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11] 거리 두기의 미학 ‘대부’의 성공 비결

  • 최은지
  • |
  • 입력 2019-05-23   |  발행일 2019-05-23 제22면   |  수정 2019-05-23
윤리 어긋난 마피아 이야기는 어떻게 고전의 반열 올랐나
20190523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20190523

마리오 푸조의 소설 ‘대부’는 1969년에 출간되어 무려 67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판매 부수 또한 전 세계적으로 2천100만부 이상이 된다니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고 할 만하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된 것은 1972년이고,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이 전 세계 영화사에 남는 고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데, 오늘은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소설과 영화 모두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작가와 감독 또한 최고의 지위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자기 작품에 긍지를 가지지 않았다. 소설 말미에 붙어 있는 피터 바트의 해설 ‘대부 -숨겨진 이야기들’에서 이러한 사실이 확인된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코폴라 감독은 기자들에게 “‘대부’의 성공으로 이제 ‘진정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원작자인 마리오 푸조가 이 말을 전해 듣게 되었는데 그때 그가 보인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서른두 살 먹은 어린애는 내가 마흔다섯 살이 되어서야 깨닫게 된 것을 벌써 알고 있더군! 우린 둘 다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해 ‘대부’를 이용해 먹은 거네.”(이은정 옮김, ‘대부’, 늘봄, 2003, 717~718쪽). 이렇게 작가와 감독 모두 자신들의 명성을 이루어 준 ‘대부’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이유는 자명하다. 마피아를 다루고 있는 작품의 내용이 떳떳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터이다.

일견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상황이 보여 주는 것은 무엇인가. 정당성을 의심받으면서 막대한 인명과 물자를 소진시키던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셌던 1960년대 말 미국의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결론을 당겨 말하자면, 작가도 감독도 다소 과한 겸양의 태도를 보였다고 하겠다. 정작 작품은 훌륭한데, 그것을 자랑할 수도 자부심을 가질 수도 없었던 것이다.


영화는 가족의 중요성, 탁월한 리더십, 생존전략 강조
소설은 범죄의 필요악적 측면을 냉정한 시선으로 담아
예술적 가치 확보 안된 소재, 스스로 예술의 경지 올라
대중에겐 작품서 벌어진 사건의 판단 부담 덜어주기도



사정을 명확히 하기 위해 다소 전문적이지만 미학의 이야기를 조금 해 보자. 마피아와 같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내용을 다루면 작품의 예술적인 가치가 확보될 수 없는가. 이러한 일반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아니오’가 그것. 예술적인 가치의 핵심을 이루는 아름다움이란 추한 대상, 악한 대상을 다루면서도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대상으로부터 직접 나오는 것이 아니다. 형상화의 대상과 예술작품 사이에는 거리가 전제된다. 이는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의 심리적인 특성에서 유래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 ‘장미의 이름’의 저자 움베르토 에코에 따르면 아름답다는 것은, 어떤 행위나 사물에 대해 그것을 직접 행하거나 소유하려는 욕망은 없는 상태에서 그것을 선하다고 생각하거나 그것을 바라보는 일 자체를 즐기는 감정이다(이현경 옮김, ‘미의 역사’, 열린책들, 2005). 소유욕과는 거리를 둔 채 주체적인 심미 행위를 할 수 있을 때의 감정이 아름다움이라는 말이다. 요컨대, 자체로 아름다운 것을 다루든 악하거나 추한 것을 다루든 간에 소재나 내용이 예술작품의 성립 여부나 질을 직접 좌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미학의 대답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대부’가 마피아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작가와 감독이 역사에 남게 된 자신의 작품을 부끄러워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인 것은 잘못이라 할 것이다.

