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LP로드] LP바 ‘뮤즈’ 김종훈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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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30   |  발행일 2019-08-30 제41면   |  수정 2019-08-30
학창시절부터 록키드 유전자…중년에도 멈추지 않는 ‘록 스피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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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는 DJ, 로커, 화가 등의 열정에 휩싸여 틈만 나면 기타연습을 하고 나중에는 부활의 ‘희야’를 대구에서 가장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초고음 독공의 시간까지 보낸 대구 황금동 LP바 ‘뮤즈’의 김종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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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최장 록밴드로 사랑받고 있는 ‘아프리카’의 뮤즈 공연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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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종의 독주(2종의 보드카, 그리고 테킬라와 드라이진)가 든 투명한 유리병 세트가 흡사 심우주를 날아가는 우주선 같은 포스를 보여주고 있다.

일단 감상보다 공연 현장이 중요하다. 그래서 무리해도 꼭 상경한다. 노익장 로커의 전형을 보여주는 메탈리카. 그들의 국내 공연이 모두 세 번 론칭(1998년 체조경기장, 2006년 잠실, 2018년 고척돔)됐는데 물론 다 챙겼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2006년 8월15일 메탈리카 공연. 이 밴드의 상징곡이랄 수 있는 ‘Master of Puppets’의 기타 솔로 대목을 한국 팬들이 정확하게 떼창했다. 그걸 본 보컬 제임스 헷필드는 ‘소름 돋았다’면서 엄지척해 준다.

황금동 주택가의 빨간 등대
두달에 한번 꼴 올리는 라이브 무대
대구 최장 록밴드‘아프리카’도 공연


대구 수성구 황금동 주택가 한 편에 무인등대처럼 서 있는 LP바 ‘뮤즈’. 김종훈 사장(45). 그는 지나온 젊음의 열정과 그리고 다가올 중년의 내정의 경계에서 야생마처럼 살고 있다. 말 갈기처럼 치렁치렁 드리워진 길디 긴 머리카락, 가무잡잡한 피부색 틈새로 보이는 도도하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눈빛. 아직 록스피릿이 발광하고 있다.

2016년 10월20일 무리해 깁스 푸는 당일 소리소문없이 오픈했다. 두 달에 한 번꼴로 라이브공연을 올린다. 가수 이승철도 그와 끈적한 관계다. 지난 27일 오후 8시에는 대구의 상징적 록밴드랄 수 있는 ‘아프리카’가 풀타임 공연을 했다. 그리고 모비딕, 두루미 기타리스트로 알려진 고승학 등도 뮤즈의 핵심 공연 라인이었다.

분위기가 녹진하다. 생고생하면서 실내 인테리어를 주도한 탓이다. 바텐드는 물론 뮤즈란 붉은 네온사인도 그의 디자인. 앰프는 다른 업소처럼 마란쯔 2325와 마란쯔 2252. 메인 스피커는 클립시사의 벨클립시, 세컨드 스피커는 JBL 4312A, 서브로 두는 마샬 m124, 에로이카 스피커는 거의 사용치 않는다.

창가에 세워둔 A4 크기의 펜슬아트 작품은 다니엘이란 유명작가의 작품. 맘에 들어 사진가인 친구와 협업을 통해 새로운 질감으로 재현해 냈다. 롤링스톤스, 닐영, 이글스, 밥 딜런…. 그리고 그림 잘 그리는 친구 이종학이 기타리스트 제프 벡·지미 헨드릭스, 존 레넌 그림을 대여판매하기 위해 전시해 놓았다. 그도 그림을 잘 그린다. 악마 로커로 잘 알려진 오지 오스본. 그가 3년간 품었던 전설의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와 미스터 크롤리(Mr crowley)란 곡을 라이브 할 때 연주에 감동한 나머지 랜디 로즈를 몇초간 번쩍 들어준다. 그 광경이 그들의 대표적 앨범 크레이지 트레인(Crazy train) 재킷 사진으로 채택된다. 너무 인상적이라서 그도 그걸 새로운 터치로 그려 친구 그림 옆에 함께 걸어놓았다. 그도 한때 잉베이 맘스틴, 스티브 바이 등 전설의 속주 기타리스트를 무척 벤치마킹했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진땀이 난다.

