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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16] 역사의 반복을 경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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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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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국 각축장 된 한반도, 구한말 비극의 역사 되풀이 않길”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려는 상황에 우리가 놓여 있다.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까닭에 현재와 미래의 한일 간 상생에 장애가 초래되고 있다는 말이다. 국내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한창이고, 일본 언론에서는 이에 대한 왜곡과 비난 기사가 등장하고 있다. 다들 아는 대로, 이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반도체 생산 과정에 쓰이는 재료의 한국 수출에 편의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아베정부의 결정에 있다. 일본의 이러한 조치는 세계 경제 질서에 어긋나는 것으로 국제 사회에서도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韓日분쟁, 北·中·러 동태도 한몫
1905년 대한제국 식민지화한 日
전쟁 가능국 위한 헌법개정 추진
보수 결집 차원서 韓에 경제보복
아베정권의 목적 빤히 보이는데
협상·정치적 타협 주문 해야하나


아베정부가 이를 밀어붙이는 데는 한일 양국의 정치적인 문제가 작동하고 있다. 지난 박근혜정부가 피해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본과 체결했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현 정부가 파기한 데 대해 일본은 위구심(危懼心)을 갖는다. 문재인 대통령을 탄핵해야 갈등이 풀리게 될 것이라는 일본 언론인의 망언이 나올 만큼 일본 정가의 의심과 두려움은 확고한 듯하다. 이러한 잘못된 판단을 한층 강화한 데는 한일 간의 과거 역사가 관련된다. 일제 식민지 시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일본 기업이 보상하라는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결을 일본 정부가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는 모양새다. 대통령이 나서서 극일(克日)을 강조하고 전임 민정수석이 SNS를 통해 국내외를 향해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일본 정부는 자기들의 조치에 대한 설명을 바꾸어 가면서 조치 자체를 거둘 생각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와중에 국내에서는 정쟁이 이어진다. 제1 야당은 청와대를 비판하기에 여념이 없다. 국민들의 여론에 밀려 수그러졌지만 일부 보수 언론들 또한 정부 비판에 급급하여 어느 나라 신문인지 알 수 없는 논의를 펴기도 했다.

문제를 한층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데 주변국들의 동태도 한몫을 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일 동맹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이 문제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꺼린다. 러시아는 독도 인근의 영공을 침범했고, 우리 정부의 대응과 동시에 일본도 나서서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며 러시아에 항의하는 민첩한 행동을 취했다. 여기에 더해서 북한은 새로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일본과 미국, 중국, 러시아가 한반도를 두고 움직이는 이러한 상황은 매우 낯익다. 황현 선생이 ‘매천야록’에서 기록해 둔 시기, 개항에서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시기가 바로 이러했다. 메이지 유신 이래 제국의 야망을 품고 착실히 국력을 키워온 일본이 중국과 러시아를 차례로 꺾고 1905년 대한제국을 손아귀에 넣었다. 거기서부터 합방까지는 국제적으로 일사천리였다. 일본과 미국이 협상을 통해 서로의 이익을 보장해 주고 간섭하지 않는 방침을 취해 두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사료들과 결과가 증명하듯 일본의 의도는 애초부터 명확했다. 서양 제국들과 어깨를 겨루는 제국이 되어 아시아의 맹주로 도약하겠다는 것.

그 일본이 지금 2차대전 패전 후 만들어진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하고 있다. 일본의 자위대를 해외에 파병할 수 있게 하는 것, 즉 일본이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하려는 것이 헌법 개정의 기본 취지다. 이는 명명백백한 것이어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아베 스스로도 밝혀왔듯이 그의 정치적 신념이자 궁극적인 목적이 여기에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아베정부가 취해 온 극우 노선은 이를 위한 국내 정치이다. 최근의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등 우익 세력이 개헌 선을 얻지 못했는데, 이 상황을 넘어 끝내 개헌을 이루겠다는 것이 아베의 신념이며, 이 또한 언론에 확인된 사실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 보복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의 국내 여론을 묶고 보수 세력의 결집과 확대를 위한 것이라 해석된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말이다. 20세기 전후의 역사는, 우리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이었고, 원폭을 당하며 패전국이 된 일본에도 결국 큰 비극이었다. 그 역사가 반복되려 하는 지금, 어떻게 하면 이를 저지하고, 그게 안 된다면 최소한 희극으로 반복되게 할 것인가. 다시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여기에 있다.

1905년의 을사늑약 이후 일본이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한 것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고 했지만, 우리나라 내부를 보면 그렇지만은 않았다. 황현 선생이 ‘매천야록’에 상세히 기록하며 강조했던 대로, 적지 않은 선비들이 망국을 앞두고 자결함으로써 국민들의 의기를 고취했고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대부분의 경우 무기란 것이 변변치 않고 군사 전략 등에 무지한 채 충의를 앞세우기만 해서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인명 피해만 냈지만, 죽음을 무릅쓴 의병 운동이 아무런 성과도, 의미도 없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연장선 상에서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가능했고, 각종 무장독립투쟁을 위시한 해외에서의 다양한 독립운동이 전개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외국의 식민 지배를 무려 36년간 당한다는 것은 저항의 염을 내기가 매우 어려운 끔찍한 비극이다. 1905년생이라면 겨우 여섯 살 나이에 식민지인이 되어 41세까지 나라 없이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40이 못 되고 당시의 사회 분위기상 30세 전후면 사회의 중견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일제 치하 36년이란 지금으로 치면 50~60년에 해당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긴 시간 동안, 일제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을 가능케 한 것은 우리의 민족적 저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 된 국민국가의 수립을 보지 못한 채 식민지로 전락했으니, 이는 국민의식이나 시민의식에 의한 것도 아니고 민주주의나 자유주의 같은 이념의 힘에 따른 것도 아니다. 동학에서 의병, 3·1운동으로 크게 분출되었던 민족적 저력이야말로 주된 요인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저력이 일본 상품 불매 운동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강조되는 21세기에 웬 민족주의냐고 말할 일이 아니다. 우리에 대한 경제 침탈을 감행하고 있는 일본 자신이 민족주의의 자장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들의 의도가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되는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직시하고, 최근의 사태가 위안부와 강제 징용 피해자 문제로부터 촉발되었다는 점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철 지난 민족주의’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을 외면하는 잘못이다.

국가와 시민사회, 경제계가 하나로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현재 동향이 그런 것도 아닌데 앞질러 정부를 탓하는 것 또한 큰 잘못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대외적으로 주권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현 정부의 대응이 이 맥락에서 나온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베정권의 목적이 빤히 보이는데, 우리 정부를 향해서 경제적 협상과 정치적 타협 및 화해에 적극 나서라고 주문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익보다 일본의 입장을 앞세우는 친일이자 매국과 다름없다. 황현 선생이 그토록 개탄한 바 구한말의 고종과 민씨 일파, 대신들이 보인 무능이 반복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그래서는 안된다. 경제계나 시민사회와는 달리, 정부 차원에서 주권을 확실히 하며 아베 정부에 맞대응하는 일이야말로 지난 역사의 비극적 반복을 피하는 일이다. 일본이 패착을 철회하는 세계적인 희극으로 이 사태를 끝내는 유일한 방안이기도 하다. 이런 정부에 박수 대신 비판을 앞세우는 인사는, 자신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자는 것인지 무슨 가치를 앞세우자는 것인지 깊이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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