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바다인문학] 웅어 이야기

  •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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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31   |  발행일 2019-05-31 제38면   |  수정 2019-05-31
바다·강 만나는 물길지역 유명…뼈째 먹으며 씹을수록 달콤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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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어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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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포구에서 만난 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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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어구이.

지난 4월, 한 지인이 가까운 전남 나주에 맛있는 웅어회 집이 있다며 점심초대를 했다. 웅어회라니, 그것도 목포가 아니라 나주란다. 영산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고 복암리 고분을 뒤로 하며 도착한 곳은 작은 면소재지의 한 식당. ‘봄의 진미 웅어, 웅어회 개시’라고 적힌 현수막이 가게 앞에 내걸렸다. 사람들이 북적대니 일단 안심이다. 오리탕 집에 웅어회라니. 40여년이 되었다는 식당은 주인도 바뀌고 이름도 바뀌었지만 웅어회만은 이어지고 있었다. 찾는 사람이 입맛을 알고 기웃거리니 바뀐 주인도 뿌리칠 수 없었단다. 주인은 목포에서 웅어를 가져온다.

영산강 물길이 막히기 전에는 가까운 영산포와 구진포까지 웅어가 올라왔다. 지금은 영산강 하구 해남 화원반도나 신안 지도 일대에서 잡은 웅어를 가져온다. 영산강뿐일까. 낙동강 하구 하단마을은 웅어잡이로 유명하며 2006년부터 웅어축제를 열고 있다. 명지마을과 함께 낙동강 하구의 큰 어촌이었다. 지난해는 웅어가 많이 잡히지 않아서 잠깐 쉬었지만 금년 5월에도 웅어축제를 개최했다. 김 양식을 했던 어촌마을이지만 지금은 마을어장이 없다. 하구둑 준공으로 재첩도 사라지고 대신에 웅어, 숭어, 장어 등이 낙동강 내수면 어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주처럼 낙동강 자락에 있는 경남 밀양에서도 웅어회를 내놓은 식당이 있다.

자리를 잡고 기다리기를 반 시간, 기다리던 웅어회와 웅어구이가 올라왔다. 웅어회부터 맛을 보았다. 첫맛은 담백하며 밍밍하다. 여기서 멈추면 실망이다. 입안에 넣고 꼭꼭 씹으면 은근하게 달콤한 맛이 배어난다. 어떤 이는 이 맛을 복숭아 맛이라고 하고 미나리향이라고도 했다. 첫 맛에 혀를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끌어들인다. 이 맛에 선비들이 반했던 것일까. 이 맛에 웅어를 엮어 선물을 하고 글을 쓰고 시를 지었던 것일까.

웅어는 회, 무침, 매운탕 외에 소금구이·젓갈·회덮밥으로도 먹는다. 한강 하구 지역에서는 박달나무를 태워 훈제품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동아일보 1931년 5월21일자 기사를 보면 ‘웅어회는 막걸리에 빨아 고추장을 곁들이면 좋다’고 했다. 생선의 비린 맛을 없애기 위해 막걸리로 씻는 것이다.


단오 무렵이 뼈도 연하고 가장 맛 좋아
바다에서 살다가 강 하구 갈대밭 산란
임금님 수라상·종묘 올라온 귀한 어류
한강 하류 염장·얼음보관 위어소 설치
회·무침·매운탕·소금구이·젓갈로 즐겨

남방어로한계선 접한 김포 전류리 어장
10여년 전까지 노 저어 그물 상태 확인
포구로 가는 지름길 입구 철문으로 닫혀

테러방지 수중보·4대강 사업 최대 피해
강 하구 훼손 탓 영산강 등 드물게 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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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를 받아야 오갈 수 있는 전류리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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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포구.

◆웅어 인문학

웅어는 청어목 멸치과에 속하는 어류. 비늘이 잘고 몸은 은백색이다. 전라도 신안, 무안, 영광 등에서 웅에, 우어, 충청도 바닷가에서는 우여, 위여, 우어 등으로 불린다. 강화에서는 ‘깨나리’, 해주에서는 ‘차나리’라고도 한다. 비슷한 어류 중에 ‘싱어’가 있어 이름이 헷갈린다. 가장 생소한 이름은 ‘충어(忠魚)’다.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와 싸울 때 백마강에서 웅어를 찾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그러자 그는 “고기마저 의리를 지키려고 모두 사라졌구나”라며 그 고기를 충어라 불렀다고 한다.

