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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14] 이광수와 가야마 미쓰로, 그리고 약산과 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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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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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존치 vs 폐지’ 그들은 왜 대립하나

진보는 약산을 유공자로 추대하자면서 미당문학상 폐지 주장

보수는 반대 입장…서로 다른 정치이념과 일관 없는 의식 탓

문인의 역사적 과오로 작품·업적 평가하거나 무시해선 안돼

여러 나라에서 온 문인들이 가득 찬 극장. 피부가 얇고 표정이 단정하여 깎은 듯한 인상의 작가가 연단에 올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 세계에 자비를 설파한 성자는 석가이며 공자입니다. 하지만 그 자비를 진정으로 행하신 분은 천황 한 분을 제외하고는 없노라 믿고 있습니다. 일본인은 자비를 행하시는 천황을, 신명을 다해서 받드는 사명을 안고 있습니다. 그것이 일본인의 생활 목표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본인에게 개인주의는 없습니다. 개인의 인생 목표 자체가 없습니다. 인생 목표를 갖고 있는 분은 천황 한 분뿐이십니다. 일본인은 그렇게 믿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석가의 공적에 통하고 공자의 인 사상의 극치라 믿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천황에게 바치는 것이 일본정신입니다.”(곽형덕 역, ‘대동아문학자대회 회의록’, 소명출판, 2019, 40쪽)

이것은 무엇인가. 천황제 파시즘을 주장하는 논리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천황에게 자신을 전부 바치는 것 외에는 어떠한 목표도 갖지 않으며, 천황만이 인생 목표를 가진다고 믿고 자신을 완전히 죽이는 사회, 곧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전체주의 파시즘을 설파하고 있다. 석가와 공자까지 끌어들여 천황을 신격화하는 논리를 펼친 51세 연사의 이름은 가야마 미쓰로이다. ‘일본·조선’ 대표의 한 명인 이 연사를 의장은 “이 분은 전에는 이광수라 불렸던 분입니다”라고 소개한다.(39쪽)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문학평론가>
그렇다. 위의 연사는 ‘무정’(1917년)을 쓴 그 이광수다. 1919년 동경에서 선포된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관여한 뒤 ‘독립신문’의 사장 겸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1920년 흥사단에 입단했던 춘원 이광수다. 193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춘원은 민족 계몽에 앞장선 민족 지도자이자,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조선일보 부사장을 역임한 언론인이며, 흥사단의 국내 단체인 수양동우회의 실질적 책임자였다.

이렇게 민족계몽운동의 지도자이자 청년의 우상이었던 춘원은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어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재판 중이던 1938년에 전향을 하였다. 1939년 조선문인협회 회장으로서 황민화운동을 시작하여, 창씨개명을 행하고, 임전대책협의회, 조선임전보국단, 조선문인보국회, 조선언론보국회 등 여러 단체와 행사의 주도자로서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을 지지, 옹호하였다. 앞의 연설은 일본 도쿄의 제국극장에서 벌어진 제1차 대동아문학자대회에서 행한 것이다. 1942년 11월3일의 일이다. 이 연설의 허두에서 그는 ‘동아정신은 진리 그 자체’이고 대동아정신은 ‘수립되는 것이 아니라 발현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대회 내내 다른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만큼 춘원의 연설은 갈고 다듬은 자기 생각을 드러낸 것이어서,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런 연설을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러한 이광수의 행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춘원 스스로는 광복 후의 글 ‘나의 고백’에서 “내가 천황을 말하고 내선일체를 말하는 것은 오직 조선 민족을 위한 것이다”(이광수전집 7, 우신사, 1979, 275쪽)라고 밝힌 바 있다. 물론 그것은 변명이다. 그가 나름의 논리를 갖추어 자신이 친일 행보를 보이게 된 사정을 해명하고는 있지만, 앞에서도 본 대로 그의 친일은 의식적으로 행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독립과 더불어 1948년 10월에 구성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이승만정권에 의해 와해되면서 춘원 또한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그의 친일 행적은 역사에 새겨져 있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2009년)가 그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춘원의 역사적 과오가 그가 친일 행위 이전에 보였던 민족운동가로서의 행적과 문인으로서의 업적을 지우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또한 엄연한 역사로서 온전히 기록되고 제대로 평가되어야 한다.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 청사에 춘원이 찍힌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여러 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실려 있으며, 2016년에 동서문화사에 의해 춘원문학상이 제정된 것 모두 이러한 사정에 따른다. 이렇게 말년의 친일 행위와는 별개로, 민족주의자이자 계몽주의자로서의 춘원,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로서의 이광수를 기리는 것은 필요하고 또 올바른 일이다.