공부보다 음악사랑
참고서 살 용돈으로 레코드숍 쇼핑
사자머리에 반하고 기타 연습 매진


청송에서 태어난다. 이내 대구 달서구 두류동으로 가족이 이사를 온다. 초등학교 시절 들리는대로 한글로 영어 발음을 외웠다. 보니 엠의 ‘해피송’은 또래들 앞에서 선보인 첫 팝송이다. 형과 누나가 구입해 온 카세트 테이프는 마지막엔 항상 그의 차지나 마찬가지였다. 마이클 잭슨과 왬, 듀란듀란, 마돈나 등은 중학교시절을 물들인다. 훗날엔 건즈 앤 로지즈, LA GUNS, 워런트, 포이즌, 머틀리 크루, 미스터 빅, 스키드 로 등을 가슴에 품는다. 한국의 록스타도 귀에 들리기 시작한다. 무당, 산울림, 사랑과평화, 들국화, 시나위, 백두산, 부활…. 윤시네, 윤복희도 괜찮았다. 하지만 완고한 아버지의 눈에는 다들 ‘미친 자’로 분류된다.

그의 음악사랑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공부는 늘 먼 풍경. 가끔 참고서 산다면서 용돈받아 레코드숍을 돌아다녔다. 나중에 수북하게 쌓인 카세트테이프를 헤아려보니 라면박스 5개 분량이었다.

음악적 흥취가 생길 즈음 친구 형이 쓰던 싸구려 통기타를 늘 만지고 놀았다. 당시 기타 입문곡으로 절정의 사랑을 받았던 곡부터 도전한다.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당시 기타 코드라고 해봐야 30개를 넘지 않았다. C-Am-F-G7-C. 그 코드만 우려먹으면 웬만한 초급 가요는 다 정복할 수 있었다.

드디어 기타가 생겼다. 로고는 그럴싸해 보였지만 로즈우드 합판으로 만든 짝퉁 펜더였다. 얼마 안 있어 형이 전자기타를 사갖고 왔다. 그는 형이 미쳤다고 여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프로는 전자기타, 일반인은 통기타를 사용하는 줄로만 알았다. 정상적인 음으로는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해머링, 풀링, 비브라토, 한음 초킹, 반음 초킹, 쿼터, 피킹하모닉스, 피크스크래치…. 별별 주법을 다 실험해 봤다.

동아쇼핑 8층 비둘기홀과 아트홀을 찾은 스트레인저, 나티, 제로지 등의 공연을 혼자 보러다녔다. 스트레인저는 부활의 리더 보컬인 이승철이 독립해 만든 록밴드. 5천원 내고 도청 옆 실내체육관에 온 그의 공연을 봤다. 당시 로커들의 패션은 극단적이었다. 미스코리아 전유물이던 사자머리가 남자에게도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 좋은 곡은 LP판으로 들었다. 검증되지 않은 팀은 카세트테이프로 들었다. 용돈은 언제나 부족했다. 친구들은 늘 앨범을 나눠 구매했다. 공테이프로 서로 복사해서 나눠 들었다. 음악이라고 하면 기겁하시던 아버지가 나를 위해 저가 전축 하나를 사주셨다. 어느샌가 그는 자칭 DJ가 되어 있었다.

직장밴드 시절
직장생활, 두개의 밴드 가담, 사업…
1년간 멍때리다 휘감겨온 LP바 욕망


대건고 시절엔 미술에 심취했다. 심심할 때 처칠, 링컨 등 초상·정물화를 그렸다. 친구들은 맘에 들었던지 그 낙서쪼가리를 100원에서 200원가량 주고 사갔다. 무작정 미술부에 들어갔다. 4H부터 2H, H, HB, B, 2B 4B…. 미술용 각종 연필세트를 갖고 등교했다. 하지만 아버지 반대 때문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미술과 음악의 자양분은 아직도 그의 유전자 속에 담겨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잠시 리서치 전문회사 인턴으로 있다가 이내 유명 통신사에 취직해 13년을 보낸다. 하지만 사회인이 된다 해서 쉬 음악적 욕망이 절멸될 수는 없다. 그 욕망 탓에 그는 직장 다니면서 무려 두 개의 밴드에 가담했다. 매주 수요일은 성당시장 근처, 금요일은 봉덕동 미군부대 근처 연습실로 갔다. 너바나, 자우림, 콜드플레이, 윤도현, 스트레인저, 크래시 등의 노래를 레퍼토리로 많이 챙겼다.

