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9] 일본 사찰 정원

  • 김봉규
  • |
  • 입력 2019-07-11 07:45  |  수정 2021-07-06 10:31  |  발행일 2019-07-11 제22면
자연풍광 배경으로 연못·백화원·왕대숲·…禪心 깃든 산수화 한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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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 사찰 정원인 교토 덴류지 정원 일부. 연못 소겐치를 중심으로 조성한 덴류지 정원은 일본의 사적·특별명승 제1호이고, 일본 정원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 산사와 달리, 일본 사찰은 따로 공들여 조성한 정원이 발달돼 있다. 우리 산사는 큰 사찰이라도 특별히 조성한 정원이 따로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사찰 경내의 마당이나 뜰에는 매화나무나 배롱나무 등이 몇 군데 심어져 있거나, 드물게 작은 화단이나 연못이 있을 뿐이다. 승주 선암사가 그나마 두어 개 연못이 있으며, 소나무나 매화나무 등 큰 나무가 있고 다양한 꽃이 있는 화단이 비교적 많은 절에 속한다. 일본 사찰을 가보면 곳곳에 일부러 공들여 만든 정원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방장(方丈) 건물 주위는 다양한 정원이 조성돼 있다. 아름다운 정원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교토 덴류지(天龍寺)의 정원이 특히 유명하다. 덴류지는 선종인 임제종 덴류지파의 본산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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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류지 방장 건물 옆의 가레산스이 정원.

덴류지, 임제종 덴류지파의 본산
방장 주위 정원 세계유산 등재돼
종파 발전시킨 무소 국사가 설계

원나라 무역으로 건립 자금 마련
8차례의 큰불로 소실·재건 반복
現 건물 대부분 19C후반 지어져


◆일본 특별명승 제1호 덴류지 정원

덴류지 정원도 방장 주위에 조성돼 있다. 입장료를 내고 정원으로 가는 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법당보다 큰, 거대한 방장 건물이 있다. 그 앞에 흰 모래로 된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이 펼쳐져 있다. 흰 모래가 일정하게 골을 지어 평평하게 깔려 있고, 담장 쪽에 잘 생긴 소나무들이 몇 그루 서 있다. 소나무 주위 바닥은 이끼로 덮여 있다. 꽤 넓은 정원이다. 방장 건물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면 연못을 중심으로 조성된 정원이 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건물 앞은 흰 모래가 깔려 있고, 그 너머로 연못이 조성돼 있다. 작은 섬이 양쪽에 있는 이 연못은 굴곡이 많은 타원형인데, 못 주변이나 안에 100여개의 크고 작은 돌들이 조화롭게 박혀 있다.

연못과 접해 있는 산은 단풍나무를 위주로 다양한 수목들이 울창하다. 건물과 연못 사이의 길을 따라 연못을 지나면 ‘백화원(百花苑)’이 펼쳐지고, 마지막 부분에는 왕대숲이 펼쳐진다. 그리고 돌아서 산속에 난 길을 따라 ‘망경(望京)의 언덕’ 길을 걸으면서 경치를 감상하며 연못 주위를 돌아보도록 되어 있다.

연못 소겐치(曹源池)를 중심으로 한 이 덴류지 정원은 ‘心(마음 심)’자 모양과 비슷한 형태의 큰 연못을 조성하고, 그 주변으로 산책길을 낸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이다. 한참 둘러보아야 할 정도로 큰 정원이다. 한쪽 면이 산자락에 접해 있어, 주위의 자연풍광을 그대로 연결시켜 끌어들이고 있다. 인공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정원으로, 아름다운 산수화를 펼쳐놓은 듯하다. 담장이 있는 일본의 다른 사찰의 방장 주변 정원과는 다른 모습이다.

연못가에 크고 작은 돌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고, 주변의 수목과 산, 꽃동산 등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이 정원은 약동감이 있으면서도 아름답고 섬세한 풍취를 선사한다. 계절마다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이 정원은 누구나 보면 좋아할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취재 당시(지난 5월) 이곳에서 만난, 부산에서 친구들과 함께 온 40대 후반의 여성은 이 정원을 좋아해 세 번째 온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소 국사가 1345년에 조성

덴류지는 1339년에 억울하게 죽은 고다이고 일왕(1288~1339)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시카가 다카우지(1305~1358) 장군이 무소 소세케(1275~1351) 국사(國師)를 개산조사(開山祖師)로 창건한 사찰이다.

고다이고 일왕은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일왕의 큰 신임을 받고, 또 장군들의 존경을 받은 무소 국사는 아시카가 장군에게 고다이고 일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선종사찰을 이곳에 건립할 것을 건의했다. 그의 건의는 장군을 통해 조정에 전해지고, 조정은 새로운 사찰 건립 허가를 내렸다.

그런데 거대한 선종사찰을 건립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다이묘(大名: 일본 각 지방의 영토를 다스렸던 영주들)의 기부금으로는 도저히 마련할 수 없었다. 무소 국사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원나라에 독자적으로 무역선을 보내는 것을 제안했다.

마침내 막부의 허가를 받아서 덴류지선(天龍寺船)이 파견되었다. 당시의 자료에 의하면 상인이 선장이 된 이 무역선으로 100배의 이익을 얻었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사찰 건립이나 수리 등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파견된 무역선으로, 덴류지선 이전에는 가마쿠라의 겐초지선(建長寺船) 등 전례가 있다. 당시 선승들은 이런 무역선을 타고 일본과 원나라를 왕래했으며, 이는 일본의 선종 보급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덴류지 칠당(七堂) 가람이 완성되자, 1345년 무소 국사를 도사(導師)로 한 개당(開堂)법회가 열렸다.

덴류지는 14세기 중반에 일어난 화재를 비롯해 8번 대화재의 피해를 입어 소실과 재건을 반복했다. 현재 경내에 있는 건물 대부분은 19세기 후반인 메이지시대에 재건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무소 국사가 설계한 정원은 창건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무소 국사는 임제종을 발전시킨 고승이면서 뛰어난 정원 설계사였다. 다수의 정원을 설계했다. 연못 소겐치를 중심으로 조성한 덴류지 정원은 일본 정원문화에 큰 영향을 준 대표적인 정원이다. 이 정원은 일본의 사적·특별명승 제1호이고,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무소 국사는 이 아름다운 정원을 통해 선(禪)의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산수(山水)에는 득실(得失)이 없다. 득실은 사람의 마음에 있다.’

무소 국사가 남긴 말이다. 정원을 만들고 좋아하더라도 정원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없기를 주문하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둘러본 교토 산사는 덴류지처럼 대부분 방장 건물 주위에 다양한 정원을 조성해 놓고 있다. 료안지는 방장 주위에 석정(石庭), 이끼 바닥 위에 나무 등이 있는 이끼정원 등이 조성돼 있다. 지천회유식 정원인 교요치(鏡容池) 정원은 따로 조성되어 있다. 도후쿠지는 방장 건물 동서남북 사방에 석정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정원을 조성해 놓았다. 닌나지도 가레산스이 정원과 지천회유식 정원 등이 어우러져 있다.

주지 처소이자 손님 접대나 회의 공간으로 사용된 방장 건물 주위에 조성된 일본의 사찰 정원은 툇마루나 회랑, 방에서 보며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정원 조성에 각별히 신경 쓴 이런 일본 사찰 정원 문화는 우리 산사와는 전혀 다른 문화임을 보여준다. 수행 위주보다는 거주자나 방문자를 위한 공간으로 인위적인 정원을 조성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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