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시선] 과학하는 마음, 예술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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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1   |  발행일 2019-07-11 제30면   |  수정 2019-07-11
서울로 올라간 단원에 당부
본받고 따를 스승을 꼭 찾고
기본닦기 소홀히 하지말고
과학발달 접하는 태도처럼
무엇을 고려할지 질문하라
20190711

지난 해 봄 단원 한 명이 극단을 떠났다. 두어 해 지나 극단을 물려주리라 생각하고 기르던 청년이었다. 영리하고 싹싹하던 친구가 예민해지면서 일손을 놓다말다 한 끝에 “연극은 하고 싶지만, 행복해지고 싶어요”라며 울먹였다. 연극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고백인지, 연극을 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에게는 연극과 행복이 엇갈린 운명의 연인들처럼 서로 다른 궤도를 도는 별임이 분명했다. 창단멤버로 4년을 줄기차게 달려온 데 대한 피로감, 가족의 기대와 주변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끝날 것 같지 않은 가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1년 정도 쉬면서 연극이 간절한 존재인지, 그리고 연극의 가치를 믿는지 자신에게 다시 물어보라고 조언해 줬다.

서너 달 전 그 친구가 상경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지방의 젊은 연출가 지망생을 국립극단에서 제작하는 작품에 조연출로 참여시키는 프로그램에 지원한 것이었다. 지난해 갑작스러운 공모에 극단 일정도 바쁘고 실력보다 경력이 앞서니 늦가을쯤 첫 연출작을 무대에 올린 후 이듬해에 지원하라고 한 터였다. 그는 전국에서 올라 온 다섯 명의 지원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경력을 쌓게 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내게 전했고, 나는 발휘하려 하지 말고 배우는 데 힘쓰라고 말해 주었다. 지난 달 공연에 가보니, 그간 인맥도 쌓고 선진시스템도 익힌 듯하여 흐뭇했다.

나는 젊은 단원들을 기르는 데 힘을 쏟았다. 그들이 맑은 열정을 품고 탄탄한 실력을 길러 맑은 샘물로 흐르기를 바랐다. 그들이 야무지고 튼실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예술로 세상을 바꾸는 네오(Neo)가 되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강도 높은 훈련에 지친 탓인지 마지막 단계에 주저앉았다. 조급하고, 청년들의 불안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던 나를 반성하면서 그에게 몇 가지를 당부하고 또 기원한다.

먼저 좋은 스승을 만나기를 바란다. 세 사람만 모이면 그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말한 것은 겸손한 눈으로 살펴보고 진지하게 경청하여 본으로 삼거나 스스로 삼가야 할 것들을 배우고, 사소해 보이는 일에도 그 가치와 의미를 깨달아 경험치를 높이라는 뜻이다. 이제는 사수해야 할 때. 작가들이 대가의 작품을 필사하면서 그 정신과 필력과 문체와 구성법을 익히듯, 예술적 지향과 그 실천법이 몸과 마음에 배어들 때까지 본받고 따를 스승을 찾을 수 있기를 빈다.

두 번째로는 기본을 닦는 데 부지런하기를 부탁한다. 본립도생, 근본을 세워야 비로소 길이 나온다. 불안해하는 시간에 기본을 갖추는데 힘써라. 기본이 충실하지 않으면 실험도 응용도 불가능하고, 기본이 튼튼하지 않으면 헛소리를 뱉을 수밖에 없다. 올려야 마땅한 무대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이다. 수련을 통한 굳은살과 옹이가 박혀야만 남을 흉내내지 않고 제 자리와 제 목소리를 가질 수 있고, 그제야 자유로이 자신의 하늘로 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예술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발견하기를 바란다. 나를 세상에 알리고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예술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예술을 하는 목적일 수는 없다. 자기만족적이고 자폐적 세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예술은 향유자가 마음의 자리를 내어 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감동과 공감을 전하기 위해서는 예술은 좋아하는 일이면서도 잘하는 일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예술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세상의 부조리를 지적질하고 이를 바꾸도록 선동질하는 일이다. 히라타 오리자의 희곡 ‘과학하는 마음’은 대학 연구소에서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동물실험을 통한 치료제 개발 가능성과 동물실험의 윤리문제를 놓고 주고받는 대화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연구소의 일상적 풍경을 통해 과학문명의 발달에 대해 인간이 이를 어떤 태도로 접해야 하며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부디 ‘과학하는 마음’처럼 그의 ‘예술하는 마음’도 그러하기를. 그리고 샘물 같은 작품으로 세상의 영혼을 깨우는 예술가로 성숙해가기를.

김미정 (극단 구리거울 대표·연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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