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역사 청송 문화재 여행 .4] 신기리 느티나무, 관리 왕버들, 홍원리 개오동나무, 장전리 향나무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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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6   |  발행일 2019-08-06 제13면   |  수정 2020-03-18
수백년 인고의 세월 민초와 함께 고락 ‘마을 수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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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파천면 신기리 새터마을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느티나무. 아랫가지와 윗가지의 잎이 동시에 피어나는 해는 풍년이 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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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청송 입향조인 운강 남계조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묘를 조성하면서 심었다는 향나무. 장전리 향나무는 1982년 천연기념물 제313호로 지정됐다.

나무는 하늘과 가장 가깝게 닿아 있는 생물체, 그것은 땅과 하늘을 이어 예부터 신들이 다니는 통로라 여겨져 왔다. 오래된 나무들은 대개 한 공동체의 전설과 사연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전설과 사연들은 인간과 신과 나무를 유기적인 관계로 묶었고, 그 중간자인 나무는 당목(堂木) 또는 신목(神木)으로서의 존엄성을 부여받기도 했다. 그리하여 성스러운 나무는 하늘과 땅을, 어제와 오늘을, 선대와 후대를 연결하는 문화적 유산으로서 공동체의 중심에 덩그렇게 자리 잡았다.

신기리 느티나무 수령 350여년
나뭇잎 상태보고 농사 풍흉 점쳐

천연기념물 제193호 관리 왕버들
전쟁나간 총각과 처녀 애틋한 전설

홍원리 개오동나무 주민들 신성시
마을 안녕기원 서당나무로 우뚝
400년 된 장전리 향나무 사계절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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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을 약속한 청춘남녀의 가슴 시린 이야기를 간직한 파천면 관리의 버드나무.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인 노송은 2006년 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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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남면 홍원리 개오동나무 세그루 중 가운데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개체로 알려져 있다.


#1. 천연기념물 제192호 신기리 느티나무

파천면 신기리(新基里) 새터마을 입구에는 동네의 길흉을 알리며 350여 년 고락을 함께한 느티나무가 서 있다. 높이가 13.9m, 가슴 높이의 둘레는 7.57m다. 줄기는 지상 2m 정도에서 네 개로 갈라져 비스듬히 퍼지는데 다시 12개의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나가 매우 아름다운 수형을 보이고 있다. 이 느티나무는 인동장씨(仁同張氏) 시조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신기리 느티나무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어느 화창한 봄날 동네 노인들이 나무 밑에 모여 앉아 장기를 두며 소일하고 있었다. 그때 한 노승이 지나며 중얼거리기를 “이 나무는 참으로 신기한데 꼭대기만 잎이 피고 아래쪽 생생한 가지에는 잎이 하나도 피지 않았네” 하였다. 이상하게 여긴 노인이 곡절을 물으니 “이 느티나무는 신기동 새터마을의 길흉을 알려주는 거룩한 나무인데 잎새에 따라 기후 변동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는 떠나버렸다. 이후 노인들은 해마다 느티나무에 나뭇잎이 피어나는 것을 살폈다. 아랫가지와 윗가지의 잎이 동시에 피어나는 해는 풍년이 되고, 어느 한 쪽이 먼저 피어나면 흉년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그해의 풍흉(豊凶)을 점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신기리 느티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이다.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한밤중에 나무 아래에서 동제를 지내며 문화재청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새터마을 동제의 전승을 지원하고 있다. 신격(神格)은 남성이며 마을사람들은 ‘할배’ 또는 ‘어르신’으로 부른다. 할배 노거수는 1967년에 천연기념물 제192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2. 천연기념물 제193호 관리 왕버들

청송읍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진보 방향으로 가다보면 파천면(巴川面)이 시작되는 관리(官里) 초입의 도로변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수령이 약 450년이라는 관리의 왕버들이다. 높이가 18m, 가슴 높이의 줄기둘레는 5.7m, 가지는 동쪽으로 11.8m, 서쪽으로 11m, 남쪽으로 6.6m, 북쪽으로 12.2m 가량 뻗어 있다. 나무 아래쪽에는 만세정(萬歲井)이라는 공동 우물이 있고 1995년에 건립되었다는 기념 표석이 서있다. 그러나 우물은 왕버들보다 더 오래전부터 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것은 왕버들의 전설 속에 등장한다.

관리의 왕버들은 원래 노송(老松)과 함께 다정스럽게 서 있었다고 한다. 두 그루 나무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 채씨(蔡氏) 성을 가진 처녀가 늙은 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라에서는 의병을 모집하게 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예순이 넘은 채씨 노인에게 출병 영장이 날아왔다고 한다. 이에 평소 처녀를 사모하던 마을의 청년이 노인 대신 출병을 청했고 둘은 혼인을 약속했다. 출정 전날 밤 처녀와 청년은 우물가에서 만났다. 청년은 우물가에 어린 버드나무 한 그루를 심으며 자신을 보듯 고이 길러달라고 했다. 처녀는 청년을 기다리며 정성으로 나무를 길렀다. 그러나 청년을 돌아오지 않았다. 딸을 걱정한 노인은 딸을 다른 이에게 시집보내려 했다. 결혼식 전날 처녀는 버드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했다. 처녀가 죽고 얼마 후 버드나무 곁에 소나무 한 그루가 싹터 올라왔다. 동네 사람들은 그리움에 사무친 처녀의 넋이라 하여 두 나무를 약속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두 나무는 마을의 당산목(堂山木)이 되었다.

