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글로벌 한국어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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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03   |  발행일 2019-07-03 제30면   |  수정 2019-07-03
한국어 학습수요는 급증세
기계어와 호환하기도 쉬워
세계인이 함께 쓰기 위해선
학계와 정부가 머리 맞대야
문화·경제의 새로운 꽃 활짝
[수요칼럼] 글로벌 한국어를 만들자
지현배 동국대 파라미타칼리지 교수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이 손을 잡은 모습이 전파를 탔다. G20 정상회의의 이슈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판문점 소식에 묻혀 버렸다. 역사책에 나올 장면이라는 평이 과장이 아님을 모두가 잘 안다. 지구상에서 군사적 긴장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예측 불가능한 지도자의 트위터 제안이 또 한명의 베일에 싸인 지도자의 화답으로 이루어진 정상 회담은 그래서 경호도, 의전도 사전 준비 없이 실전으로 행해진 진기한 사례로 남았다.

다른 나라에 ‘판문점’ ‘도보다리’ ‘자유의 집’이 어떤 단어 혹은 어떤 표기로 전해졌을까. 세계 여러 언어권의 표기를 알 수 없지만, 참고로 구글의 번역기에 이들을 입력하면 영어로는 각각 다음과 같이 표기된다. ‘Panmunjom’ ‘Walk Bridge’ ‘House of Freedom’. 판문점은 소리대로 표기됐고, 나머지는 뜻을 번역해서 표기된 형태다. 네이버 파파고는 ‘Panmunjeom’ ‘Doddori’ ‘House of Freedom’으로 나온다. ‘Panmunjeom’은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랐고, ‘Doddori’는 생뚱맞다.

전세계에 한국어 학습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유학 목적의 공부나 취업을 위한 한국어 학습자들이 동아시아 전역에서 늘어나고 있다. 우리 정부 정책이 이를 유도하는 측면도 있다.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 케이팝을 원어로 이해하려는 수요도 한국어학습 수요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까지 영역이 확장되고, 북미나 유럽까지 한국어 열기는 확산되고 있다. 한류나 최근의 비티에스(방탄소년단)도 그것에 일조하였다.

한글은 한국어 표기를 위해 창제되었지만 문자로서의 효능은 세계 으뜸이다. 가독성이 뛰어나고 익히기 어렵지 않다는 점도 장점이다. 다양한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로서 손색없을 뿐만 아니라 ‘●’ 등과 같은 소리가 있다면, 이런 소리마저 표기할 수 있다. 한글은 그것의 소리 값이 하나이고 조합에 일관성이 있어 기계어와의 호환에서도 유리하다. 일본어나 중국어 등 뜻글자를 전자어로 입력하는 과정에서도 현재 사용되고 있는 영어 알파벳보다 효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훈민정음 해례에 적힌 한글 창제 당시의 핵심어는 ‘누구나’ ‘쉽게’였다. 당시 조선의 백성이면 누구나, 쉽게 익혀서 문자 생활이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의 바탕에는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 있겠으나, 오늘날로 보자면 그것은 정보화 사회를 구축하는 길이었다. 문자를 통해 길러지는 국민의 문해력은 정보의 공유와 확산이라는, 오늘날로 보자면 인터넷의 사용, 에스엔에스(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세종 시대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네이버 카페나 카카오톡 버전이 구현되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라는 명제는 세종 시기에는 ‘한글’ 창제였다면, 오늘날은 ‘글로벌 한국어’의 제정이 될 수 있다. 백성이 쉽게 익혀서 자신의 뜻을 펼 수 있게 한 것처럼, 세계 시민 누구나가 쉽게 익힐 수 있는 한국어 방언을 만드는 것이 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만들어 국어 문법의 기초를 세운 것처럼, 교육과 행정의 편의를 위해 가상의 언어인 ‘표준어’를 제정한 것과 같은 이치로 글로벌 한국어를 제정할 수 있다.

가칭 ‘세계말로서의 한국어’는 한국말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유학 수요는 한국어 화자들이 일상에서 혹은 전문 분야에서 사용하는 수준의 한국어 능력을 갖춰야 하므로 이의 대상이 아니다. 간결한 문법 구조, 즐겨 쓰는 어휘, 일상에서의 상황을 토대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표준 한국어 제정을 위해 학계와 정부가 머리를 맞댈 것을 제안한다. 세계인이 함께 쓰는 한국어의 길이 열린다면, 그를 통해서 문화도 경제도 정치도 새로운 꽃을 피울 수 있다.지현배 동국대 파라미타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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