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메리 셸리 :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2017·영국·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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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1   |  발행일 2019-06-21 제42면   |  수정 2019-06-21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의 삶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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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영화를 보다가 실제 있었던 사실임을 알고 놀랄 때가 있다. 1816년 스위스, 낭만파 시인으로 유명한 퍼시 셸리는 연인 메리와 함께 역시 낭만파 시인의 한 사람인 바이런을 방문하게 된다. 당시 날씨 탓으로 바깥 활동이 여의치 않자, 바이런이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써보자”는 제안을 한다. 이때 메리는 죽은 개구리를 전기충격으로 움직이는 쇼를 떠올리며, 짤막한 이야기를 쓰게 된다. 이것이 1년 뒤 장편소설로 완성시킨 ‘프랑켄슈타인’인데, 오늘날 SF소설의 효시가 된다. 당시 함께 있었던 바이런의 주치의 존 폴리도리는 후에 ‘드라큘라’로 발전하게 되는 ‘뱀파이어’ 이야기를 쓰게 된다. 이런 전설같은 이야기가 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다.

메리가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은 수많은 영화와 연극, 뮤지컬로 재탄생되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31년 작 제임스 웨일 감독의 영화 ‘프랑켄슈타인’이다. 보리스 칼로프가 괴물로 나온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머리에 못이 박힌 괴물, 전형적인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을 기억하게 된다. 사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한 박사의 이름이지만, 이때부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대명사가 된다.

영화의 주인공 메리 셸리는 최초의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근대적 아나키즘의 창시자라는 윌리엄 고드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규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고, 독서를 통해 학문을 쌓은 그녀는 아버지의 제자로 들어온 퍼시 셸리와 사랑에 빠진다. 이미 부인과 자식이 있던 셸리. 그들의 사랑의 도피 행각은 세간에 충격을 안기고, 냉대를 받기에 이른다. 이어 퍼시 셸리의 방탕한 생활과 첫 아이를 잃은 슬픔, 그리고 셸리 부인의 자살 등은 메리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긴다. 하지만 이 모든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깊은 감동을 안긴다. 영화에서 그녀는 “고통에 맞서는 법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았다”며 “지금까지 한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어.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라고 말한다.

감독이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영화로 유명한 ‘와즈다’의 하이파 알 만수르라는 사실이 상징적이다. 사우디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나, 19세기 영국에서 여성으로서 책을 쓰는 것이 닮았다고 감독은 말한다. 둘 다 사회적 편견을 깨고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상실로 인한 괴로움을 예술 창작으로 승화시킨 메리 셸리에게서 보는 이의 내면에 간직된 영웅적 면모를 보기 바란다”고 말한다. “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라”던 메리 아버지의 가르침이 결국 그녀를 작가로 탄생시킨 셈이다.

부인의 죽음 이후 메리와 결혼한 퍼시 셸리는 29세에 요트 사고로 숨을 거둔다. 당시로는 드물게 화장을 했는데, 그의 심장만은 끝까지 불타지 않고 남아있더라는 일화가 있다. 메리가 죽은 뒤 밝혀진 이야기로, 그녀는 남편의 심장을 비단주머니에 넣어 간직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수많은 구애에도 재혼하지 않고 아들 하나를 키우며 홀로 살았다. 퍼시 셸리의 묘비명 또한 유명한데, 라틴어로 ‘Cor Cordium’이라고 쓰였으며, 그 뜻은 ‘마음의 마음’이다. ‘마음 속 가장 깊숙한 마음’이랄까. 이상적인 것을 동경하고, 자유를 갈망했던 낭만주의자다운 묘비명이라 하겠다.

저 유명한 ‘서풍의 노래’에서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라는 희망의 시로 알려진 퍼시 셸리. 그는 또 다른 시 ‘종달새에게’에서 “우리는 앞을 보고 또 뒤를 본다. 그러나 찾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라 노래했다. 낭만주의자란 이 땅에 없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가장 고독한 인간들인지도 모른다. 이런 퍼시 셸리를 끝까지 사랑했던 메리 셸리야말로 이상적인 낭만주의자로서의 삶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았다고 하겠다. 영화는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었던, 당당한 여인 메리 셸리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특히 메리 셸리 역을 맡은 배우 엘르 패닝의 매력이 영화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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