웅어는 바다에 살다가 봄이면 갈대가 많은 하구로 올라와 알을 낳고 가을이면 바다로 내려가 겨울을 난다. 다시 단오 무렵 강어귀로 올라오다 잡힌 웅어는 뼈도 연하고 고소하며 맛이 좋다. 이 시기가 지나면 뼈가 억세고 독특한 향도 사라진다. 잘 자란 웅어는 30~40㎝까지 큰다. 위턱이 길고 몸통은 뒤로 갈수록 가늘어져 칼끝처럼 날렵하다. 가슴지느러미에 실처럼 긴 줄기가 몇 개 있다.

웅어 관련 최초의 기록은 1469년 하연이 편찬한 ‘경상도속찬지리’다. 김해 부남포 ‘어량’에서 위어가 잡혔다고 기록했다. 어량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로 모양은 죽방렴과 비슷하다. 웅어는 옛 문헌에 ‘위어(葦魚)’로 표기되어 있다. 중국 문헌에는 도어, 제어, 멸도, 열어, 조어 등의 표기는 있지만 위어는 보이지 않는다. 위어란 강 하구에 자라는 갈대에 알을 낳는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웅어는 조선 초기부터 임금님 수라상과 궁궐은 물론 종묘에도 올라온 어류다. 그만큼 수요가 많았으니 높은 양반들 필요에 충분한 양을 잡아서 바쳐야 할 ‘위어소’를 한강 하류에 두루 설치했다. 궁궐의 음식을 담당하는 사옹원은 안산, 김포 등에 위어소를 두었다. 멸치류들이 그렇듯이 잡은 즉시 얼음에 재워 보관하거나 염장을 하지 않으면 두고 먹기 어렵다. 낙동강, 영산강, 금강 하구에도 웅어가 잡히지만 위어소를 한강 하류 곳곳에 설치한 이유다. 그러니 웅어를 잡는 어부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입맛은 같은데 궁궐을 핑계로 층층이 얼마나 많은 높은 사람들이 웅어를 탐했겠는가.

광해군 때 사옹원이 위어소 어부가 올린 소장을 올렸다. 다섯 개 읍을 통틀어 300호였는데 난리를 겪은 뒤 현재 남아서 그 역을 응하는 집은 겨우 100호밖에 안 되는데도 온갖 잡역이 더해져 살기가 힘들다는 내용이다. 어부가 직접 청원한 해당 지역은 전류리가 있는 한강 하류 고양, 교하, 김포, 통진, 양천 지역이다. 사옹원에는 어장이나 어살에서 물고기를 잡는 일을 감독하는 ‘감착관’이라는 벼슬아치가 있었다. 이들은 웅어가 회귀하기 전에 통진(지금의 김포 일대) 현지 어장에 도착해 있으니 어부들의 고단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조정에서 오롯이 물고기를 잡아 진상하도록 위어소를 만들었다. 조세나 다른 역을 면제해주었지만 어부의 호수는 감소하고 조세는 면제해주지 않으면서 각종 잡역을 일반백성과 똑같이 부과해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조정에서도 ‘복호’, 즉 조세를 법대로 한결 같이 면제하지는 못할지라도 새로운 역은 일절 부과하지 말고 물고기만 진상하도록 했다.

◆철조망에 가로막힌 포구

웅어를 처음 본 곳이 전남 영광 염산이던가 부안 곰소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가장 최근에 본 곳은 김포 대명포구다. 인천 소래포구에서도 웅어를 만났다. 맛을 본 곳은 영광이다. 영광이 고향인 장모님 덕분이다. 그녀는 낙월도와 송이도 그리고 멀리 염산에서 생선을 가져다 포구에서 장사를 하셨다. 처가에서는 봄에는 빈지럭(송어, 밴댕이)과 웅어, 겨울에는 숭어 새끼인 모치, 여름에는 백합 그리고 밥맛이 없을 때는 잡젓을 곧잘 내놓았다. 웅어는 귀해서 운이 좋을 때만 간혹 상에 올랐다. 현지에서도 귀하니 시장에 잘 나오지도 않는다. 양이 적고 어획기간도 짧다. 그래서 더 귀하다. 경기 김포시 양촌읍 전류리 어장은 대명포구와 지척에 있다. 접경지역이자 남방어로한계선과 접해 있어 10여년 전까지 동력선을 사용할 수도 없어 노를 저어가 자기 그물 상태를 확인했다. 그동안 잡은 수산물을 경매했지만 2011년부터 직판장을 만들고 다섯 곳의 판매장과 공동식당 한 곳을 마련해뒀다. 그 덕에 어민들의 소득이 크게 증가했다.

