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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12] 세상의 모든 예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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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은지기자
  • 201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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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삶, 일상·욕망 뿌리칠 만큼 간절했나…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예술을 다루는 예술작품은 예술 본연의 무언가를 보여 주는데, 대체로 예술가의 삶을 통해 그렇게 한다. 예술이란 무엇이라고 일상의 언어로 명확히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려지는 예술가란 무언가를 추구하는 존재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집을 옮겨 가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을 거부하고 그저 예술에만 매달리는 자들, 자신만의 세계를 찾기 위해 가난 속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도 못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들이 그런 예술가다.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1919)가 대표적이다. 이 소설은 나이 마흔에 직장을 그만두고 미술의 길에 들어서 끝내 저 먼 남태평양 타히티에서 자신의 그림 세계를 완성해 내며 죽어 가는 화가 스트릭랜드를 보여 준다. 소설의 모델인 폴 고갱 자신이 주식중개인이었다가 35세에 그림을 시작했다. 어엿한 직장을 그만두고 가난뱅이 화가의 길을 밟았다니 우리로서는 그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우리는 안다. ‘달과 6펜스’가 그리는 예술가란 낭만주의가 꿈꿔 온 예술가라는 사실을 말이다.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해 가는 현실의 비속함에 갇히지 않고 인간적인 고상함을 추구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예술가에게 돌렸던 재능 곧 유일무이하고 영원한 아우라(Aura)를 가진 예술작품을 창작해 내는 타고난 재능을 추앙했던 낭만주의의 꿈이자, 소망이요, 그 결과라는 것을 말이다.


돈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나만의 세계 찾아 끊임없이 노력
영원한 아우라를 가진 작품 창작
타고난 재능의 낭만주의 꿈 동경
죽음 무릅쓰고 아름다움 좇기도


낭만주의적인 열정이 사그라졌을 때도 예술가와 평범한 시민의 구분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토마스 만의 자전적인 중편소설 ‘토니오 크뢰거’(1903)가 잘 보여주듯이, 예술가란 여전히 시민들과는 다른 존재다. 밝고 명랑한 성품에 열심히 공부하고 가정을 이루어 행복한 삶을 사는 한스 한젠과 잉에보르크 홀름 같은 사람들, 세상을 지탱해 주는 그러한 시민들과는 다른 길을 밟지 않을 수 없는 ‘길 잃은 시민’이 예술가다. 그렇지만 토니오 크뢰거가 시민사회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가정교육에 대한 향수를 지닌 보헤미안’이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예술가’라는 점에서 시민사회에 대한 애정과 갈망 또한 없지 않은 까닭이다. 물론 예술가는 예술가로서 일반 시민과는 다르다. 10년 뒤에 토마스 만이 발표한 또 다른 예술가 소설 ‘베니스의 죽음’(1912)이 이를 보여 준다. 주인공인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는 엄격한 자기 절제와 예술에의 헌신으로 사회적으로도 명망을 얻은 성공한 작가지만, 50대에 들어 예술의 정체 상태에 빠져 있고 사신(死神)의 환영을 본다. 이러한 상태에서 베니스로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만난 미소년 타치오에 매혹되어 콜레라가 만연되는 상황을 무릅쓰고 체류하다 죽음에 이른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가 찾는 것, 죽음의 순간에 그가 보는 것은 소년이 아니라 그 소년으로 환기되는 아름다움 자체다.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보고자 하는 미, 그것을 위해서라면 생명도 기꺼이 던질 수 있는 아름다움과 관련해서는 고 김윤식 교수가 두어 차례 강조한 바 도스토옙스키의 주인공 스타브로긴의 꿈을 들 수 있다(아비 어미 그림 음악 바다 그리고 신·김윤식·2015). 스타브로긴은 누구인가. ‘악령’(1872)의 주인공으로서 사회의 상궤를 넘어 무언가에 이끌리듯 방탕하고 위험한 생애를 살다 자살하는 인물이다. 그가 꿈에서 본 것은 로랭의 그림 ‘아시스와 갈라테아’인데 이를 두고 그는 ‘인류의 멋진 꿈이며 위대한 망집’이라 하고 전 인류가 그것 때문에 온 정력을 다 바치고 모든 희생을 해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지향, 인류 본연의 동경이라 할 이러한 꿈꾸기를 소명으로 삼은 자들이 예술가라고 김 교수는 알려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가 되기를 보여주는 작품’을 예술을 다루는 예술의 둘째 경우로 거론해 보자. 제임스 조이스의 자전적인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6)이 바로 그것. 이 작품은 내면이 섬세한 한 소년이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동정을 버려 죄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예수회 신부의 길과 대학 진학 사이에서 고민하며 급기야 가정과 종교, 국가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두게 되는 데서 성장소설의 면모가 잘 보인다. 물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작품 말미의 스티븐 디덜러스가 한 소녀의 모습을 통해 ‘예술적인 영감으로 가득 찬 순간’ 곧 ‘에피파니(epiphany)’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듯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예술의 참된 경지가 불현듯 나타나는 이 에피파니의 순간을 그림으로써 조이스 또한 예술의 세계를 일상 현실 너머에 둔다. ‘시인 천재론’으로 특징되는 낭만주의적인 문학예술관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현실과는 다른 예술 고유의 특징을 강조하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이 이로써 분명해졌다.