2013년 회사를 나와 당시 잘 나간다던 휴대폰 대리점사업을 시작한다. 2002년 결혼을 했다. 결혼? 모든 록맨에겐 그게 열정의 걸림돌일 수밖에 없었다. 몇몇 천재적 뮤지션은 결혼의 제약조건을 보기좋게 극복하겠지만. 아무튼 그는 가족의 지상명령을 존중하면서 살았다. 일과 일 사이, 자신도 모르게 스쿨, 리플레이, 헤븐, 시선 등 지역의 괜찮은 LP바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었다.

무한경쟁의 휴대폰시장, 하지만 정부의 잇단 규제. 처음에는 수입이 짭짤했지만 나중엔 계속 추락이었다. 사업권을 후배에게 넘기고 손을 털었다. 1년간 멍때리기에 들어간다. 그냥 가족과 여행을 다녔다. 딱정벌레 등 서울의 유명 LP바도 많이 순례했다. 1년 빈둥거리니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을 했지만 막상 해당 사업에서 벗어나니 그의 주업무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때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LP바에 대한 욕망이 전신을 휘감는다. 그래, 그게 내 길이라고 여겼다.

클래식·트로트·힙합은 노생큐
영업탓에 구입한 LP 8천여장 보유
별 만큼 많은 곡중 선곡은 신의 영역


두 달간 장소를 물색하러 다녔다. 정원처럼 넓은 옥상 테라스가 너무 맘에 들어 계약을 했다. LP는 영업 때문에 대량으로 구입했다. 현재 8천여장을 보유하고 있다. 그 음악 양보다 더 많은 곡을 파일로 갖고 있어 필요할 때 스트리밍으로 방출해 준다.

솔직히 LP바이지만 LP를 선곡할 때는 별로 없다. 많을 때는 하루 60여장의 리퀘스트용지가 쌓인다. 그걸 다 LP로 들려주기는 무리다. 1% 고수급 단골을 위해서 주인이 직접 희망곡을 선별해 턴테이블에 걸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혼자 홀서빙까지 챙기려면 겨를이 없다. 오는 손님 중에는 음악보다 술과 비즈니스 대화가 목적인 경우도 있다. 모두 록·팝·재즈·블루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김정구의 눈물젖은 두만강도 좋아할 수 있다. 그런 곡들을 무시할 수 없지만 장사 때문에 맹목적으로 튼다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하늘의 별만큼 많은 곡들. 그걸 시의적절하게 들려주는 것, 아직도 그 감각과 안목은 신의 영역인 것 같다. 얼마전 영화 ‘보헤미안랩소디’ 때문에 퀸은 대박이었다. 난리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지금 퀸 신드롬은 완전 바닥이다. 이래도 되나 싶다. 우리의 끓는 냄비 근성인 것 같아 좀 아쉽다. 그는 분위기 때문에 트로트, 힙합, 클래식, 일본노래 등은 가급적 자제해 달라는 문구를 메뉴판에 적어놓았다.

공연이 있을 때는 식사와 기본 술 포함 4만원 정도. 음식도 가급적 직접 만들어 대접한다. 바비큐, 삼겹살수육, 찜닭, 떡볶이, 골뱅이무침, 떡국 등이 잘 오른다. 맥주는 호가든, 기네스 등 15종, 독주로는 스미노프(보드카), 호세꾸엘보(테킬라), 봄베이사파이어(드라이진), 앱솔루트(보드카) 등이 있다. 잔에 바로 드립할 수 있게 병 4개를 더치용 유리용기처럼 나란히 세팅해놓은 게 인상적이다. 오후 7시 문을 열고 다음날 새벽 2시쯤 닫는다. 하지만 죽이 잘 맞는 단골이 오면 폐점은 무의미해진다.

뮤즈의 강추 뮤직 리스트
믿을 놈 하나 없을 땐…
서울전자음악단의‘서로 다른’


△방금 헤어졌을 때는 권인하의 ‘사랑 그리고 우린’ △방금 다 말아 먹었을 때는 Firehouse의 ‘shake and tumble’ △믿을 놈 하나 없을 땐 서울전자음악단의 ‘서로 다른’ △비가 꿀꿀하게 올 때는 신촌블루스의 ‘바람인가 빗속에서’. 수성구 황금동 838-9.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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