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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훈훈한 캐릭터로 뭇 여성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던 배우 박서준이 영화 ‘사자’의 이종격투기 챔피언 용후 역을 통해 기존 이미지를 벗고 다크 히어로로 돌아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자기중심이 확고히 선 당찬 배우의 행보를 지켜보는 건 흥미롭다. 밝고 훈훈한 캐릭터로 뭇 여성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던 배우 박서준 얘기다. 그가 기존 이미지를 벗고 다크 히어로로 돌아왔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고 신에 대한 불신과 미움을 키우며 성장한 영화 ‘사자’의 이종격투기 챔피언 용후 역을 통해서다. ‘사자’는 그가 악몽을 꾼 이후 생긴 손의 상처를 계기로 구마 사제 안 신부(안성기)와 함께 세상 곳곳에 숨은 악의 존재와 맞서 싸우는 모습을 담는다. 강한 겉모습과 달리 마음속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용후는 그 점에서 박서준에겐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연기 변신이다. 판타지적 상상력이 더해진 다이내믹한 볼거리와 파워풀한 액션,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과감한 장르적 시도가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전작 ‘청년경찰’에 이은 김주환 감독의 러브콜에 그가 반색한 이유다. 이는 새로운 시도를 겁내지 않는 박서준의 연기적 열정과도 제대로 부합한다. “평소 갈망했던 웃음기를 뺀 진지한 역할이라는 점이 좋았다”는 그는 평소 쌓아온 안정적인 연기력에 더해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뽐내는 강렬한 액션을 유감없이 선보인다. 마치 물 만난 고기같다.
웃음기 뺀 진지한 역 평소에 갈망
김주환 감독이 내 바람 참고한 듯
격투기, 현존 최고 강렬한 스포츠
주인공 캐릭터 극명하게 보여줘
롱테이크 액션신에 정말 힘들어
리허설때마다 숨이 턱끝까지 차
▶‘사자’는 오컬트를 표방한 영화지만 하나의 장르로 규정지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영화적 요소가 녹아 있다. 어떤 점에서 끌렸나.
“시나리오를 캐릭터 위주로 보는 편인데, 용후는 기존에 내가 접해보지 못한 역할이라는 점에서 일단 끌렸다. 그리고 오컬트 영화지만 액션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상상력을 다양하게 펼칠 수 있는 장치들이 많은 점도 흥미를 자극했다. 지금 내 나이에서 가장 강렬하게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 감독님과 얘기를 나누면서 굉장한 것들이 숨겨져 있는 영화라는 것을 알았다. 캐릭터적으로는 도전일 수 있지만 그만큼 이제껏 본 적 없는 내 얼굴과 마주할 수 있다는 개인적인 호기심과 기대감이 컸다.”
▶김주환 감독과는 평소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자’에 대해 언질을 받은 게 있었나.
“아이템이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걸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정말 몰랐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지만 소재보다는 주로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였다. ‘청년경찰’이 청춘들의 유쾌한 모습이 부각된 작품이다 보니 다음 작품에선 좀 더 거칠고 강한 분위기가 나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한 적은 있다. 결과적으로 감독님이 그런 부분을 많이 참고한 것 같다.”
▶구마 사제 안 신부가 기존 오컬트 영화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캐릭터였다면, 격투기 챔피언 용후는 상대적으로 신선함이 느껴지는 캐릭터다. 이를 만들어가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을 것 같다.
“극 초반 어린 용후(이찬유)가 나오고 20년 후 성인이 된 내가 나오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그 20년 공백이 어땠을까 생각해보는 것부터 흥미로웠다. 어린 용후가 그 후 어떻게 자랐고 왜 격투기 선수가 됐고, 대인 관계는 어땠을지 등 그의 전사(前事)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다. 그렇게 나름 캐릭터를 정리한 후 연기를 펼치는 과정에서는 표현의 강도, 감정선, 격투기 챔피언에 맞는 비주얼을 어느 정도로 설정할지를 놓고 고민했다. 여러 모로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이 많다보니 내가 채워나갈 것도 많았다.”