이제 예술가의 모습을 넘어 예술의 특징을 보다 짙게 암시하는 작품들을 살펴보자. 현대 터키 문학의 대표자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1998)과 아카데미 프랑세즈와 콩쿠르 상의 수상자로 현대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1991)이 좋은 예가 된다.

‘내 이름은 빨강’의 배경은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이다. 세밀화를 그리는 궁정화가들이 한 명씩 살해되는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 서사를 뼈대로 하면서 중심인물들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작품의 심층적인 주제효과는 훨씬 넓고 깊다. 술탄의 명령과 화원장의 지시에 따라 전통적인 세밀화를 그려 오던 화가들이 서구로부터 전래되기 시작한 새로운 화풍 곧 원근법을 사용하는 베네치아 회화를 대하면서 겪는 혼란이 살인 사건의 원인이자 이 소설의 심층 주제다. 여기서 충돌하는 것은 신의 회화와 인간의 회화이다. 세밀화라는 이슬람의 전통 회화는 바로 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한눈에 파악하는 신의 경지에 따라 그려지기에 여기에는 원근법이 없다. 가까운 것은 크게 그리고 먼 것은 작게 그리는 원근법이란 하잘것없는 개인의 시선을 중심에 놓는 것이어서 속되지만, 궁정화가도 인간인지라 그에 끌리기 십상이다. 이러한 갈등, 신의 눈을 드러내 온 것과 인간의 시선을 앞세우는 방식의 갈등을 통해 오르한 파묵은 동서양 문화의 충돌과 더불어 예술의 본질, 예술의 의의도 환기시키고 있다.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은 아주 작고 깔끔한 경장편으로서 역사에서 잊혔던 비올라 다 감바의 명인 생트 콜롱브의 이야기를 다룬다. 왕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시골에 묻혀 살면서 악기를 개량하고 새로운 연주법을 창안하며 음악의 본질을 담는 곡을 연주하되 작곡으로 남기지도 않는 인물의 예술혼을 보여 준다. 한때 그의 제자였다가 궁정으로 나아가 지휘자의 영예까지 안게 되는 마랭 마레의 행적과 대비되면서 음악 그 자체에 헌신하는 콜롱브의 삶이 강조되고 있다. 생트 콜롱브에게 있어 음악은 ‘말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저 거기 있는 것’으로서 인간의 것도 인간을 위한 것도 아니다. 소설에는 없지만 키냐르 자신이 각본 작업에 참여한 알랭 코르노 감독의 1991년 동명의 영화에서는 이러한 음악이 ‘신의 음성’으로 지칭되고 있다.

오르한 파묵과 파스칼 키냐르가 예술에서 찾는 신이 꼭 종교의 신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일상을 넘어선 시선, 현실의 비속함을 초월한 자리, 경제 제일주의와 명리욕을 위시한 온갖 세속적인 욕망의 너머, 낭만주의의 예술가 찬미가 궁극적으로 바랐던 바 저 고상한 인간의 품격 등이 모두 신의 이름으로 감싸질 것이다. 이러한 예술의 지향을 통해 우리의 오늘을 되돌아보는 일은 비록 그 자체로 속되다 해도 다소 성스럽게 속된 것이리라. 이 ‘다소’의 폭을 뛰어오르는 일 이것이야말로, 경쟁과 투쟁으로 점철된 역사를 살아 온 인류가 온 정력을 바칠 과제가 아니겠는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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