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직장 내 괴롭힘 없애려면 기업문화부터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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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1   |  발행일 2019-07-11 제31면   |  수정 2019-07-11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16일부터 시행된다. 이 법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 등을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직장 내 괴롭힘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직장 내에서 흔히 통용되던 ‘혼나면서 배우는 거야’라는 말의 뜻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 지 오래됐다.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울분을 참으며 사직서를 써보지만 선뜻 낼 용기가 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생계가 막막하기 때문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1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64.3%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 갑질을 하는 상대방으로는 ‘직속상사, 사수, 팀장’이 절반 이상(51.0%)을 차지했다.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엽기적 폭행, 땅콩회항 사건으로 불거진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 종합병원의 ‘태움’ 관행 등으로 촉발된 직장 내 괴롭힘에 관심을 가지고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개념을 도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괴롭힘을 받은 피해자가 비정규직, 여성, 신입사원 등 직장 약자에 집중돼 더욱 긍정적이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하는 기준에 모호한 부분이 있어 논쟁의 소지가 있고 직접처벌조항의 부재 등 제도적 한계가 있어 그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정부가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하고 있긴 하지만 괴롭힘의 정의가 주관적이고 모호하다. 관련법이 4년 가까이 입법에 어려움을 겪다가 작년 말에야 국회를 통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300개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괴롭힘 행위에 대한 모호한 정의’를 법 시행에 따른 첫번째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어떤 행위가 괴롭힘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보니 직원들이 소통을 꺼리고, 이것이 조직을 경직시키는 부작용도 예상되고 있다. 입법 취지와 달리 허위신고, 투서 남발 등으로 기업 내 혼란 야기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과잉입법’이란 말까지 나온다.

노동자가 존중받는 일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괴롭힘이 없는 일터가 선행돼야 한다. 이는 곧 시행되는 법 조항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업가와 직원이 힘을 합쳐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점점 낮은 질의 직장이 늘어나면서 후퇴하고 있는 직장 내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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