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서원 유네스코 등재, 역사로부터 배운다

  • 이은경
  • |
  • 입력 2019-09-23   |  발행일 2019-09-23 제29면   |  수정 2020-09-08
[기고] 한국서원 유네스코 등재, 역사로부터 배운다
김부섭 (경북도 문화관광체육국장)

지난 7월6일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대표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무형유산 20건·기록유산 16건 등 50건의 유네스코 유산을 갖게 됐다. 이 중 세계문화유산이 단연 큰 비중을 차지하며, 전체 세계유산 14건 중 5건이 경북에 있다. 이번에 등재된 9곳의 서원 중 5곳이 대구경북지역에 소재한다.

서원은 조선시대 학자들이 후학양성을 위해 만든 사설 교육기관이다. 본래 서원의 설립 목적은 ‘어진 이를 높여 선비를 기른다’는 존현양사(尊賢養士)에 있다. 한국 서원은 학문 연구 및 인격수련에 목적을 뒀다는 점에서 같은 유교 문화권인 중국·일본·베트남의 서원과는 구별된다.

서원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선비정신을 중요시한 서원의 정신적 가치를 되새기고 이를 더욱 계승·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세계인들은 한국에 900개가 넘는 엘리트 사립학교가 500여년간 선현을 배향해 왔다는 점에 놀라워한다. 벼슬이나 재력이 아닌 도덕적으로 존경받는 인물만이 지역의 공론(公論)을 통해 서원에 배향됐다. 도덕은 물론 가치관마저 혼란해진 요즘, 한국의 서원이 추구한 가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물질적 욕망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는 선현들의 곧은 정신은 서구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궤를 같이하는 한국 선비정신의 발현(發現)이다.

서원으로부터 선조들의 애향심도 배울 수 있다. 선조들은 중앙의 관직에 진출했다가도 벼슬에서 물러나면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양성에 생을 바쳤다. 이황 선생은 43세 이후 20차례 넘게 관직을 고사했다. 도산서원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하고 앎과 실천을 함께하는 지행병진(知行竝進)을 실현하고자 했다. 류성룡 선생도 관직에서 물러나 병산서원에서 후학을 육성했다. 안향 선생을 배향한 소수서원, 이언적 선생을 배향한 옥산서원, 김굉필 선생을 배향한 도동서원 등 이번 유네스코 등재 서원 모두 자신의 출신지역에서 인재 양성에 힘쓰고자 한 선현들의 뜻을 담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사회는 수도권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 1995년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사회 모든 분야의 관심과 자원은 아직도 수도권에 쏠려있다. 1960~70년대 경제성장기 산업화를 위한 수도권 인구 집중은 집적의 이익을 위해 필연적이었다. 하지만 경제규모가 커지고 산업화·도시화가 진전된 지금도 중앙집권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처에서 지방분권을 외치지만, 아직도 중앙집권적 사고방식에 갇혀있다. 수도권 중심주의가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여전히 우리 의식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의 주인공은 사람이다. 18세기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조선 전기까지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서 난다”고 했다. 서원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시사하는 점을 배워야 한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고향에 내려와 후진교육에 힘쓰며, 죽어서는 불천위(不遷位)로 남아 후세의 모범이 됨을 최고의 영예로 삼았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맞았지만 국내외적으로 경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지방분권을 생각해볼 수 있다. 서원의 유네스코 등재를 통해 선조들의 혜안을 본받아 수도권에 편중된 좋은 인적자원이 지역에 머물며 지역발전의 모멘텀이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우수한 인재가 수도권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고향·지역발전을 위해 힘쓸 때, 국민소득 5만달러, 나아가 10만달러의 시대를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김부섭 (경북도 문화관광체육국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