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고흥군의 작은 보물섬 쑥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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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4   |  발행일 2019-06-14 제37면   |  수정 2019-06-14
유월의 그리움 따라 ‘쑥향’ 가득한 낙원길 걸으니 마음의 상처 아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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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정원이라 불리는 별정원의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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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나로도와 쑥섬을 왕복하는 쑥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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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에 있는 별모양의 아름다운 꽃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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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의 동백나무길. 수령 200∼300년된 동백나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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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의 운치를 더해주는 사랑의 돌담길.

유월 바다임에도 갯내가 없다. 아마 쑥섬의 쑥 냄새 때문일 터였다. 섬으로 둘러싸인 바다는 사파이어 빛으로 반짝이며 잔잔하고 아름답다. 봉호(蓬湖)라고 부르기도 하는 바다는 말 그대로 쑥의 호수다. 그 섬과 바다풍경이 얼마나 수려한지, 감탄을 금치 못한다. 우주에 떠 있는 기적의 행성 푸른 지구. 물과 헤아릴 수 없는 생명으로 가득 찬 지구. 그 아름다운 한곳에서 나는 지금 나를 꺼내놓고 해바라기를 한다.

인간은 어떻게 진화되었을까. 인간은 네 발로 걷다가 두 발로 걸은 것이 아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두 발로 걸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것은 머리보다 두 발이었다. 직립원인이 인간의 영적 유전자다. 그 두 발로 지금 쑥섬을 걷는다. 두발과 쑥은 힐링이고, 쑥섬은 힐링의 성지다.

쑥은 삼국유사 단군신화에도 등장한다. 쑥은 여성의 몸을 따뜻하게 하는 힘이 있다. 여성 병에는 쑥이 명약이다. 그뿐 아니라 소화기 및 피부병, 냉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쑥은 우리나라가 원산지이고, 식용 및 약용으로 쓰인다. 보릿고개를 넘기 전 봄나물을 캐서 허기를 채우던 시절, 쑥은 단연 최고의 먹거리이며 약이었다. 쑥떡도, 쑥 버무리도, 쑥 된장국의 향기로운 맛도 일품이고 단전에 뜸을 들이는 복식호흡의 약으로도 애용됐다. 그 쑥이 엉망진창으로 자라는 쑥섬에서, 쑥의 신화를 되새김하면서 얼마나 쑥스러운지.

갈매기 카페를 지나고 울창한 난대 원시림으로 들어간다. 무언가 비가 내리는 듯 습기가 느껴지는 숲은 흠뻑 적고 싶은 갈증이 있었다. 어디선가 솔솔 난대림의 비린내가 코를 미었다. 육박나무를 본다. 해병대 얼룩무늬를 닮아 일명 해병대 나무다. 수령이 100년 넘는다는데도 별로 크지도 않다. 후박나무도 있다. 여인의 가슴도 닮았다는 후박나무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비너스 나무라고도 한다. 이 숲에서는 헛된 말들이 홀연 사라지고, 사랑이라는 한마디가 진한 녹색의 성경이 된다. 유월의 그리움따라 가파른 길 주섬주섬 오르다보면 갑자기 사방이 확 트인 환희의 언덕에 닿는다. 단애의 절벽으로 된 무인도가 보인다. 저 절벽 아래 쑥섬 인어가 살고 있다고 한다. 행운을 준다는 쑥섬 큰 바위 얼굴도 보인다. 태초의 말씀으로 생명을 만든 바다가 눈썹에서 그리메를 그리고, 멀리 더 멀리 아득한 물빛 사이로 자욱한 섬, 거문도, 소거문도, 손죽도, 초도가 보인다. 저런 환몽의 섬은 바로 영혼이다. 저런 섬에서 마음의 상처가 나을 때까지 몇 달만 살자.