강에 떠있는 어선에도 고기잡이를 허가하는 깃발이 달려 있는데 이 깃발은 ‘조강’의 시작점을 의미한다. 조강은 한강 1천리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바다로 드는 강이다. 김포반도 하성면 연화산과 파주의 교하 오두산 사이에서 할아버지강이 시작된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고 다시 한탄강물을 끌고 온 임진강이 합해지는 두물머리다. 조강은 다시 한숨을 돌리다가 개성을 지나온 예성강을 받아 서해 5도를 스치며 황해로 흘러든다. 이곳을 거슬러 진객 웅어가 온다. 전류리 포구의 어민들은 안강망으로 웅어를 잡는다. 강화도에서는 새우를 잡는 닻배나 꽁댕이배로 잡기도 한다. 전류리는 한때 21척의 배로 100여명이 조업을 하는 어촌이었지만 지금은 5척에 20여명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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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어를 잡는 꽁댕이배.


◆4대강 최대 피해자는 웅어

전류리 포구는 생각보다 을씨년스럽고 신산하다. 철조망 탓일까. 허름한 작업장 같은 식당에 딸린 수족관. 거기에 귀한 황복이 있고 옆에는 웅어가 손님을 기다린다. 강과 마주한 도로를 따라 철조망이 가로 막혀있다. 강변에 두세 척의 배가 정박해 있다. 포구로 가는 지름길 입구는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다. 가족나들이객, 자전거동호회 회원 등이 자리를 잡고 웅어를 주문한다.

한강에도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살고 있다. 상류 양평 일대 어부들은 장어, 쏘가리, 자라, 다슬기, 붕어, 그리고 외래종으로 베스, 블루길, 강준치 등을 잡는다. 하류 김포 전류리, 고양, 행주 등은 바닷물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웅어, 황복, 숭어, 장어, 새우, 참게 등이 잡힌다.

그런데 전류리에서는 웅어가 잡히는데 행주 쪽에서는 요즘 웅어가 잘 잡히지 않는다. 왜 그럴까 궁금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수중보 때문이다. 88올림픽 때 간첩이 수중으로 침투해 생길 수 있는 테러를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신곡 수중보를 만들었다. 결국 웅어가 오가는 물길이 끊기게 된 것이다. 그나마 열린 물길이었던 한강은 강과 바다를 완전히 단절시켰다. 물이 많이 빠지는 물때는 수중보 바닥까지 드러난다. 기수역 생물의 인큐베이터 구실을 했던 장항습지는 버드나무가 자라면서 육상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그곳 어디에선가 웅어들이 알을 낳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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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4대강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영산강의 구진포나 영산포, 금강의 강경포나 성당포도 마찬가지다. 한강 행주나루가 그렇듯 말이다. 이젠 낙동강 하구 하단어촌, 영산강 하구 해남 화원이나 신안 지도 어촌, 금강 하구 서천, 한강 하구 김포 일대에서만 드물게 잡히고 있다.

웅어를 즐겨 먹는 지역 역시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고양, 김포, 강화 등 한강 하구지역, 군산, 서천 등 금강 하구지역, 목포, 해남, 신안 무안 등 영산강 하구역, 그리고 밀양, 창녕, 진해, 부산 등 낙동강 하구역이다. 한강을 제외하고 웅어가 즐겨 찾던 물길은 모두 막혔다. 여기에 더해 4대강사업으로 그나마 작은 물길도 거의 작살나버렸다. 샛강마저 온전치 않다. 피해를 본 것은 사람들만이 아니다. 한강종합개발사업이 추진되기 전에는 행주나루 일대 어민들은 웅어를 잡아 아이들을 공부시켰다고 한다. 웅어 반 물 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젠 웅어의 시절이 아니다. 웅어가 살아야 할 서식처가 훼손돼 버렸는데 맛있는 웅어만 탐하는 내 꼴을 생각하니 애처롭다.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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