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19] P형에게

  • 최은지
  • |
  • 입력 2019-09-12   |  발행일 2019-09-12 제22면   |  수정 2019-09-12
조국 사태 이후 나아갈 방향은 ‘개혁보다 계층갈등 해소’
국론 분열 원인은 상류층의 특권 탓
‘스카이 캐슬’도 못다룬 고차원 스펙
상당수 국민 허탈감 느껴 임명 반대
조국 등 엘리트층 비판적 성찰 필요
계층간 괴리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20190912

P형에게.

지난 한 달간 전국이 조국 법무장관 후보를 둘러싸고 홍역을 치렀습니다. 이 글이 실리는 12일에는 임명 여부가 이미 판가름 나 있겠지만 이 사태가 던져준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두고두고 풀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서, 조국 사태의 의미를 짚어 봅니다.

조국 법무장관 인사 문제가 진행되는 동안 모든 언론이 이 문제에 매달렸습니다. 청문회 증인 선정 문제를 두고 여야가 팽팽하게 맞서면서 청문회 무산이 가시화되자 여당의 주선 아래 조국 후보의 대국민 기자간담회가 국회에서 열렸으며 그 뒤를 이어 청문회가 급히 개최되었습니다. 이러한 극적인 요소도 작용했던지 기존 언론은 물론이요 인터넷과 SNS 또한 이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공론과 여론 모두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문제에 달려든 것입니다. 그 결과, 국민적 관심사였던 한일 간의 경제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났고 전 세계의 관심사인 북한 미사일 문제는 완전히 실종되다시피 했습니다. 과히 사태라 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조국 관련 기사가 세월호나 최순실 사건 때보다 더 많다며 언론의 관심에 악의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었고, 언론이 그렇게 보도할 만큼 문제의 소지가 많았다고 보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언론이 일방적이었다고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여론이 둘로 나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임명 찬반 각각을 주장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두 가지 모두 20만을 넘겼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국론의 분열 상태를 낳으며 청문회 개최 자체가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었건만, 아쉽게도 그 양상은 이전의 청문회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야 의원 간에 고성과 고함이 오갔고, 답변을 들을 생각이 없는 질의(?)와 핵심 사항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또는 모른다로 대답하는 ‘질의응답같지 않은 질의응답’이 계속되었습니다. 한 달 동안 전 국민이 보였던 논란을 생각하면 허무하다 할 만큼 ‘그저 그런 청문회’였습니다. 해서 ‘역시나 싶은 임명’이 이어지겠다고들 생각할 만했습니다.

20190912

물론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후보자에 대한 검찰 특수부의 수사가 진행 중이었다는 점도 그렇고, 청문회 종료 직후 조국 후보자의 부인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확인되기도 한 것입니다. 이로써 ‘청문회 - 임명’의 수순이 자연스럽기 어려운 상황이 생겼습니다.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날짜 이틀을 흘려 보낸 시점에서 이 글을 씁니다만, 대통령의 결심을 늦춘 요인을 생각해 보기에는 지금이 더 좋아 보입니다. 조국 사태가 환기시킨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생각해 볼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후보자의 배우자에 대한 검찰의 기소는 이 사태를 증폭시킨 직접적인 원인을 생각하게 합니다. 해당 건의 공소시효 만료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검찰은 설명했지만, 소환 조사를 건너뛴 검찰의 기소는 이 사태가 검찰 개혁을 둘러싼 힘겨루기라고 생각하게 할 만했습니다. 조국 후보자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그가 법무장관이 되어 행할 검찰 개혁을 막기 위해서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를 감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둘러싼 대립을 검찰 개혁의 맥락에서 보는 이러한 입장은 비단 정치권에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이 문제는, 촛불 혁명으로 세워진 현 정권에 대한 입장 문제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므로 그가 법무장관으로 임명하고자 하는 조국 후보자를 지지한다’는 말까지 나온 바 있습니다. 맹목적 지지라는 혐의를 벗기 어려운 이러한 태도 위에서, 조국을 비판하는 야당 의원들을 피장파장 식으로 비난하는 말들이 가능해졌습니다. 조국의 후보자 자질 자체를 따지는 대신, 그를 둘러싼 논의의 정치적인 맥락에 주목하여 진영 논리로 대응한 것입니다.

