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냉·비빔 합친 ‘섞음냉면’·부산식 새 버전 ‘반월당밀면’·소바식 ‘냉교면’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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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4   |  발행일 2019-06-14 제35면   |  수정 2019-06-14
[이춘호 기자의 푸드로드] 대구상륙 팔도 냉면
‘온채당 속초코다리냉면’
단포식당 냉교면
20190614
‘박군자 섞음진주냉면’

박군자 진주냉면
자극적이지 않은 진주식 스타일 대구식 변형
쫄면같이 굵은 면발, 1주일 이상 숙성한 육수


북구 동천동 칠곡3지구에서 조용하게 붐을 일으키고 있는 박군자 진주냉면. 6년전 대구에 상륙했는데 진주냉면이 자극적 맛을 좋아하는 대구에 입성해 어떤 식으로 맛이 변형됐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집은 진주식 비빔면을 ‘섞음냉면’이란 방식으로 응용해 내놓았다. 기존의 물냉면만으로 승부수를 내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렇게 자극적이지 않은 진주냉면. 초창기에는 토박이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렸다. 그래서 통영에서 우동과 짜장면을 통폐합해 만든 ‘우짜’처럼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한데 합친 스타일을 개발했다. 그게 대구에서 먹혀들었다. 이 집을 처음 찾는 이는 물냉면에 길들여졌다가 다음엔 비빔냉면, 마지막엔 섞음냉면으로 건너온다. 점심 직전 그 집을 찾아갔다. 정오를 조금 지난 시각, 홀은 금세 차버렸다. 모둠수육 같은 포스의 육전을 빈대떡처럼 파는 것도 인상적이다. 물냉면은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섞음면은 대구사람이 좋아할 만하게 갈무리돼 있었다.

진주냉면 앞에 3명의 이름이 붙어다닌다. 황덕이·하연옥·박군자다. 모두 한 집안 사람들이다. 진주냉면의 본질을 알기 위해선 이 가계의 얼개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91세의 황덕이 할매의 남편 하거홍(작고). 이 부부가 진주냉면의 마지막 증언자다. 둘 사이에 5남매(연규·맹규·귀옥·귀연·연옥)가 태어났다. 황덕이표 냉면은 진주 중앙시장에서 ‘부산냉면’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그 중앙시장이 화재로 전소되자 서부시장으로 이전해 ‘부산식육식당’으로 새출발을 한다. 거기서 자기만의 냉면을 팔았다. 황씨 할매를 끝까지 돌본 사람은 막내딸 연옥씨. 자연 그녀가 가업을 이어받는 형국이었다. 1999년 김영복씨가 이 집안 일에 개입한다. 잊혀가던 진주냉면을 재현해낸다. 그 과정에 김씨와 황씨 할매의 냉면이 황덕이진주냉면으로 태어난다. 그 전통이 연옥씨한테로 넘어가 하연옥진주냉면으로 굽이친다. 그런데 장남 연규씨와 결혼한 박군자씨가 자기만의 진주냉면을 독자적으로 개척해나간다. 결국 시누이의 냉면과 라이벌 사이가 된다. 박씨는 10년전부터 진주냉면 전국화에 성공한다. 현재 전국에 20개의 가맹점을 갖고 있다. 대구경북에도 가맹점 4개를 낸 상태.

박군자냉면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일단 면발이 여느 냉면보다 굵다는 사실이다. 현재 분공의 지름이 1.3㎜. 꼭 쫄면같다. 면발의 배합비율도 특색이 있다. 메밀 50%, 고구마전분 30%, 거기에 밀가루 20%를 섞는다.

