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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칼럼] 봉황과 천등의 산사,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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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6


봉정사를 찾는 관광객들은

정체성 제대로 전달못받아

문화재를 찬찬히 살펴보며

창건설화 두 층위 천등·봉황

그 의미를 곱씹어 보면 좋아

봉정사(鳳停寺)는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위치한 사찰이다. 2018년에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의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의 촬영지로 이름이 알려졌던 봉정사는 이제 하회마을, 유교책판, 도산·병산서원과 함께 세계문화의 중심이자 전통문화도시로서 안동의 정체성을 다지고 있다.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안동시는 2019년 6월의 안동 테마 여행으로 ‘세계유산을 따라 설계해본 안동여행’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회마을이나 도산·병산서원과 다르게 봉정사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진 바가 적다. 국보 제15호인 극락전, 국보 제311호인 대웅전, 보물 제1614호 후불벽화, 보물 제1620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보물 제448호인 화엄강당 그리고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을 보유하고 있지만, 막상 봉정사를 찾는 관광객들은 봉정사만의 정체성이나 의미를 온전하게 전달받지 못하고 있다. 봉정사는 어떤 사찰일까. 잠시 봉정사의 창건 설화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창건 설화는 봉정사의 기원에 대하여 이야기해준다. 그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창건 설화는 이야기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간직했던 봉정사에 대한 기억을 담아내고 있다. 기억은 축적되고 집단성을 획득하면서 봉정사에 대한 정체성을 구축한다. 봉황과 천등이 그것이다.

봉정사 창건 설화는 크게 두 층위로 구성된다. 하나는 의상대사가 영주의 부석사에서 종이학을 날리자 그 종이학이 봉황으로 변해 지금의 봉정사 자리에 머물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상대사의 십대 제자 중 한 명인 능인대사가 대망산의 굴에서 수련을 하던 도중 여인의 유혹으로 표상화 된 하늘의 시험을 통과하자 하늘로부터 등불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하늘에서 등이 내려왔다고 해서 그 이후부터 대망산은 천등산으로, 능인대사가 불도를 닦던 굴은 천등굴로 불리게 되었다.

의상대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시조로서 그가 부석사에서 날려 보낸 봉황은 화엄종의 전파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부석사가 위치한 곳이 바로 봉황산이기 때문이다. 창건 설화를 살펴보면, 어떤 각편(version)에서는 봉황이 봉서사와 영봉사를 거쳐 봉정사로 날아갔다고 되어 있다. 봉서사와 영봉사 모두 의상대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곳으로 봉황의 비상과 정착은 화엄종의 사찰 건립과 세력 확장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천등은 화엄종의 깨달음과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화엄종의 대표적인 경전인 화엄경에서도 깨달음에 이르는 순간 활성화되는 본원적 정신 에너지를 빛으로 표현한다. 깨달음이 빛(virocana)의 이미지로 재현됨으로써 그 빛을 받는 모든 존재가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공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하늘에서 내린 빛이 천등으로 구체화되고 이것이 곧 능인대사의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화엄종의 이치를 따져봤을 때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봉정사 창건 설화는 두 층위의 이야기로 존재하면서 지금까지 전승되었다. 천등과 봉황 화소를 활용함으로써 화엄종의 전파와 깨달음의 이치를 이야기 속에 녹여내어 봉정사 창건과 관련된 특정한 의미망을 형성했던 것이다. 봉정사의 역사성과 종교성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지만, 봉정사의 기원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봉정사 창건과 관련된 이야기에 주목해야 한다. 봉정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봉황과 천등에 대한 이야기의 흔적을 찾아보고 그 기원과 의미를 곱씹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신호림 (안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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