조국 사태가 한 명의 장관을 선출하는 일에 그치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그에게 주어질 주된 임무가 검찰 개혁, 사법 개혁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서울대 법대 교수로서 그리고 민정수석으로서 그가 벌여온 여러 언행의 의미를 살펴봐도 그러합니다. 따라서 이런 맥락을 중시하여 정치 역학적으로 진영 논리를 앞세우는 태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든 야든 마찬가지라는 점은 강조해야겠지요.

조국 사태가 법무장관 선출 이상의 일이었음은 보다 중요한 두 가지 맥락에서 더욱 잘 확인됩니다. 이 사태 속에서 밝혀진 많은 사실이 이른바 ‘강남좌파’의 실상과 고유의 한계를 가진 역할을 명확히 했다는 것이 하나고, 사태의 전개에 따라서는 2기 내각 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현 정부의 안위가 걸린 큰 문제라는 점이 다른 하나입니다. 조국 후보자가 강남좌파의 아이콘이자 진보 인사의 대명사가 되어 왔음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현 정부의 초대 민정수석으로 등장했을 때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유명인이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서울대 법대 교수로서 그가 여러 책에서 올바른 주장을 펼치고 정치적인 사안마다 SNS를 통해 입바른 소리를 해 온 여론 정치의 결과라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한 주장과 비판적 언행이 법무장관 후보자인 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된 것, 이것이 국민 여론을 악화시킨 근본 문제이지요. 그가 법무장관으로서 검찰 개혁을 이끌 만한 인물이 되는가 아닌가를 두고 국론이 분열되다시피 한 상황이 조국 사태의 핵심이라 할 때, 이 핵심의 실제 내용은 무엇이겠습니까. 입시와 관련된 자녀 교육과 재테크에 있어서 조국이 행해 온 것이, 보통사람들의 노력이란 게 우스워질 정도의 특권 상류계층의 놀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도 다루지 못한 고차원의 스펙이 줄줄이 나온 데 대해 상당수의 국민이 느낀 계층 간 위화감이 그의 임명을 부정적으로 보게 한 것입니다. 그러한 스펙 쌓기를 요구하는 교육제도를 비판해 왔던 그 자신의 말이 위화감에 배신감과 분노를 더했을 것이고요.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조국의 사례가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한 그것을 문제시하는 것이 정치적인 모략이라고 주장하는 말들이야말로 사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맹목의 소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지금 말하는 조국의 문제는 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의 상층을 차지한 586 세대의 문제고, 돈과 사회자본을 잘 갖춘 엘리트 계층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그래서 조국만 욕할 것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조국을 포함하여 그 계층 전체가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이를 통하여 586과 ‘90년대 생’으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의 계층 대립이 심각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다면 그것이야말로 조국 사태가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점이 되겠지요.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더 남았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조직을 위해 일한다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특수부를 구성하여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펼쳤고 후보자 부인을 기소했습니다. 스모킹 건 관련 확신이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압수수색은 영장이 필요하니 사법부 또한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를 검찰의 항명으로만 보는 것은 사법부까지 불신하는 것이며, 이 상태에서 그를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까지 살얼음판을 걷는 것입니다. ‘저들만의 리그에서 놀았구나’라고 국민들이 허탈해 하는 그를 내세우고서 파워 엘리트 간의 리그 차원에서 검찰개혁·사법개혁을 끌어나가려고 하는 것부터가 문제지만, 행여 조국에게서 위법이 발견된다면 조국이 아니라 정권이 망하는 길이 열립니다.

이 글이 형께 전달되었을 때는 아마도 조국 법무장관이 내각에 들어가 있겠지요. 청문회 다음날의 여론조사 결과 임명 반대가 근 50%로서 찬성보다 10%포인트 더 많았는데, 정권의 안녕이 위태위태한 것부터가 마음 쓰입니다. 더욱 중요하게는, 조국 사태로 살짝 확인된 사회 계층 간 심각한 괴리의 문제가 그로 인해 가려질까봐 걱정입니다. 정치가 사회적 약자의 힘이 되고 청년 세대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586과 90년대 생의 위화감, 사회 엘리트 계층과 서민들의 위화감을 줄이는 문제가 검찰 개혁보다 훨씬 중차대하다는 사실이 부각되기를 바랍니다. 조국 사태에서 이 길로 나아가는 것만이 지난 한 달간의 소란을 생산적으로 지양하는 길일 것입니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문학평론가>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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