정치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각 부문이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고, 과거에 대한 역사적 인식의 올바름이 현재와 미래의 삶을 구축하는 데 긴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의 한 부문이 다른 모든 부문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특정 시점의 행위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그 이전의 모든 행적을 무화해서도 안 되고, 역사의 평가가 다른 분야의 평가를 덮어 버려도 안 된다. 후대의 이점에 편안히 기댄 채 한 가지 기준으로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재단하려 하지 않는 한, 이러한 사정이 무시되어서는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까닭이다. 새로운 독단에 따른 새로운 전체주의가 그것이다.

새삼 춘원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얼마 전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에서 언급된 약산 김원봉에 대한 평가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운 까닭이다. 더불어 미당 문학상과 관련해서 문학계가 혼란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약산이 누구인가. “항시 민중과 함께 생각하고, 또 행동하는 사람”(박태원, ‘약산과 의열단’, 깊은샘, 2000, 205쪽)으로서 식민지 시대에 일제에 무력으로 맞서는 투쟁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의 하나다. 1898년 경남 밀양 출신인 김원봉은 1919년 불과 22세의 나이로 서간도 길림성에서 무정부주의 투쟁 단체 의열단을 조직하여 식민지 지배 세력에 타격을 가하고 친일 분자들을 응징하였다. 이후 조선의용대를 창설하여 이끌다가 임시정부와 손을 잡아 광복군 부사령관과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냈다. 이렇게 ‘적극적인 독립운동 공적’을 이루었지만 약산은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1948년 남북협상 때 북한에 갔다가 거기 머물러 국가검열상,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의 고위직을 역임한 까닭이다.

약산이 독립유공자로 기려지지 못한 것은 월북 이후의 행적으로 식민지 시대의 공적을 지운 탓이다. 춘원의 경우에 빗대어 볼 때 잘못임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의식의 폭이 좀 더 넓어지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 그러리라고 마냥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정은 동일한데 반대의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미당 서정주를 둘러싼 논란이 그것이다.

서정주의 문학적 공적은 이광수에 못지않아 일찍이 2001년에 중앙일보사에서 미당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이 상은 만들어질 때부터 미당의 친일, 친독재 행적을 문제 삼는 반대에 부딪혔고, 근래 들어서는 폐지해야 하는 친일문학상으로 지목되어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폐지론자들의 주장은, 문학과 삶은 나란히 가는 것이므로 일제에 협력하고 독재에 아부한 문인의 작품이 훌륭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또한 잘못이다. 이렇게 보면 나치에 협력했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크누트 함순 같은 경우를 들지 않더라도, 신분제 사회에서 나온 지배계급의 모든 예술 또한 그 가치를 잃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약산의 경우가 어느 시점의 행적을 가지고 그 이전의 공적을 무시한다면, 미당의 경우는 한 부문의 행적으로 다른 부문의 업적을 무시한다. 두 경우 모두 한 가지 기준으로 모든 것을 재단한다는 점에서 똑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 더욱 문제는 약산과 미당에 대한 태도가 정치적 이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진보적인 사람들의 경우 약산을 독립 유공자로 추대하자면서 미당 문학상은 부정적으로 보고, 보수적인 사람들은 그 반대로 미당 문학상을 없애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약산의 서훈에는 부정적이다. 이 무슨 정신분열인가! 약산의 서훈에 반대한다면 친일 행적이 있는 문인들의 문학상도 부정해야 마땅하고, 미당문학상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려면 약산의 긍정적인 재평가에도 반대해야 한다. 적어도 그런 일관성은 가져야 한다. 춘원의 경우에서처럼 보다 길고 넓은 안목으로 사태를 바라보지는 못한다 해도 말이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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