잔잔한 바다에 둘러싸인 힐링의 성지
사계절 400여종 꽃구경 바다위 정원
하늘만 보이는 터에 이름모를 꽃 만발
별정원 지나 문학정원·인연정원 닿아

무병·풍어 비는‘당제’, 동물 울음 부정
개·돼지·닭은 없고 고양이만 사는 섬

황홀한 일몰 감상하는 명소 ‘무인등대’
300년 동백나무 길 지나며 춤사위 절로
잠들어 있는 정신에 한번 더 한 ‘쑥 뜸’


아무리 다잡아도 잡초처럼 올라오는 마음의 상처는 그 뿌리가 가뭇없는 절망이다.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 열두 편을, 중중모리로 휘젓는 언덕, 그 환희의 끝은 언제나 심각한 절망이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저승사자의 초혼곡이다. 저 환희의 블랙 홀에 빨려들기 전에 나는 현실의 언덕, 환희의 언덕으로 돌아온다. 그렇다. 지금 이외에는 무엇이 있나. 과거 미래는 현재를 회피하는 무의미다. 이제는 환상을 지금 여기에 가져와야 한다. 과거와 미래의 환상을 걸러서, 현실의 환희로 바꾸어야 한다. 그게 환희의 언덕이다.

몬당길, 일명 수평선길로 접어든다. 그 유월의 녹음에 눈을 씻고 보는 바다와 섬은 리드미컬하고 아찔한 영탄이다. 곧 이어 바다위의 정원이라 부르는 별정원에 닿는다. 400여 종의 꽃이 사계절 시나브로 피고 진다. 칡넝쿨 뒤덮인 곳을 개간하여, 별모양으로 디자인해 정원을 만들었다. 김상현, 고채훈씨 부부의 땀과 노력의 결정체다. 이곳은 KBS 인간극장 ‘그 섬엔 비밀 정원이 있다’로 소개되었다. 사방이 탁 트여 섬과 바다, 하늘만이 보이는 터에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하였다. 그야말로 바다위의 정원이자 하늘의 정원이다. 여긴 섬이고, 꽃이 피고 지고하며 이어지는 시간의 고리에는 항상 별과 바람이 패물처럼 찰랑거리며, 아픔을 기쁨의 소리로 만들었다. 어느 누가, 별들이 떨어져 꽃이 되고, 6월의 바람은 나뭇잎의 사랑이라고 했나. 저 밤하늘의 별들을 헤다가 길을 잃고 은하수 타고 흐르는 밤의 여정이 끝나면, 아침은 늘 꽃밭에서 기지개를 켰다. 그렇게 보면 곰비임비 꽃은 별이고 별이 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별정원은 나의 마음에 또 다른 낮별로 떠 있을 것이다. 미주알고주알 사진을 찍는다. 이곳도 곧 떠나야 하지만, 지나고 나면 모든 게 은빛 금빛 물결로 흐르는 그리움일 것이다. 여기서 곧장 선착장으로 가려면 수국길을 따라 가면 된다. 그러나 나는 트레킹로드로 간다.

별 정원을 지나니 문학정원, 인연정원이다. 문학정원은 꽃에 관한 문학작품을 소개한 곳이다. 이런 글귀도 보인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섬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 싶었다.’ (김훈의 ‘칼의 노래’ 중). ‘웃어도 예쁘고 웃지 않아도 예쁘고, 눈을 감아도 예쁘다. 오늘은 네가 꽃이다.’ (나태주의 ‘오늘의 꽃’ 중). ‘나는 이제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벽을 타고 오르는 꽃이 될 뿐이다.’(정호승의 ‘벽’ 중). 꽃의 글을 적은 나무판이 그 외에도 많았다. 그러나 숱한 명구들이 까만 물결로 나의 등을 두드려 길을 재촉한다. 돌 위에 자라는 팽나무 석부작과 여자 산포 바위를 구경한다. 산포는 쑥섬 말로 ‘경치가 좋아 잠시 쉬는 것’을 말한다. 정상인 남자 산포바위로 간다. 장방형 나무 한판에 쑥섬정상(83m), 에베레스트(8천848m), 백두산(2천759m), 한라산(1천950m)이라 적혀있다. 이곳에 적힌 산의 정상은 산의 영혼이 깃든 곳이다. 마찬가지로 쑥섬 정상도 제의의 영성이 깃들어 있다고 느껴진다.

