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모의 배낭 메고 중미를 가다] 과테말라 왕국의 수도 ‘안티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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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05   |  발행일 2019-07-05 제37면   |  수정 2019-07-05
십자가 언덕서 마주한 활화산, 그 아래 화산폭발 상처 품은 ‘살아있는 박물관’

◆오래된 것이 더 아름다움을 알게한 안티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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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황토색과 연한 분홍색으로 칠해진 건물들은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안겨주는 안티구아는 도시 전체가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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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구아의 시가지에서 인디오 상인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들로 좌판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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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구아는 화산 폭발때 무너진 라 메르세드 교회 등으로 200년의 시공간이 뒤섞인 도시다.


파나하첼에서 동남쪽으로 3시간을 달린 버스는 금방이라도 용암과 마그마를 토해 낼 것 같은 화산 아래 화려한 색상의 키 낮은 집들 사이 골목길을 따라 정류장으로 들어선다. 멀리 그림 같은 화산이 가끔 하얀 연기를 토해내는, 아직도 타고 있는 활화산을 바라보니 새로운 세계에 와 있는 분위기다. 그 아래에 자리한 안티구아는 해발 1천500m의 지진 지대에 위치하여 1776년 화산폭발로 도시가 순식간에 잿더미에 묻힐 때까지 200여 년간 스페인 제국의 중미지역을 총괄하는 수도였다. 지금은 인구 3만5천명이 사는 작은 도시로 정식명칭은 안티구아 과테말라(Antigua Guatemala)이다.

스페인풍 옛 건축물, 대지진의 흔적
200년 시공간 섞인 고풍스러운 도시
밤이 되면 살사 추며 뜨겁게 달아올라

여행 후 한달도 안돼 일어난 화산 폭발
스페인 식민지 시대부터 23차례나 위협
현지인 생업 매달린 화산투어 아이러니

토양·화산지형 커피 재배 최적의 조건
안티구아 커피 한잔, 힘돋게 하는 마력

숙소에 짐을 풀고 로마시대 포장도로처럼 돌을 깐 고풍스러운 옛 도시의 골목을 따라 당시의 흔적들을 찾아 나선다. 안티구아는 스페인어로 ‘낡은’ ‘오래된’이라는 뜻이다. 오래된 것이 주는 아름다움을 온전히 간직한 곳이다. 안티구아의 건물들은 대부분 17~18세기에 지어졌고, 긴 세월을 살아온 도시가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다. 진한 황토색과 연한 분홍색, 빨간 벽돌의 건물들은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안겨주기도 한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유물이고 유적인 안티구아는 도시 전체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도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중앙 공원 근처에는 시청사로 쓰이는 과거 총독부 건물, 아직도 복원공사 중인 대성당, 아름다운 분수대, 중미 최초의 대학 산카를로스 대학교, 식민지 예술 박물관, 시의회 건물들이 있다. 가톨릭이 융성했던 곳답게 곳곳에 지진으로 허물어진 성당 등 200년의 시공간이 뒤섞인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일부 무너지긴 했지만 번성했던 스페인 식민시절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마주하고 있다. 대지진을 겪어서인지 안티구아에 높은 건물은 찾아볼 수가 없다.

동서로 난 길은 카예(calle), 남북으로 난 길은 아베니다(avenida)라고 불리는데 그 중심에는 아르마스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광장 그늘마다 인디오 상인들이 좌판을 펼치고 있다. 아르마스 광장 중앙에 자리한 분수의 시원한 물줄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세히 보니 여인의 가슴에서 예쁜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분수대 중에서 남자가 소변 보는 모양의 분수는 많이 봤어도 여자 가슴에서 모유수유하는 모양의 분수는 처음이라서 눈길이 오래 갔다. 스페인풍의 옛 건물이 남아 있어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도시 안티구아는 이탈리아의 폼페이를 떠오르게 한다. 이 도시의 옛 기억들을 불러일으켜 주는 듯한 낡고 검게 퇴색된 돌들이 깔린 길을 따라 고풍스럽고 고즈넉한 분위기는 여행자에게 과거로 여행하는 듯한 노스탤지어의 착각에 빠지게 한다.

