자유다’의 한국어판 추천사에서 강영안 교수는 인문학 강좌가 강의 중심이라는 데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강의만 듣고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문학적 지식의 소유는 오히려 사람을 더욱 오만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인문학 강좌에 소크라테스적 방법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인문학은 생각하고 토의하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 글로 담아내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영안 교수는 “우리가 역사와 철학을 배우고 문학을 읽으며, 예술을 접하는 까닭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를 사람이 살 수 있는 공동체로 가꾸어가기 위해서”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인문학이 강의 중심에서 벗어나야 하고,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는 것을 행동하게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고 그 누가 아닌 내가 먼저 인문학적 지식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해야 한다. 행동 없는 인문학은 인문학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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