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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학의 박물관에서 무릎을 치다] ‘레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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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부기자
  • 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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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 깊이 숨은 그리운 시간의 흔적

상설전시실 모습.
레트로(Retro). ‘복고(復古)’로 번역되어 쓰인다. 한자 그대로 풀면 ‘오래된 것을 되돌리다’라는 뜻이다. 회상, 추억이라는 뜻의 영어 ‘Retrospect’의 준말로 ‘옛날의 상태로 돌아가거나 과거를 그리워해 본뜨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단순히 옛 것에 대한 향수 때문에 과거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감성에 맞는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현대 문명에서 느껴지는 속도감의 불안 대신 친숙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고현학(考現學)의 다리를 지나 ‘레트로’ 박물관 속으로 곧장 걸어가 볼 참이다.

추억 속에서 신인류가 되어보는 곳, 정선 ‘추억의 박물관’

석탄산업으로 풍요 함백역 인근 자리
식민통치·한국전쟁·학창시절·만화
가난한시절 억척스러운 희망 품은 곳
꿈과 추억의 별 빛나는‘별아해’상징


자신의 것들로 진관장이 직접 꾸민 공부방
상설전시실 모습.
2017년 개관한 ‘추억의 박물관’. 별아해 로고가 정겹다.

정선 추억박물관의 진용선 관장을 찾아가는 길은 아라리 가락처럼 아련했다. 독일문학을 전공한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독일문화운동에서 용기를 얻어 귀향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그를 고향으로 불러들인 건 ‘그리움’이라고들 했다. 그리움이 아리랑이 되고, 거기에 역사와 추억이 스며들어 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킨 곳이 그의 고향 정선이다. 정선에서는 추억으로든 아리랑으로든 진용선 관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만, 오늘은 아리랑을 애써 걷어낸 그의 맨얼굴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조금은 헛헛했다.

‘추억의 박물관’의 시작은 2004년 12월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방제리 매화분교자리에 문을 연 정선아리랑학교에 다목적 문화공간이 생기면서 부터였다. 딱지와 삐라의 추억, 노래책으로 본 역사, 6·25전쟁과 아리랑 등 솔깃한 느낌의 전시물, 독특한 주제의 기획전과 공연으로 일찌감치 지역명소가 됐다. 박물관이 위치한 정선군 신동읍 일대가 한국 석탄 산업의 출발지였고, 탄광 개발과 함께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던 좋았던 시절에서부터 폐광까지의 연대기도 놓치지 않았다.

2017년 4월,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이곳 역시 1990년대 초반까지 석탄산업으로 풍요를 누리던 함백역 근처 안경다리 마을이다. 지상 2층의 새 건물이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겠다는 듯 산뜻하다.

강원도 최초의 근현대사박물관으로 짊어질 책임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전 기념으로 마련한 ‘함백역, 60년의 기록 특별전’도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1957년 문을 열어 50여년의 역사를 지닌 함백역 복원을 위해 애썼던 그가 당연히 해야 할 전시회로 한밤중에 내려도 ‘하나도 무섭지 않던’ 함백역에 대한 추억을 모은 전시다. 안경다리 마을이 예전 탄광촌과 광부들의 삶의 현장으로 재현, 복원되고 있는 상태여서 함백의 역사가 녹아 있는 이곳 ‘추억의 박물관’은 더욱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진 관장은 추억의 박물관을 ‘가난의 시대에 억척스러운 희망을 품었던 곳’으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레트로니 아날로그니 이런 말들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흘러간 옛 노래라고 하기엔 추억의 박물관은 너무도 생생하게 빛났다. 그는 우리 삶에 깊이 숨은 시간의 흔적을 실감나게 재현해 내는 중이었다. 그 마중물은 정선아리랑연구소와 아리랑 아카이브가 소장한 1만여 점의 자료다. 전시실은 대한제국의 몰락과 일본의 식민통치, 광복과 6·25전쟁, 5·16과 1970년대, 대중잡지와 만화, 학창시절의 추억 등으로 구성돼 자칫하면 사라질 역사기록물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게 한다. 향수를 불러 일으켜 열린 문화공간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든하기 그지없다. 문화유산을 기억하고 체험하는 명소가 되겠다는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

‘추억의 박물관’은 상징으로 ‘별아해’를 정했다.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꿈과 추억의 별이 빛나고 있다는 의미다. 그것 또한 방문객에게 따뜻한 감동으로 이어지리라. 그동안 아리랑학교 교육프로그램 ‘동네야 놀자’로 지역문화의 원형을 찾고, 박물관에 대한 지역의 관심을 꾸준히 높여왔다. 철저한 아날로그로서 포털사이트가 선정한 ‘가보고 싶은 박물관 3위’에 오른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요가 있다는 방증 아닌가.

‘호모 아리랑쿠스’. 아리랑연구소 소장이자 아리랑박물관 관장이며, 추억의 박물관 관장인 진용선 관장을 나는 그렇게 부른다. 아리랑으로 그를 기억하는 편이 더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움은 우리의 옛날을 소환하는 멋진 장치이고, 그는 고향땅에서 아리랑으로 그리움을 쌓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니, 그와 함께 추억 속의 신인류(新人類)가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돌아오면서 그를 고향으로 부른 ‘그리움’을 다시 기억했다. 멀리 끝 간 데 모르는 소중한 인연길이 보인다.