다음날 눈을 뜨고 옥상에 올라 매일 변화무쌍한 화산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눈부신 태양에 눈을 지그시 감으며, 구름 사이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화산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파스텔톤의 건물이 유난히 예쁜 이곳은 늘 여행자가 끊이지 않는다. 건너편 옥상의 여행자들과도 “올라!”를 외치며 혼자 있어도 함께하는 느낌이다.

이곳의 상징이자 진정한 안티구아를 볼 수 있는 곳은 십자가 언덕(Cerro de la Cruz)이다. 시내에서 약 30분이면 오를 수 있는 십자가 언덕은 안티구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아름다운 시내 전경을 새로운 모습으로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 오르니 옛날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안티구아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언덕에 자리한 대형 십자가상 때문에 ‘십자가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격자무늬로 보이는 시가지와 주택의 구조와 타일지붕의 파랑, 빨강 또는 노랑의 색들이 200년 전의 참사와 교차되어 더욱 빛난다. 저 멀리 맞은 편 아구아 화산까지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풍경은 안티구아 여행자라면 반드시 올라야 할 필수코스로 추천한다. 그곳에 서서 안티구아 시내를 내려다보며 양팔을 벌리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힘껏 안고 싶었다.

저녁에 찾아간 레스토랑, 미친 원숭이라는 뜻의 모노로코(Mono Loco)에서 아보카도가 듬뿍 올려진 좋아하는 나초(Nacho)와 과테말라 대표 맥주, 수탉이라는 뜻의 가요(Gallo beer)를 마음껏 즐겼다. 밤이 되자 평화로운 작은 도시는 열정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든다. 세계에서 날아온 젊은이들이 모여 여행에 대해, 삶에 대해 목청을 높여 떠들어 댄다. 한쪽에는 살사를 추는 여행자들이 현란한 실력을 뽐내며 이 고풍스러운 도시는 세계의 그 어떤 도시보다도 뜨겁게 달아오른다. 낮의 평화로움이 어떻게 이런 열정을 숨기고 있을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꿈을 꾸는 듯 몽롱했다.

◆분화구 열기를 그대로 느끼는 화산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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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언덕에서 바라본 안티구아의 전경과 저 멀리 가끔 연기를 내뿜고 있는 아구아 화산의 모습.


내가 여행을 다녀온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6월3일 화산 폭발로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는 보도를 접하고 크게 놀랐다. 재난으로 많은 사람이 죽은 곳을 다녀왔다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안티구아 사람들의 생업이고, 또 다른 많은 현지 관광업 종사자들의 생활이 달린 일이니 그곳의 화산 투어는 계속될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여행자는 안티구아 화산을 떠올릴 때마다 죽은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파카야 화산(volcan de pacaya)은 과테말라시티와 안티구아 가까이에 있는 국립공원으로 과테말라에서 활동이 가장 활발한 화산이다. 첫 폭발은 무려 2만3천년 전으로 추정되며 스페인 식민지 시대부터 23차례 폭발했지만 1860년부터는 휴화산 상태였다. 그러다 1961년 3월 갑자기 폭발한 뒤로 수시로 가스나 증기를 뿜어 올리고 있다. 2010년 5월에도 엄청난 규모의 폭발을 일으켜 화산재가 과테말라시티와 공항은 물론 주변 도시 여러 곳을 뒤덮었다고 하며, 가장 최근 폭발은 2018년 6월3일로 기록되고 있다.