▶영화는 옥타곤에서의 격투기 장면으로 임펙트 있게 시작한다.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했지만 캐릭터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사실 그 점이 우려되긴 했는데 ‘현존하는 가장 강렬한 스포츠이고, 격투기 선수만큼 용후 캐릭터를 극명하게 설명하는 직업이 없다’라는 감독님의 말에 설득당했다. 용후는 17전 무패의 성적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옥타곤에 서 있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면 관객은 물론 연기하는 입장에서 되게 힘들었을 텐데 전작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게다가 감독님이 현실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LA 근처 베이커스 필드에 있는 아이스하키장을 빌려 약 1만1천석 규모의 스타디움을 지었고, 실제 선수와 아나운서, 심판까지 섭외했다. 덕분에 좋은 기운과 팁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것을 공들였던 격투기 장면이 한 번으로 끝난 게 아쉽진 않았나.
“캐릭터 설명을 위한 장면인데 좀 더 보여졌다면 주객이 전도된 (이종격투기) 관람의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사실 그 한 장면을 위해 굳이 미국까지 가서 스타디움을 짓고 수많은 보조출연자와 실제 관계자들을 섭외하는 게 효율적이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감독님은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그런 감독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용후가 실력있는 격투기 선수라는 점과 신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짧지만 강하게 보여준 신이라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옥타곤에서의 경기뿐 아니라 롱테이크 액션신이 유독 많다.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았나.
“정말 힘들었다. 시나리오로 처음 접했을 때는 ‘액션을 안 했던 건 아니니까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강도 높은 액션 장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지신 역으로 나오는 (우)도환씨와의 하이라이트 액션신은 평면적인 카메라 워킹이 아닌 라운드를 도는 촬영이었다. 단순히 몇 번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배우가 카메라 워킹까지를 생각하면서 연습해야 했다. 그만큼 리허설도 많았는데 할 때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실제 촬영을 할 때는 감정까지 넣어야 해서 체력적·감정적으로 쉽지 않았다. 대신 이걸 잘 해내면 내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에서 불이 나는 CG 액션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상상력이 구현되는 장면이라는 점에서도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다.
“CG로 처리되는 장면이지만 최대한 사실적이면서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나도록 구현했다. 손에 불이 나는 장면은 처음에는 상상하기 좀 어려웠다. 불을 CG로 입힐 수는 있지만 반사되는 빛들은 만들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손에 실제로 하얀 LED가 나오는 조명을 설치해서 촬영을 했다. 아무래도 손에 뭔가가 붙어 있으니까 계속 의식을 하게 되고 연기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다.”
▶에필로그에서 시리즈의 여지를 남겼는데.
“솔직히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영화다. 감독님과도 평소 우리나라엔 왜 마블같은 시리즈물이 없을까 라는 생각을 공유해왔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영화시장이 작다는 이유가 있을 텐데 ‘사자’를 통해 그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다. 가장 필요한 건 관객의 사랑이다.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한다면 충분히 시리즈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진출에 대한 포부도 살짝 비쳤다.
“내가 언제까지 연기를 하게 될지 모르겠고 아직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확실한 건 연기가 재밌다는 점이다. 한 작품 한 작품 일기장을 쓰는 느낌이다. 물론 역할로써 남기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일기장을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게 짜릿하다. 역할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받는 긍정적인 스트레스도 즐겁고,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뿌듯하다. 때문에 현장에 있을 때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너무 김칫국을 마시는 것 같지만 기회가 된다면 해외로 진출해서 우리 문화도 알리고 싶다. ‘기생충’에서 보듯 한국영화는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수준이 됐다. 그만큼 많이 찾고 봐주신다. 그 부분에 내가 일조를 할 수 있다면 영광이다. 단, 대중의 관심사에 나를 끼워맞추는 것보다는 내가 어떤 작품을 선택했을 때, 보고 싶다는 마음과 믿음을 주는 연기자로 말이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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