▨ 강원도 정선 ‘추억의 박물관’ www.ararian.com


시간의 향수를 파는 곳, 분고타카다 ‘쇼와노마치 박물관’

가장 낙후된 도시, 옛모습 재생사업
550m 복고풍 거리…시간여행 온듯
마을 전체가 박물관, 관광지 탈바꿈
따뜻한 기운 넘치는 곳, 기적 불러와

쇼와노마치 전시관 외경.


시간이 멈춘 마을, 일본 오이타현 분고타카다. 에도시대부터 쇼와 30년대까지 구니사키 반도에서 가장 번성한 곳이었지만 이젠 오래된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1950년대 일본의 한 지방 도시로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곳의 쇼와노마치가 ‘옛 정취가 그리울 때 꼭 한 번 가봐야 할 마을’로 꼽히는 까닭은 쇼와시대(1926~1989) 당시의 활기가 살아 있는 따뜻하고 정겨운 마을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후쿠오카에서 JR닛포혼센으로 2시간 남짓, 마을 어귀 낡은 버스 터미널과 조그만 대합실, 흑백 사진 속 빛바랜 추억으로 남은 건물들이 지난 반세기 동안 쇠락만 거듭하던 이 마을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실제로 일본에서 가장 낙후된 도시로 꼽힐 만큼 미래가 어두웠던 이 마을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마을의 회생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빛바랜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로 하고, ‘일부러 낡아 보이게’ 수리할 필요도 없이 50년대 느낌을 재현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도심재생의 첫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9개 상점으로 출발했지만, 이후 40개 이상의 상점이 추가로 마음을 함께하면서 550m 길이의 복고풍 거리가 완성됐다. 여기 와 보면, 도시재생을 오직 ‘리모델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어진다. 그동안 우리가 많이 보고 엄청 실망했던, 추억을 어설프게 강요하는 우리 지역의 볼거리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을 전체가 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거리에서 단연 압권은 ‘쇼와로만구라’와 ‘다가시야노 유메박물관’이다.

‘쇼와로만구라’는 1900년대 초에 세워진 쌀창고를 리노베이션한 박물관으로, 1900년대 초부터 1950년대까지의 생활상이 재현돼 있어 그 시절 일본을 찾아 온 것 같은 기분을 맛볼 수 있다. 20세기 초 노무라 가문이 세운 창고 건물을 6천만엔을 들여 수리한 후 1950~60년대 생활용품 및 완구 등을 모아 놓은 이곳엔 당시의 갖가지 장난감에서부터 민가와 상점, 교실이 재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오이타현의 특산품을 맘껏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 ‘샤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다가시야노 유메박물관’도 추억 살리기에 단단히 한몫을 한다. 불량 과자를 일본말로 다가시라고 부르는데, 유해식품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추억을 되살리는 아주 멋진 장치로 여겨진다. 이곳에는 후쿠오카 출신 수집가 고미야씨가 평생에 걸쳐 모은 30만점의 수집품 중 약 6만점이 전시돼 있다.

‘레트로+아날로그’만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기란 쉽지 않다. 마을의 역사성과 주민들의 의지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을 것이고, 그걸 증명하듯 진심이 담긴 큰 패널이 눈에 띄었다. ‘쇼와노마치 인물도감’. 함께 시작한 40명의 가게주인이 기증한 생활소품과 밝은 얼굴로 마을과 가게에 대한 애정을 한마디씩 표현한 것을 모아둔 전시물이다. ‘옛 맛의 가치를 지키는 우리집’ ‘정겨운 거리에서 문득 발길을 멈추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얘기하는 가게’. 이 마을 프로젝트가 성공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원작에 비해 아쉬웠다는 평을 듣긴 했지만, 한국에서도 스테디셀러가 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여기를 배경으로 영화화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세트가 보존되면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작품 속의 기적이 이 마을에도 찾아온 것이다.

쇼와노마치에서는 점포마다 자기 가게의 역사를 알려 주는 보물을 하나씩 전시해두는 ‘한 점포 한 상품’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고풍스러운 간판이 나란히 늘어선 거리를 산책하고 있으면 쇼와시대로의 시간여행을 실감하게 된다. 주말에는 ‘본네트 버스’라고 하는 그 시절 일본 전역을 달리던 레트로 버스를 무료로 탈 수 있다.

▨ 일본 분고타카다 ‘쇼와노마치’ www.showanomachi.com

(대구교육박물관장)

사진=김선국 사진가

“디지털시대 역사의 존재, 미래 열어갈 지혜 통찰”

5G에도 조급해 하는 시대가 되면서 아날로그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낡은 필름 카메라와 빛바랜 LP 음반을 찾는 사람들. 이 무슨 번거롭고 고집스러운 일인가 싶지만 누군가에겐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자 낭만 그 자체일 것이다. 디지털에 둘러싸여 오히려 낯설어진, 그래서 다시 새로워진 게 바로 아날로그다. 어떤 것을 “레트로 하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모방일까, 재창조일까.

망각이 화두가 된 디지털시대에 역사가 존재하는 까닭은 미래를 만들 지혜를 통찰하기 위함이 아닐까. 오늘, 두 박물관 이야기를 전하면서, 가벼운 추억의 이름으로도 그리 아프지 않은 역사의 이름으로도 벅찬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되는 작은 기적을 보여주고 싶었다.

(대구교육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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