육수는 사골육수, 양지머리 육수, 그리고 해물육수를 일정한 비율로 섞는다. 해물육수의 경우 멸치 대신 디포리를 사용한다. 이밖에 마른 오징어, 홍합, 다시마, 황태, 표고버섯 등 12가지 재료를 사용한다. 한번 육수를 만들 땐 종일 곰국 끓이듯 고아내고 식은 걸 1주일 이상 숙성시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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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당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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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당밀면 정현 오너셰프

반월당밀면
대구 잔치국수문화 ‘소면 같은 밀면’ 승부수
사골·채소·한약재 세번 달인 농축육수 ‘짠육’


작년 3월 대구 동구 신천동 상공회의소 옆 골목에 문을 연 반월당밀면. 경주 토박이인 정현 오너셰프(35)가 운영한다. 그는 모르긴 해도 향후 대구 냉면계에 다크호스가 될 소양을 갖고 있다. 일본 본토 식당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요리에 임하는 자세가 칼 같다. 그래서 믿음이 갔다. 부모도 오래 식당을 경영했다. 현재도 성건동에서 완도참전복집을 경영하고 있다. 그 이전에는 화성숯불갈비란 고깃집도 열었다.

그는 전복요리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다. 엄청 더운 대구. 여러 종류의 냉면이 있지만 그는 부산밀면의 새로운 버전을 대구에서 선보이고 싶었다. 김영복씨는 “밀면은 평양냉면의 부산 버전이 아니라 경남 지방에서 즐겨 해먹던 ‘밀국수 냉면’이 원형”이라고 주장한다. 멸치 육수가 사용되니 언뜻 잔치국수의 원형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식품사학자들은 북한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이 품귀현상을 보이는 메밀가루 대신 미국발 원조 밀가루가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워 밀가루에 전분을 가미한 밀가루냉면을 만들었는데 그게 밀면의 원형이라고 주장한다. 이렇든 저렇든 밀면은 부산경남권 냉면임은 분명하다.

아무튼 정 셰프는 대구는 밀면의 불모지이지만 대구의 잔치국수 문화가 오랜 전통도 있기 때문에 언뜻 소면 같은 밀면을 잘만 만들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잔치국수와 밀면은 다르다. 잔치국수는 건면을 사용하지만 밀면은 생면을 사용한다. 그는 현재 대구에서 나름 인지도를 갖고 있는 한버지기밀면, 가야밀면, 가온밀면 등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상호를 정하기 위해 대구의 향토사를 조금 엿봤다. 대구의 첫 백화점격인 반월당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의미가 있는 반월당에 밀면을 결부시켰다. 소면은 졸깃하지 않지만 밀면은 졸깃해야 된다. 그는 부산밀면의 원조인 ‘내호냉면’처럼 밀가루에 전분을 섞지 않았다. 원래 밀면은 밀가루에 전분이 들어가는 게 원칙인데 그는 그 원칙을 어겼다.

밀가루만으로 냉면의 찰기를 얻어내려면 반죽에 목숨을 걸어야 된다. 일반 찬물로 반죽을 한다. 따뜻한 물에 반죽하면 발효가 돼 면발이 물러버릴 우려가 있다. 하루 기본 두 포를 반죽한다. 반죽기에서 너무 오래 머물면 열이 발생하고 그럼 면이 쉬 지쳐버린다. 10분 내에 매듭지어야 한다. 반죽이 끝나면 열기를 제거한 뒤 냉장고에 보관한다. 분창을 통과한 면발은 찬물로 잘 씻어줘야 한다. 걸레를 빨듯 빡세게 비비는 건 면에 스며나온 전분을 말끔하게 제거하기 위해서다. 덜 삶고 식히면 면발이 플라스틱 같이 딱딱한 느낌이 감돈다. 그럼 식감이 확 준다.

다음은 반월당만의 육수빼기 절차. 여긴 냉면과 다른 방식으로 육수를 추출한다. 그는 1차, 2차, 3차의 달임 과정과 섞임 과정이 있는 진액 같은 농축 육수를 ‘짠육’이라고 말한다. 사골, 채소류, 10가지 한약재 등이 여기만의 방식으로 결합된다. 그가 창고 안에 보관 중인 짠육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이걸 생수에 적당하게 희석해 사용한다. 면발이 다른 밀면과 달리 노란빛이 감돈다. 그건 치자물을 들였기 때문이다.