파카야 화산은 안티구아 외곽에 위치한 활화산으로 가이드와 함께 산을 오르는 투어를 할 수 있다. 산은 화산재 영향으로 검은 모래로 덮여 있고, 위로 오를수록 짙어지는 화산 연기가 피부로 느껴진다. 가파른 길에 화산재로 뒤덮여 있어 발이 푹푹 빠져 한 걸음을 떼기가 힘들며, 화산재 먼지가 많이 나고 마그마가 흘러내려 부서진 돌밭을 걷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산을 올랐을 때 가이드는 표면의 작은 구멍들을 가리키며 그 구멍에 손을 대면 마치 난로처럼 따뜻하고 마시멜로를 구울 정도의 열이 나온다고 한다. 활동 중인 화산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쏟아져 나온다.

화산에 접근할수록 안개가 짙어진다. 주위의 모습이 안개와 구름, 그리고 연기가 감겨서 몽환적인 화산 풍경들로 펼쳐진다. 지금 당장 화산폭발을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이곳은 살아있는 활화산이다. 실제로 며칠 전에 마그마가 살짝 분출해 용암이 관측되었다고도 한다. 화산석 사이로 뜨거운 열기가 솟아오른다. 가지고 온 나뭇가지를 넣자 금방 불이 붙는다. 파카야 화산 트레킹에는 특별한 즐길거리가 있다. 이 화산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마시멜로 구워먹기다. 가이드가 준비해 온 마시멜로를 나뭇가지에 끼운 후 화산 열기에 노릇노릇 구워먹는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산 전체는 한증막이 따로 없다.

화산 아래에서 올려다본 안개에 걷힌 분화구에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용암이 들끓을 분화구 속을 상상하며 숨을 멈춘다. 눈앞에 펼쳐진 또 다른 세상은 내가 알던 이 세상이 아니었다. 그동안 일어난 폭발로 온통 검은 흙먼지와 화산재로 뒤덮인 활화산의 숨소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정말 살아있는 화산의 한가운데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과 설렘이 가득 밀려왔다. 내려오며 파카야 화산에서 바라본 붉은 일몰 또한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여행의 향기를 진하게 하는 안티구아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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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선물을 고르는 것 역시 여행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소소한 즐거움. 풍부한 향과 맛을 지닌 안티구아 커피.

안티구아의 또 다른 매력은 이곳 특유의 커피다. 과테말라는 세계에서 품질 좋은 커피 생산국으로도 알려져 있다. 여러 생산지역 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안티구아 지역은 잦은 화산 폭발로 토양에 질소가 더해지고 강렬한 태양과 화산지형의 열대 고지대, 화산부석과 높은 일교차는 커피 재배의 최적의 조건이다.

특히 안티구아 커피는 화산의 경사면에서 잦은 비를 듬뿍 맞고 햇볕을 풍부하게 흡수하면서 자라 특별한 맛을 품게 된 것이란다. 커피가 잘 어울리는 바로크풍의 건물들 사이 골목을 걷다보니 커피 향을 따라 나도 모르게 중앙공원 근처의 카페 콘데사(Cafe Condesa)로 발길이 옮겨졌다. 세계적인 명품커피 안티구아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것 역시 안티구아 여행이 주는 작은 호사다. 커피 때문에 안티구아에 간 것은 아니지만 여행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꼽다보면 안티구아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던 그때가 떠오른다.

장거리 여행에 살짝 지쳐있을 때 생각나는 것은 그저 향기로운 커피 한 모금이었다. 커피 한 잔의 힘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누군가 나처럼 때로 힘들고 지쳐있을 때 안티구아 커피 한 잔에 새롭게 힘을 얻기를 바라 본다. 커피 향을 맛보고 현장에서 커피원두를 샀다. 국가 전체 수출량의 30%가 커피고,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커피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진정한 커피의 나라 과테말라로 여행을 간다면 깊고 풍부한 향과 맛을 지닌 안티구아 커피와 함께 잠깐의 여유를 누려보는 건 어떨까. 안티구아에서 매일 마셔도 계속 생각나는 커피를 마시며 여행엽서를 쓴다. 오늘의 여행이 감사하고 내일의 길 위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기원하면서.

자유여행가·전 대구시 도시철도건설본부장 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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