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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유림들, ‘한글 사랑한 조선 유학자’ 탁와선생 배움의 장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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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사진=천윤자 시민기자
  •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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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얼연구소, 정기연 학술대회

강연·유적지 답사로 일생 돌아봐

“한글로 문집 남기고 놀이기구 고안

국한혼용 앞장선 선생업적 감사”

경산시 옥곡동 삼의정에서 탁와 선생의 증손자 정원일씨가 참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조선시대 유학자는 한글이 백성들 속으로 파고든 뒤에도 한문을 주된 문자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탁와 선생은 국한문 혼용에 앞장섰습니다. 제사상 차리는 방법을 쉽게 익히도록 한글 놀이기구인 ‘습례국’을 고안하기도 했습니다.”

<사>나라얼연구소가 지난 6일 경산시 하양읍 무학산 나라얼연구소에서 경산의 유학자 탁와(琢窩) 정기연(鄭璣淵) 선생(1877~1952)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무학산 나라얼연구소 설립 15주년 및 인문학 특강 140회를 기념하고 지역 유학자를 조명하는 취지로 마련됐다. 탁와 선생의 손자인 정유열옹과 원일·윤희씨 등 후손이 참여했으며 이장식 경산부시장, 강수명 경산시의회 의장, 최재림 경북향교발전협의회장, 유림 인사, 회원, 시민 등이 함께했다.

학술대회에서는 조원경 나라얼연구소 이사장이 ‘탁와 정기연 선생의 발견’이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김유진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이 ‘정기연의 산문 세계’,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가 ‘나라 잃고 두 스승 순절 지켜 본 정기연’을 주제로 각각 강연했다. 또 정유열옹은 “할아버지가 고안해 집안에서 놀이처럼 사용하며 제사상을 차리는 방법을 배우던 습례국이 있었다는 것을 문집을 통해 알게 됐다”며 기구를 찾아낸 과정을 들려줬다. 오후에는 탁와 선생이 태어나고 귀향 후 여생을 보낸 경산 옥곡동 성암산 자락의 우경재와 삼의정 등 유적지를 답사했다.

탁와 선생은 경산 옥곡동에서 태어나 8세에 향리에서 글공부를 시작했다. 20세에 우암 송시열의 후손인 병선·병순 형제를 스승으로 모시고 본격적인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송병선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상경해 을사5적의 처단과 국권회복을 바라는 상소문을 올렸으나 임금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음독 자결했다. 송병순 역시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가 국권을 상실하자 이를 개탄하며 음독 순국했다.

스승과 나라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탁와 선생은 우경재와 삼의정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11책에 이르는 방대한 탁와집(琢窩集)을 남겼다. 이 문집에는 한글로 쓴 저술도 포함돼 있다. 탁와집 7책 권14의 ‘습례국도설’이란 글로, 선비 문집에 한글이 등장하는 건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그는 유학자로서 우리 것, 특히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선생의 후손은 탁와집 11책을 비롯해 고서 1천451권을 영남대에 기증했다. 습례국은 한글박물관에 기증했다. 손녀 윤희씨는 “할아버지가 한글로 쓴 글까지 남겼다는 게 놀랍다. 습례국을 한문으로만 써 놓았다면 딸들 누구도 그걸 해석하고 사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증손자 원일씨는 “지역에서 할아버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해 주니 감사하다”고 했다.

조원경 나라얼연구소 이사장은 “이번 학술강좌를 시작으로 경산 근대 유학자인 정기연 선생의 학문적 사상을 재조명하고 앞으로 더 많은 경산의 유학자를 연구해 경산학의 새 지평을 열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편 나라얼연구소는 조상이 남긴 죽음의 문화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려고 했던 지혜의 모습을 찾아 알리고, 고문서 등을 통해 조상의 얼이 얼마나 깊고 높았던가를 찾아내 우리문화의 질을 한층 더 성숙시킨다는 취지로 매달 둘째 토요일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글·사진=천윤자 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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