소나무는 만세송으로 불리다가 2006년 고사했다. 만세송이 있던 자리에는 그 자취를 알리는 비석만이 남아 있지만 두 나무 모두 마을의 당나무로서 음력 정월 14일 밤에 동제를 지낸다. 당산제 때 쓰인 종이로 글씨 연습을 하면 글씨를 잘 쓰게 된다는 전설이 있어 당산제가 끝나면 종이를 가져가는 풍습이 있다. 관리의 왕버들은 1968년 천연기념물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지금 왕버들과 만세정 곁에는 어린 소나무 두 그루가 새로운 만세송을 기약하며 자라고 있다.

#3. 천연기념물 제401호 홍원리 개오동나무

부남면 홍원리(洪原里) 마을 입구 서쪽에는 세 그루의 개오동나무가 서 있다. 수령이 300년이라고도 하고 400~500년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개오동나무로 알려져 있다. 세 그루 중 가운데 나무가 가장 나이가 많다. 최고령의 개오동나무는 밑 부분에서 줄기가 두 개로 갈라지고, 나머지 두 그루는 외줄기로 자라 있다. 높이는 8m, 줄기둘레는 3.9m, 수관폭은 14m 정도 된다. 6월과 7월에 향기로운 황백색의 꽃이 피고 10월에 노끈처럼 긴 열매가 익는다. 그래서 노나무라고도 하는데 열매는 한겨울을 견디며 새순이 나는 봄까지 달려 있다고 한다.

개오동나무는 옛날부터 벼락이 피해 가는 나무라 하여 뇌신목(雷神木) 또는 뇌전동(雷電桐)이라 하여 신성시했다. 그래서 궁궐이나 사찰 같은 큰 건물에는 반드시 개오동나무를 심었다고 전한다. 또한 나뭇잎부터 뿌리까지 모두 약으로 쓸 수 있고, 목재는 땅속이나 물속에서도 수백 년 동안 썩지 않는 기이한 성질이 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개오동나무를 백 가지 나무 중에 으뜸이라 하여 목왕(木王)이라 부른다고 했다. 홍원리 개오동나무는 세 그루 모두 수피가 부분적으로 훼손되었는데 나이 많은 가운데 나무가 좀 더 심하다. 그러나 생채기 곁으로 새로운 줄기를 뻗어내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이고 있다.

마을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개오동나무를 신성시여기며 매년 동제를 지내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개오동나무는 삼신할머니였다. 그래서 동제를 지낼 때는 술 대신에 감주를 올렸다고 한다. 동제는 2012년에 중지되었다. 제의를 지속할 인적 물적 기반이 약해지면서 많은 부담이 되었다고 한다. 홍원리 개오동나무는 1998년에 천연기념물 제401호로 지정되었다.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기관이 당목을 관리하고 있으며 여전히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서낭나무로 우뚝 자리하고 있다.

#4. 천연기념물 제313호 장전리 향나무

안덕면 장전리(長田里) 창말마을의 가람들 동쪽 산지에는 단 몇 채의 집이 부락을 이루는 조그마한 골미골이 있다. 꽃봉오리 같은 산세에 작은 연못이 있어 화지곡이라고도 한다. 그 속에 영양남씨(英陽南氏) 청송 입향조인 운강(雲岡) 남계조(南繼曺)의 재실인 화지재(花池齋)가 있다. 영양에 살던 그는 임진왜란 때 노모를 모시고 장전리 골짜기로 피란해왔다고 한다. 화지재 앞에는 거대한 향나무가 서있다. 남계조가 세상을 떠난 뒤 묘를 조성하면서 심었다는 나무로 수령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장전리 향나무는 높이가 7.5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는 4.9m, 뿌리목의 줄기 둘레는 4.2m에 달한다. 지면에서 1m 정도 올라간 지점에서 줄기가 네 개로 기이하게 갈라지는데, 가지는 동쪽으로 7.7m, 서쪽으로 8.3m, 남쪽으로 9.5m, 북쪽으로 8.4m 정도로 힘차게 뻗어나가 마치 한 덩이 향나무 숲 같다. 수백 년을 살아온 노거수이지만 믿음직스러운 건장함을 자랑하는 모습에서 영양남씨 문중의 지속적인 관리와 정성을 느낄 수 있다. 장전리 향나무는 1982년 천연기념물 제313호로 지정되었다. 그것은 사계절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하늘과 땅을, 선대와 후대를 연결하는 성수(聖樹)로 솟구쳐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 국가지정문화재지정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98. 청송군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자연문화재지도, 문화재청, 2000.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한국민속신앙사전. 한국민속식물.

공동기획지원: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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