맛을 봤다. 포스는 여느 소면 같은데 먹어보니 찰기가 장난이 아니다. 어떻게 밀가루만으로 이런 졸깃함을 연출했는지 그 기술력이 놀랍다. 육수는 수미담의 육수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중심이 서 있다. 오랜만에 대구에서도 제대로 된 밀면집 하나를 갖게 된 것 같았다. 매년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밀면을 팔지 않고 쉰다. 그때는 경주로 가서 전복 장사에 몰두한다. 밀면의 질감을 닮은, 물에 불은 그의 손바닥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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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포식당 냉교면’

단포식당 냉교면
양지머리로 1년 6개월만에 완성한 육수 비법
감칠맛에 적당히 새콤한 맛, 참나물 고명 올려


지역의 첫 개화기 음식 전문점인 남구 대명 9동 단포식당. 난 거기서 아주 독특한 소바스타일의 냉면 하나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건 바로 ‘냉교면’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세종의 메밀사랑 구절이 나온다. 비대한 거구였던 세종은 고기마니아였다. 툭하면 집현전 학사와 야식 고기파티를 즐겼다. 당연히 복부비만이 심해질 수밖에. 궁중 어의들이 다이어트하길 간청한다. 그렇게 해서 추천된 메뉴가 메밀국수였다. 한우 양지머리를 조선간장으로 잘 끓여 만든 육수에 동치미 등 채수를 섞어 국수를 먹었다.

일본에서는 가쓰오부시 육수를 즐기지만 한국은 양지머리육수가 보편적이다. 단포식당도 그런 그림으로 냉교면을 개발했다. 일단 양지머리, 조선간장, 채소가 절묘하게 섞이는 방법을 모색했다. 처음에는 구성방식이 잘못돼 조선간장이 섞이면서 소금결정체를 피워물었다. 맛이 안났다. 충청도의 모처 간장냉면 전문점을 찾아갔다. 결국 육수를 뽑는 법을 찾게 됐다. 너무 강한 불로는 좋은 육수를 추출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곰탕 같은 건 센불이지만 소스를 만들 때는 뭉근한 불이어야 한다. 하루 반나절을 뚜껑 열고 끓인다. 식은 다음 양지머리는 건져내고 그 육수는 냉장고에 저장한다. 그때 형성되는 굳은 기름은 제거한다.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그 육수를 면포에 붓는다. 그 다음 무, 파, 청양고추 등을 넣고 채수를 뽑는다. 그걸 식혀 기존 육수와 적당 비율로 섞어 최종 육수를 만들어 7일 이상 숙성해야 완성. 무려 1년6개월 만에 냉교면 육수비법을 완성하게 된다. 짠맛이 잘 익어야 감치는 맛으로 넘어간다. 그것으로 끝나면 요즘 젊은 층은 맛이 밍밍하다고 볼 것이다. 그래서 감칠맛 끝에 새콤함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 강도가 세면 새콤달콤으로 무게 중심이 무너진다. 새콤함은 2선에 머물러야 된다. 단포식당은 덜 달고 덜 새콤한 걸 원한다. 초창기에는 간이 세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그건 간장육수 때문이다. 실제 염도계로 측정해 보면 센 간은 아니다. 면발용 메밀 비율은 33%. 면발은 박군자진주냉면만큼 굵다. 참나물을 고명으로 올린 게 인상적이다. 냉교면은 메밀소바 버전의 신개념 냉면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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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채당 속초코다리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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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수성못점 함흥식 물냉면’

메밀 대신 고구마전분 ‘속초코다리냉면’
사골육수와 동치미 배합 ‘개정식당냉면’


요즘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업소 중 한 곳이 파군재 삼거리 도로변에 있는 온채당의 히트메뉴인 속초코다리냉면, 그리고 수성못 개정식당의 냉면이다. 이 두 냉면은 메밀을 사용하지 않고 함흥냉면처럼 고구마전분만으로 면발을 뽑아낸다. 다들 자가제면실을 갖추고 있다. 경남 진해에서 론칭된 프랜차이즈인 온채당은 대구에 두 군데(달서구 상인점, 팔공이시아점) 가맹점을 두고 있다. 여긴 강원도 속초에서 공수된 코다리무침을 고명으로 올리고 깨소금을 푸짐하게 뿌려주는 게 특징이다. 개정식당 함흥식 물냉면은 사골육수와 진국에 가까운 동치미육수를 잘 배합해서 그런지 대구 냉면 육수 중 가장 흰 게 특징이다. 꼭 곰탕 국물 같았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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