이제 쑥섬의 설화에 대해 말 할 때가 되었다. 쑥섬에는 무덤이 없다. 그리고 개, 소, 돼지, 닭, 오리가 없고 고양이만 살고 있다. 국내 유일의 고양이 섬이라 알려져 있다. 쑥섬에 고양이만 남은 것은 예전부터 지내온 당제(堂祭) 때문이다. 400년 당 숲(난대 원시림)에서 무병과 풍어를 비는 당제가 있었다. 당제를 지낼 때 개, 소, 돼지, 닭, 오리 등이 울면 부정을 탄다고 고양이만 길렀다고 한다. 그나저나 쑥섬은 신령스러운 섬이고 신과 접신하는 비의의 섬이다. 걷고 있는 나의 시선을 줄곧 사로잡는, 내나로도에서 사양도를 잇는 사양교의 배경이 정녕 한 폭의 여름 수채화다. 옛날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신선대도 지나고. 드디어 성화등대에 도착한다. 2000년 초에 만들어진 이 무인등대는 거문도와 완도 등지를 다니는 선박들의 길잡이를 한다. 등대 아래 해안은 절경이고, 황홀한 일몰을 감상 할 수 있는 명소다. 별칭은 ‘쑥섬 일몰 명소’이기도 하다. 되돌아 나와 선착장 길로 다소 걸으면 우끄터리 쌍 우물을 만난다. 쑥섬 큰 애기들이 정보를 교환하던 곳이라는 안내 글이 인상 깊다. 이제 수령 200년 내지 300년 된 동백나무 길을 지난다. 한 해에 세 번 핀다는 동백은 싱그럽고 탐방객의 두발에 춤사위 한가락 빚게 한다. 그 동백 그늘 아래서 뒤꿈치의 미학을 펼쳐본다. 그냥 그렇게 한번 해본다. 자반뒤집기도 구슬돌이도 마냥 해본다. 삶의 한과 비애, 슬픔과 기쁨을 나타내는 이중구조의 춤사위, 흥으로 덩실덩실 추어본다.

마을에 도착하고 쑥향 가득한 돌담길 걸으며 잠들어 있는 정신을 한 번 더 쑥 뜸해 본다. 그 세월이 아파서, 속으로 흘린 눈물이 모여 호수가 된 봉호의 앞바다, 쑥섬의 쑥 향기가 한편의 시로 엉긴다.

‘누임요. 아부님 어무님 모시고 동생하고 누부캉 모도 무궁한 일월을 한테 모여 살구로 고향 저승으로 구만 갈랍니더. 살다가 와 그래 가고 싶노 몰라. 할마이는 지가 먼저 갔어예. 빙싱이메츠로.’ (이설주의 ‘내 고향은 저승’ 중). 이설주는 쑥떡 같은 시인이었다. 나는 그 쑥섬의 선착장에서 여객선을 기다리며 이 시를 왜 자꾸 되뇌었는지 모른다. 공연히 빙싱이메츠로. <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 김석 대우여행사 이사

☞여행정보

▶트레킹 코스 : 쑥섬 선착장 - 갈매기 카페 - 난대 원시림 - 환희의언덕 -몬당길 - 꽃정원 - 쑥섬 정상 - 신선대 - 동백길 - 사랑의 돌담길 - 선착장

▶문의: 쑥섬(애도) 마을 폰(010-2504-1991, 010-8672-9222)

▶내비 주소 : 전남 고흥군 봉래면 신금리 나로도항 (061) 830-5608

▶주위 볼거리 : 팔영산 팔봉, 소록도, 고흥 우주 발사전망대, 고흥 우주 천문과학관, 능가사, 해창만 오토캠핑장, 발포역사 전시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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