사실 ‘대부’는 소설이나 영화로서 자신의 장점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 소설 ‘대부’는, 가족의 중요성, 가족에 대한 남성 가부장의 책임감, 대부가 보여 주는 탁월한 리더십, 배울 여지가 있다고 여겨지는 생존경쟁 전략 등 우리들 일반에게 깊고 큰 울림을 주는 내용을 잘 담고 있다. 보편적 호소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소설 ‘대부’는 사회가 운영되는 데 있어서 범죄 또한 어느 정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범죄의 필요악적인 측면을 알려 주는 성숙하고도 냉정한 시선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영화 ‘대부’ 또한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작품 효과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고 있다. 유명한 주제곡과 더불어 시작되는 영화 초반의 대위법적인 구성을 보자. 장의사 보나세라가 딸의 불행을 이야기하는 대부 사무실의 어두운 무거움과 남녀노소가 모두 모여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결혼식의 흥겨운 명랑함이 대조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시퀀스는 이 작품의 내용이 인간의 삶 일반을 다루는 폭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면서, 각 장면의 빼어난 촬영 기법과 인물들의 생동감 넘치는 개성적인 연기로 인해 예술적인 효과를 획득한다. 작품 전체도 그러하다. 말런 브랜도가 멋지게 연기해 낸 대부의 언행이 보이는 권위와 사려 깊음, 말과 표정을 아끼면서 그를 보좌하는 톰이 보이는 절도, 큰아들 소니가 보이는 격정, 인생 굴곡의 불가피함을 따르는 막내 마이클의 운명적인 변신 등은 스토리의 진정성을 크게 강화한다. 고든 윌리스가 촬영한 화면의 구성과 니노 로타의 음악이 주는 효과가 작품의 예술적인 분위기를 한층 강화해 줌은 물론이다. 이러한 기법을 통해 내용의 잔혹함이 그리 돌출적이지 않게 된다는 점에서 이는 크게 강조할 만하다.

‘대부’가 소설로서 영화로서 각각의 장점을 갖추었다는 사실은 영화화 과정에서 삭제되고 추가된 것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영화는 대부의 젊은 시절 곧 ‘비토 코를레오네’가 ‘돈(Don: 보스, 대부) 코를레오네’가 되는 과정을 보여 주지 않는다. 미국 정착 초기 그가 겪은 곤궁함과, 살인과 절도라는 범죄를 직접 저지른 범죄자라는 부정적인 사실을 부각하지 않고 대부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해서이다. 범죄에 대한 변호로도 읽힐 법한 서술자의 판단이나 가부장 및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주의적인 서술 등을 뺀 것 또한 동일한 효과를 낳는다. 이에 더하여, 영화에 새롭게 삽입된 것도 지적해 두자. 돈 코를레오네가 자상한 할아버지로서 손자와 놀아 주다가 사망하는 장면이 대표적인데, 이는 대부의 인간적인 면모를 한껏 강화해 준다.

이상은 소설 ‘대부’와 영화 ‘대부’가 마피아 이야기라는 내용이 던지는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장르의 특성을 각각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덧붙여 강조할 필요가 있다. 영화 ‘대부’가 관객들에게서 윤리적 법적 판단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이다. 영화를 종결짓는 멋진 장면에서 이러한 메커니즘이 잘 드러난다. 매형까지 포함하여 정적들을 모두 제거하고 새로운 대부가 된 마이클의 냉혹함이 방 밖에서 그를 바라보는 케이의 눈빛에 어리는 당혹감과 병치되는 장면에서 우리는 마이클과 마피아에 대한 현실적인 판단을 케이에게 위탁하고 그 둘을 보는 제3자의 자리로 물러나게 된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판단을 직접 수행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작품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윤리적 법적 판단을 영화 속의 인물에게 맡김으로써 판관의 부담을 지지 않은 채 작품을 관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마이클이, 뒤에서는 케이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해 준다.

소설과 영화 ‘대부’는 마피아 이야기를 다루되 장르의 미학을 십분 활용하여 스스로 예술의 경지에 오른다. 이것으로도 부족한 듯 영화 ‘대부’는 직접적인 윤리적 판단이라는 부담으로부터 관객이 한 발 물러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거리감이 사태를 호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진실을 긴 안목으로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야말로, 영화 ‘대부’가 마피아를 다루면서도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이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문학평론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